[카테고리:] 제주 이야기

제주의 풍부한 자연과 역사, 문화, 그리고 삶의 풍경을 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의 참모습과 숨겨진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Stories encompassing the rich nature, history, culture, and life of Jeju Island. Discover the authentic beauty and hidden values of Jeju.

  • <제9회> 1만 8천 신(神)들의 고향: 제주 신화 속 ‘치유와 상생’의 비밀

    대한 노거수 팽나무 그늘 아래 자리한 붉은 홍살문과 정려각. 조선 시대 국가가 내린 유교적 정려(효자 박계곤·열녀 박씨부인·충비 고소락)와 제주의 토착 신목 신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신엄리의 대표 향토 유산입니다.

    (그림: 애월읍 신엄리 삼정문(삼정려)과 신목(팽나무)의 수채화풍 삽화)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제8회 글에서는 거센 섬바람 속에서도 15세기 중세 국어의 아래아(ㆍ)와 원형을 고스란히 지켜내며 살아있는 타임캡슐이 된 ‘제주어’의 언어학적 가치와 소멸 위기에 처한 현실을 나누었습니다. 변방의 고립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독보적인 무형 자산으로 승화시킨 제주인들의 영혼의 언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말 한마디, 억양 하나에도 대자연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담겨 있듯, 제주 선조들은 사방에서 들이치는 거친 삶의 불확실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독창적인 정신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오늘은 언어적 원형을 넘어, 제주 사람들의 내면을 단단하게 지탱해 준 거대한 정신적 요람인 ‘제주 신화’ 속에 숨겨진 포용의 미학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슬픔을 위로하고 공존해 온 1만 8천 신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되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1. 폭풍 치는 밤의 조왕할망과 신엄리 삼정문(三旌門) 팽나무 아래서 배운 위로


    어릴 적 애월읍 신엄리 조부모님 댁에서 보낸 겨울밤, 유독 거센 서북 계절풍이 몰아쳐 집안 전체가 들썩이고 문창살이 덜컹거릴 때면 어린 마음에 덜컥 겁이 나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조모님께서는 저를 가만히 안아주시며 부엌 안쪽의 솥덕(화덕)을 향해 맑은 물 한 사발을 떠놓고 나지막이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집안의 가장 아늑한 온기를 품은 ‘조왕할망’에게 우리 가족의 안녕을 비는 정성 어린 손길이었습니다.

    바람이 잠잠해지면 마을 안길을 걸으며 마주하던 신엄리만의 독특한 풍경이 있었습니다. 마을 중심부 거대한 팽나무 아래에는 붉은 홍살문과 함께 조그만 기와지붕의 목조 건물인 ‘삼정문(三旌門 / 삼정려)’이 아담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조선 정조 때 효자 박계곤, 열녀 박씨부인, 그리고 신분을 넘어 지성을 다한 충비 고소락(高所樂) 세 분의 넋을 기리는 정려(旌閭) 공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절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해마다 온 마을이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던 그 팽나무와 붉은 문의 경건한 고요함은 유년의 저에게 마을 전체를 든든하게 품어주는 거대한 안식처로 각인되었습니다.
    어릴 때 그 곳에서 어딘지 엄숙함을 느껴서 조부모님께 여쭈었더니, 세 분의 신이 모셔져 있고 그분들이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삼정려의 박계곤, 박씨부인, 고소락 역시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마을을 수호하고 복을 내려주는 신령스러운 영혼(신)”으로 대체되어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정에서 내린 ‘홍살문(유교)’과 마을의 ‘팽나무(무속)’가 한자리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거대한 신화적 공간을 완성한 것입니다.

    어릴 적 그 삼정문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마음에 새겨졌던 경외감은 단순한 옛 풍습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정신분석학과 종교인류학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 그것은 가혹한 자연의 두려움을 거룩한 질서와 수호의 이야기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치유해 낸 ‘제주만의 가장 지혜로운 정신적 방파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1만 8천의 신: 가혹한 불확실성이 빚어낸 심리적 방어기제


    제주도를 일컫는 수많은 별칭 중 하나는 바로 ‘신들의 고향’입니다. 좁은 화산섬 안에 무려 1만 8천 분에 달하는 압도적인 숫자의 신들이 마을마다, 집안 구석구석마다 깃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제주는 거센 태풍과 가뭄이 반복되는 척박한 화산토였고, 사방의 거친 바다는 언제 가족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협 앞에서 제주인들은 절망하는 대신, 자연의 모든 현상과 일상 공간에 ‘신(神)’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람과 바다, 돌과 대지는 물론 부엌(조왕신), 대문(문전신), 화장실(측신)에 이르기까지 인격을 부여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고도의 ‘심리적 투사와 승화’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을 ‘말을 걸고 소통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대체함으로써, 환경이 주는 근원적인 실존적 불안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내면의 평화를 지켜낸 것입니다.


    [학술적 조망] 제주의 구비신화와 자연 숭배의 원형

    제주대학교 허남춘 명예교수는 그의 연구 「제주 서사무가에 담긴 과학과 철학적 사유 일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기록신화가 다루는 시기를 높게 잡아도 5,000년 전이고, 한국의 고대국가 건설기의 신화도 3,000~2,000년을 넘지 않는다. 반면 구비신화의 전통은 장구하여 30,000~1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중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 시대에 이르는 광대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구비서사시의 전통이 한국의 무가 속에 어느 정도 온전히 남아 전하고 있고, 제주도는 무속의 전통이 완강하기 때문에 다양한 구비서사시가 전승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온 제주의 바람과 돌, 영등신화 등에 깃든 이야기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과 경외의 공존 대상으로 바라보던 태고의 인류학적 사유를 온전히 품고 있습니다.


    3. 지배가 아닌 공존: 상생과 포용의 서사 구조


    제주 신화가 세계적인 신화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신과 인간의 대등하고 포용적인 관계성에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올림포스산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며 복종을 요구하고 징벌을 내리는 군림형 신들과 달리, 제주의 신들은 인간이 발을 딛고 선 가장 평평한 대지 위에서 함께 숨 쉽니다. 집안을 지키는 문전신과 조왕신, 생명을 점지하는 삼승할망, 마을을 돌보는 본향당 신들은 인간의 배고픔과 슬픔, 상처를 고스란히 공유하는 다정한 이웃이자 동반자입니다.

    또한 대륙의 건국신화가 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강(天降)’ 화소인 반면, 삼성신화(고·양·부 삼신)를 비롯한 제주의 신들은 땅에서 솟아나는 ‘지중용출(地中湧出)’의 형태를 띱니다. 이는 지배자의 권위를 세우기보다, 대지와 식물의 생명력에 뿌리를 둔 농경·생태적 사유가 신화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주의 신화와 제의 문화는 외래의 이념인 유교조차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품 안에서 유연하게 융합했습니다. 필자의 고향인 애월읍 신엄리의 ‘삼정려(三旌閭)’가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조선 조정이 내린 유교적 표창(홍살문)이 제주의 신성한 ‘팽나무(신목)’ 아래 자리 잡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충효 비각을 넘어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든든한 조상신적 수호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품어 안았습니다. 특히 양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노비 신분이었던 충비 고소락(高所樂)까지 차별 없이 한 공간에서 당당히 기리고 기억하는 모습은, 억울한 약자를 신으로 품어 안았던 제주 본풀이(신화) 특유의 따뜻한 평등과 포용의 정신이 일상 유적에 고스란히 투영된 명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술적 조망] 여성성과 생활과학, 그리고 역할 분담의 지혜

    허남춘 교수는 「제주 서사무가에 담긴 과학과 철학적 사유 일고찰」을 통해 제주 신화에 깃든 독창적 철학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여성 영웅과 생명력의 원형:

    거인 여성신 <설문대할망>의 천지창조와 지형형성 설화, 그리고 모계 중심의 당본풀이 계보(김녕 큰당 본풀이 등)는 부계 중심 사회 이전의 강력한 여성성과 생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역할 분담과 생활과학의 조화:

    <문전본풀이>에서 남편이 정낭(대문)신, 본처가 조왕(부엌)신, 첩이 변소신으로 좌정하는 구조는 차별이 아닌 음양의 역할 분담 논리이자, “부엌과 화장실은 멀수록 위생적이다”라는 지혜로운 생활과학 코드를 담고 있습니다.


    약자의 주체적 승리와 포용: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오곡 종자(특히 구황작물인 메밀)를 얻어 농경신이 되는 주체적 여성 영웅입니다. 제주 신화는 억울하게 고난을 겪은 약자가 연대와 지혜를 통해 도리어 신으로 좌정하는 포용과 치유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4. 숫자가 증명하는 무형의 자산 (문화 데이터)


    제주 신화의 위대함은 문학적 감상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명확한 문화적 지표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구비 신화(본풀이)의 보고:

    활자로 박제된 기록 신화와 달리, 무당(심방)의 구송과 노래를 통해 수십 편의 대서사시가 원형 그대로 구전되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살아있는 신화의 수도’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봄마다 바다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국가무형문화재를 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며, 제주의 신화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공동체 축제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압도적인 신당(神堂)의 밀도:

    섬 전역에 400여 곳의 본향당 등 신당 터가 보존되어 있어, 거목·바위 등 자연물과 신화 서사가 결합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생태·인문학적 밀도’를 자랑합니다.


    5. 제주 오리진(Jeju Origin)이 풀어주는 제주 신화 FAQ

    Q1. 제주의 ‘본향당’은 육지의 서낭당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육지의 서낭당이 주로 마을 입구에서 액운을 막는 ‘경계의 신’ 역할을 했다면, 제주의 ‘본향당’은 마을 주민 개개인의 호적과 생사화복, 농경과 어로의 안전까지 관장하는 ‘로컬 자치 복지관’에 가깝습니다. 당신(堂神)이 주민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두고 돌본다고 믿었기에, 당을 찾는 행위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숭고한 연대 의식이었습니다.


    Q2. 제주 신화의 대표 여신 ‘자청비’와 ‘오늘이’는 어떤 존재인가요?

    A.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여 지상에 곡식의 씨앗을 전해준 당당한 ‘농경의 여신’입니다.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는 고아로 자라났으나 사계를 관장하는 신비로운 원천강을 찾아 여정을 떠나고, 만나는 이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며 마침내 ‘시간과 계절의 여신’이 됩니다. 두 여신 모두 결핍과 고난을 주체적으로 극복해 낸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Q3. 집안 곳곳에 신이 산다는 ‘가택신 신화’는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제주인들은 문전신, 조왕신, 측신 등이 집안 공간을 조화롭게 나누어 쓰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문 하나를 고치거나 마당을 파낼 때도 신의 노여움을 사서 재앙을 입는 ‘동티’를 막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살피고 조심했습니다. 이는 내 주변의 모든 공간과 사물을 경외하며 정갈하게 가꾸던 선조들의 뛰어난 ‘환경 생태학적 생활 태도’였습니다.


    6. 미신이라는 편견을 넘어: 현대인을 치유하는 인문학의 요람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제주의 당문화와 신화는 한때 ‘비과학적인 미신’이라는 왜곡된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구식 합리주의와 거대 종교의 잣대를 걷어내고 바라본 제주의 신화는, 가혹한 자연재해와 고립 속에서 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카타르시스)하고 이웃과 연대하도록 이끌어 준 가장 완벽한 ‘마음 치유 시스템’이었습니다.

    척박한 변방의 불안을 상생과 포용의 세계관으로 승화시킨 제주의 신화는, 이제 결핍의 부산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각자도생과 고립을 치유할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정신분석학의 요람’으로 재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7. 글을 마치며: 내 안의 불안을 경외하고, 타인을 품어줄 시간


    인생을 걷다 보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친 시련을 마주하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마음이 얼어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주의 1만 8천 신들은 우리에게 따뜻한 지혜를 건넵니다. 불안과 시련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해 싸우려 들지 말고, 그 불안에 다정한 이름을 붙여주어 내 삶의 일부로 유연하게 품어 안고 공존하라고 말입니다.

    오늘 하루, 거친 세상의 불확실성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가장 낮은 대지 위에서 인간을 위로하던 제주의 다정한 신들을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곁의 이웃과 따뜻한 연대의 온기를 나누는 편안하고 ‘맨도롱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말 한마디, 신화 한 자락에도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담아냈던 제주. 다음 제10회 글에서는 화산섬의 거친 눈물이 빚어낸 생명의 기적이자, 사계절 내내 푸른 숨을 뿜어내는 제주의 심장이자 허파, <‘제주 지하수와 곶자왈’이 인류에게 건네는 미래의 유산>을 찾아 떠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허남춘, 「제주 서사무가에 담긴 과학과 철학적 사유 일고찰 : 일반신본풀이를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제148호, 국어국문학회, 2008.

    * 허남춘, 「제주도 본풀이의 원시·고대·중세 서사시적 특징과 변모」, 『한국고전문학연구』, 한국고전문학회, 2005.

    *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 아카이브, 「효자 박계곤 정려문(효자 박계곤지려)」, 애월읍 신엄리 삼정려 관련 향토 기록.

    *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제주칠머리당영등굿 (Jeju Chilmeoridang Yeongdeunggut)」.

    (https://ich.unesco.org/en/RL/jeju-chilmeoridang-yeongdeunggut-00187)


  • 제4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올레 바깥디 ᄒᆞᆫ어의 강 완 보난 (올레 밖에 잠깐 다녀와 보니)

    (그림: ai 생성)

    지난 3회까지의 글에서 본 ‘제주어’, 어떠셨나요? 표준어와는 너무나 달라서 외국어보다 어렵진 않았나요?

    [찐 토박이의 제주어]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연대와 상생’의 의식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웃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크게 화를 내기 보다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상대방에게 가볍게 주의를 청하는 말을 준비했습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 문 >
    제주어마당에 날레 널엉 나뒁그네
    올레 바깥디 ᄒᆞᆫ어의 강 완 보난,
    삼춘네 쉐가 들언 ᄆᆞᆫ딱 허우대겨 부럼선게마씸.
    거 보난 자락 북부기 뒈싸졌수게.
    나도 멩심ᄒᆞ영 정낭 질러뒁 뎅겨사주마는,
    삼춘도 ᄒᆞ쏠 멩심ᄒᆞ영 쉐 잘 매놔사쿠다.
    번 역마당에 곡식을(말리려고) 널어 두고서
    골목 밖에 잠시 나갔다 와서 보니까,
    아저씨네 소가 와서 몽땅 엉망으로 휘젓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속이 확 뒤집어졌잖아요.
    나도 명심해서 정낭을 꽂아두고 갔어야 했었지만,
    아저씨도 조금 명심해서 소를 잘 매어두어야 되겠어요.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ᄆᆞᆫ딱 (몬딱) ᄒᆞ쏠 (호쏠)
    ᄒᆞ영 (호영, 하영, 허영)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 ) 안의 표기는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발음 표기를 사용합니다.


    2) 어휘 해설

    마당에 날레 널엉 나뒁그네

    ⬛ 날레: <명사> 볕을 쐬기 위하여 멍석에 널어놓은 곡식. (예문에서는 ‘날레를’에서 <조사> ‘를’이 생략된 형태임).

    ⬛ 널엉: 널어 + -ㅇ. (뜻: 널어서).
      * 널다: <동사> 널다. 볕을 쬐거나 또는 드러내 보이려고 펼쳐 놓다.
      * -ㅇ: <연결어미> 용언 어간이나 어미 뒤에 붙어 앞선 동작이 지나거나 연속됨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서’의 뜻).

    ⬛ 놔뒁그네: 나두다 + -앙/엉 + -그네. (➔ 놔두어 + -그네 ➔ 나뒁그네).

    (해석: 놔두고 나서, 놓아두어서).

      * 놔두다: <동사> 놓아두다, 놔두다.

      * -그네: <어미> 동작의 완료 후 다음 동작으로 이어짐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하고 나서, -서).
      ⬥ 예문: 나 밥 먹엉그네 곧 가키여. ➔ 번역: 나 밥 먹고 나서 곧 갈께).

    올레 바깥디 ᄒᆞᆫ어의 강 완 보난

    ■ 올레: 올레. (해석: 예문에서는 ‘올레의’에서 <조사> ‘의’가 생략된 것임),

      * 올레: <명사> 큰길에서 집 대문(정낭)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 바깥디: 바깥 + 디. (해석: 바깥에, 밖에).

      * 바깥: <명사> 바깥, 밖.
      * 디: <조사> 부사격 조사 (바깥에/바깥으로). (= 듸),
      ⬥ 예문: 이녁 사는 디 어디라? ➔ 번역: 네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 ᄒᆞᆫ어의: <명사> 잠깐 사이.
      ⬥ 예문: ᄌᆞ냑 전에 ᄒᆞᆫ어이 놀당 오쿠다. ➔ 해석: 저녁 전에 잠깐 놀다 오겠습니다). (= ᄒᆞᆫ숨, ᄒᆞᆫ시).
    ■ 강: 가다 + -앙. (뜻: 가서).

      * 가다: <동사> 가다.

      * -앙: <어미> 연결어미 (-해서, -하여).

      ⬥ 예문: 여기 왕 밥 먹으라. 번역: 여기 와서 밥 먹어라.

    ■ 완: 오다 + -아 + -ㄴ. (오아 ➔ 와 ➔ 완) (해석: 와서).

      * 오다: <동사> 오다.

      * -아: <어미> 양성모음 어간에 붙어 부사형을 이루는 어미.

      * -ㄴ: <어미> 용언 뒤에 붙어 앞서 일어난 동작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보난: 보다 + -난. (해석: 보니까, 보니).

      * 보다: <동사> 보다.

      * -난: <어미> 이유나 상태의 확인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니까, -고 보니).

    삼춘네 쉐가 들언 ᄆᆞᆫ딱 허우대겨 부럼선게마씸

    ⬛ 삼춘네: 삼춘 + 네. (해석: 삼촌네, 이 문장에서는 ‘이웃집 어른’, 아저씨 또는 아주머니를 뜻함.)
      * 삼춘: <명사> 삼촌. 부모의 형제. (참고: 제주에서는 자기의 부모 또래의 어른들에게 ‘삼춘’ 또는 ‘삼촌’이라고 다정한 의미로 부름).

      * -네: <접미사> 일부 대명사 뒤에 붙어 ‘집안’, ‘무리’, ‘들’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쉐가: 쉐 + -가. (해석: 소가)

      * 쉐: <명사> 소(牛).

      * 가: <조사> 주격 조사.

    ⬛ 들언: 들다 + -언. (해석: 들어가서, 침범해서).

      * 들다: <동사> (남의 밭이나 구역에) 들어가다, 침범하다.

      * -언: <어미> 연결어미. ‘-고’, ‘-하여’, ‘-해서’.
      ⬥ 예문: 밥 먹언 보난 ➔ 해석: 밥을 먹고 보니.
    ⬛ ᄆᆞᆫ딱: <부사> 모두. (= 멘딱, 모도, 모두, 모신딱이, 문짝, ᄆᆞᆫ, ᄆᆞᆫ짝)

    ⬛ 허우대겨 부럼선게마씸: 허우대기다 + -여 + 불다 + -엄ㅅ + -언게(-엉게) + 마씸 (해석: 어지럽게 짓밟아 놓아 버리고 있더라고. 엉망으로 헝클어 놓아 버리고 있더라고요.)
      ※ 참고: ‘부럼선게’는 ‘불엄선게’에서 어간 받침 ‘ㄹ’이 탈락한 구어체 발음 형태임.
      * 허우대기다: <동사> (곡식·풀 등을) 어지럽게 짓밟아 놓다, 짚이나 풀 따위를 헝클어 놓다. (참고: 제주어사전에 수록되지 않았으나, 어르신들이 자주 사용하시던 생활 어휘)
      * -여: <어미> ‘ᄒᆞ다’ 동사나 용언 어간 뒤에 붙어 부사형을 만드는 어미.
      * 불다: <동사> (보조동사)-아/어/여 버리다. (앞말의 행동이 이미 끝났거나 이루어진 결과, 말하는 이가 아쉬운 감정이 남았음을 나타냄).
      * -엄ㅅ-: <선어말어미> -고 있-. 그 ‘동작을 계속하고 있는’이란 뜻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 엄시-).

      * -언게(-엉게): <어미> -던데. (과거에 사실을 회상하여 그 상대방도 긍정하게끔 나타내는 종결어미. = -엉게).
      * 마씸: <접미사> 서술어미 뒤에 덧붙여 존대를 나타내는 첨사. (= 마씀, 마슴, 마시, 마심, 마씨).

    거 보난 자락 북부기 뒈싸졌수게

    ⬛ 거 보난: 거 보(다) + -난. (해석: 그거 보니까).
      * 거: <대명사> ‘그거’의 준말
      * 보다: <동사> 보다.
      * -난: <어미> -니까. 앞으로 하려는 말에 대하여 원인이 되는 사유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예문: 가젠 하난 ➔ 해석: 가려고 하니까)
    ⬛ 자락: ① <부사> 부쩍, 한껏, 몹시, 크게. (감정이나 상태의 정도가 매우 심함을 나타냄) ② <부사> 갑자기 힘있게 미는 모양.
    ⬛ 북부기: <명사> 허파. (= 부에)

    ⬛ 뒈싸졌수게: 뒈싸지다 + -엿수게. (해석: 뒤집어졌습니다, 뒤틀렸습니다)

      * 뒈싸지다: <동사> ① 뒤집어지다, 뒤틀리다, 몹시 뒤틀려 엉클어지다. (속이나 마음이 몹시 불쾌하거나 뒤집히는 상태) ② 뒤로 자빠지다.

      * -엿수게: <어미> 종결어미. 동작이나 상태가 완료되었음을 긍정하게끔 나타내는 정중한 종결어미 (-였지요, -었습니다).
      ⬥ 참고: ‘부아나다’를 ‘부에나다’ 또는 ‘북부기 뒈싸젓다(‘허파가 뒤집어졌다’의 뜻)고도 함.

    나도 멩심ᄒᆞ영 정낭 질러뒁 뎅겨사주마는

    ■ 나도: 나 + 도. (해석: 나도)

      * 나: <대명사> 나. (1인칭 대명사)

      * 도: <조사> 보조사. (-도)

    ■ 멩심ᄒᆞ영: 멩심ᄒᆞ다 + -영. (해석: 명심해서, 조심해서)

      * 멩심ᄒᆞ다: <동사> 명심하다, 유의하다, 조심하다.

      * -영: <어미> 연결어미. ① -고서. ② -여서.

    ■ 정낭: 정낭을. (문맥상 목적격 조사 ‘을’이 생략)

      * 정낭: <명사> 제주 전통 집 대문 위치에 걸쳐 놓는 나무 막대. 대문을 대신하는 나무 막대.

    ■ 질러뒁: 질르다 + 두다 + -엉, (해석: 가로질러 두고, 걸쳐 놓고).

      * 질르다: <동사> 찌르다. 틈이나 사이에 무엇을 꽂아 넣다. (문장에서는 ‘정낭을 정주석 구멍에 찔러두고서’, ‘정낭을 가로 세워두고서’의 뜻임)
    (막대기 따위를) 가로지르다, 걸쳐 놓다.

      * 두다: <보조용언> (어떤 행동을) 해 두다.

      * -엉: <어미> 연결어미. (-어서, -고서).

    ■ 뎅겨사주마는: 뎅기다 + -어사 + -주마는. (해석: 다녀야 했었지마는).
      * 뎅기다: <동사> 다니다. (= 뎅이다. ᄃᆞ니다, 고ᄃᆞ니다, ᄃᆞᆮ니다.)
      * -어사: <어미> -어야. 앞 절의 일이 뒤 절 일의 조건임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 -주마는: <어미> -지마는. 그 말을 시인하면서 다음 말에서 어긋나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참고: ‘뎅겨사주마는’ 뒤에 ‘못했지만’이 생략된 형태임. 즉, ‘다녀야 했었는데도 못했지만’의 뜻)

    삼춘도 ᄒᆞ쏠 멩심ᄒᆞ영 쉐 잘 매놔사쿠다

    ■ 삼춘도: 삼춘 + 도. (해석: 삼촌도).

      * 삼춘: <명사> 삼촌.
      * 도: <격조사> 도. 다른 것에 어느 것이나 포함시킴을 뜻하는 격조사.

    ■ ᄒᆞᄊᆞᆯ: <부사> 아주 자그만큼. (= ᄒᆞ꼼)

    ■ 멩심ᄒᆞ영 (앞 해석 참조)  

    ■ 쉐: <명사> 소. (본 문장에서는 ‘소가’에서 <조사> ‘가’ 생략된 형태임).

    ■ 잘: <부사> 잘, 옳고 바르게.

    ■ 매놔사쿠다: 매놓다(매어 놓다) + -어사 + -쿠다. (해석: 매어 놓아야겠습니다.)
      * 매놓다: <동사> ‘매어 놓다’의 축약형.

      * -어사: <어미> -어야. 앞 절의 일이 뒤 절 일의 조건임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 -쿠다: <어미> -겠습니다. 화자의 의도ㆍ추측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예문: 이것으로 가져가쿠다. ➔ 해석: 이것으로 가져가겠습니다).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예문, 어떠셨나요?

    오늘은 제주의 올레에서 이웃 어른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으로, 시골 마을에서 가끔씩 마주칠 만한 얘기입니다. 잠깐 골목길 밖에 볼 일이 있어서 미처 정낭을 세우지 않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닥친 난감한 상황, 화가 치밀만한 상황에서도 너그럽고 담담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남이 실수로 내 가슴을 후벼 팔 때, 길길이 날뛰며 남을 혼내기보다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음의 실수가 없도록 당부하며 서로를 보듬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에 나오는 ‘올레’와 ‘정낭’에 대한 내용은 저의 ‘제주 이야기’ <제4회> 글에서 자세히 전해드렸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제주 이야기] 『<제4회> 닫혀 있으나 신뢰로 열리는 문, 제주의 지혜 ‘정낭’』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제3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ᄌᆞᆷ녠 애기 나 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 (해녀는 아기 낳고 사흘이면 물질한다)

    초가집 안 자는 아기, 태왁과 빗창을 들고 바다로 향하는 흰 옷 입은 해녀 뒷모습, 현무암 돌담길 풍경.

    (그림: ai 생성)

    지난 1, 2회 글을 통해 살펴본 ‘제주어’, 어떠셨나요? 표준어와는 사뭇 다른 제주어만의 독특한 결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찐 토박이의 제주어]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제주 여인들, 특히 해녀들의 강인함과 근면성을 나타내는 속담을 예문으로 제시합니다.


    제주의 ‘삼다삼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휘입니다. 이 ‘삼다’에 해당하는 ‘돌, 바람, 여자’ 중, ‘여자가 많다’는 ‘여자가 많음을 뜻하는 풍요가 아니라, 남자의 부족함을 의미하는 결핍’의 산물이었습니다.

    척박한 화산섬에서 농업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서 거친 바닷바람과 풍랑 속에서도 바다에서 어로를 해야만 하였고, 조정에 바칠 해산물 채취를 위해 남성들은 목숨을 걸고 무리하게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국 풍랑에 표류하거나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남성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더욱이 조공을 빌미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공물을 요구하는 관리들의 끝없는 수탈에 견디다 못한 제주 남성들이 대거 제주 섬을 탈출하면서 남성의 수는 대폭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남아 있는 여성들이 혼자의 힘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남은 여성들은 남자가 부족한 만큼 조공으로 바쳐야만 할 해산물 채취의 책임이 더 커졌기에 한층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제주의 여성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과감히 거친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였고, 이 여성들의 ‘연대와 상생’을 바탕으로 한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재에 등록되어 전 세계에 위대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필자의 ‘제주 이야기’ <제5회> 글에서 자세히 전해드렸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문 >
    제주어
    (속담)
    1. ᄌᆞᆷ녠 애기 나 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  

    2. ᄌᆞᆷ녜 애긴 사을만에 아기 것 멕인다.
    번 역1. 잠녀는 아기를 낳아 두고 사흘이면 물질하러 바다에 들어간다.
    (해녀의 강인성과 근면성을 나타내는 말)

    2. 잠녀의 아기는 사흘만에 아기의 밥(또는 미음)을 먹인다.
    (해녀는 아기를 낳은 뒤 사흘 만에 젖을 떼고 아기의 밥을 먹이고 일하러 간다는 말)

    출처: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ᄌᆞᆷ녠 (좀녠, 잠녠) ᄌᆞᆷ녜 (좀녜, 잠녜)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 ) 안의 표기는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발음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2) 어휘 해설

    ① 1. ᄌᆞᆷ녠 애기 나 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

    ⬛ ᄌᆞᆷ녠: 해녀는. <명사> ᄌᆞᆷ녜 + <조사> ㄴ = ᄌᆞᆷ녜는
      * ᄌᆞᆷ녜: <명사> 잠녀(潛女), 해녀(海女).   
      * ㄴ: <조사> 받침 없는 단어 뒤에 붙어 ‘~는’의 뜻을 나타냄.
      * ‘ㄴ’의 예: 괴긴(고기는) = 괴기 (고기)+ ㄴ.
    ⬛ 애기: <명사> 아기.
    ⬛ 나: <동사> 낳다. 나-(낳아) + <연결어미> -아 ➔ 나 (어미 ‘-아’가 탈락/축약되어 ‘나’ 형태가 된 것임).
    ⬛ 뒁: 두고서. 두어 + -ㅇ  
      * 두다: <동사> 두다. (두 + 어 ➔ 두어)   
      * -ㅇ: <연결어미> 용언 어간이나 어미 뒤에 붙어 앞선 동작이 지나거나 연속됨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서’의 뜻).
    ⬛ 사을이민: 사흘이면.
      * 사을: <명사> 사흘 (= 사흘).
      * -이민: <어미> -이면, 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서, 가정적 사실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물에 든다: (바닷)물에 들어간다. 물질을 한다.
      * 든다: <동사> 들다 + <어미> -ㄴ다
      * 들다: <동사>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들어가다.
      * -ㄴ다: <어미> 현재의 동작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 참고: 제주어에서 ‘물’은 맥락에 따라 ‘바다(바닷물)’를 의미하며, ‘물에 든다’는 ‘해녀들이 물질 작업을 한다’를 뜻하는 관용구입니다.


    ② 2. ᄌᆞᆷ녜 애긴 사을만에 아기 것 멕인다.

    ⬛ 애긴: 애기 + ㄴ. (= 애기는 = 아기는).
      * 애기: <명사> 아기.
      * ㄴ: <조사> 받침 없는 단어 뒤에 붙어 ‘~는’의 뜻을 나타냄.
    ⬛ 사을만에: 사흘 만에.
      * 사을: <명사> 사흘 (제주에서는 ‘사흘’도 함께 사용함)
      * 만: <의존명사> (시간이) 경과했음을 나타내는 말. (표준어 ‘만’과 동일)
      * 에: <조사> 고정된 공간적 처소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격조사.
      * 참고: 제주어에서 날짜를 세는 말 중 ‘하루, 이틀’은 형태 변화가 없으나, ‘사을, 나을’은 ㅎ이 탈락한 형태와 ‘사흘, 나흘’ 형태가 함께 쓰임.
    ⬛ 아기 것: 아기의 밥 (또는 미음). ‘아기의 것’에서 <속격 조사> ‘의’가 생략된 형태.
      * 아기: <명사> 아기.
      * 것: <명사> 음식, 양식. (※ 사전상 기본 정의는 ‘가축의 먹이’이나, 실생활에서는 사람의 ‘밥’이나 ‘먹을거리’를 뜻할 때도 널리 쓰임.)
    ⬛ 멕인다: 멕이다 + -ㄴ다.
      * 멕이다: <동사> 먹이다. (제주에서는 ‘먹이다’를 그대로 쓰기도 함).
      * -ㄴ다: <어미> 받침 없는 용언 어간에 붙어, 그 행동을 직접 지정하여 나타내는 종결어미. (예: <동사> 보여주다 + -ㄴ다 = 보여준다)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출산 후 단 사흘 만에 갓난아기를 집에 두고 바다로 물질을 나가는 제주 해녀들, 오늘은 제주 속담 속에서 살아 숨쉬는 해녀들의 강인하고 근면한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속담, 어떠셨나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이 있듯, 남성들의 부재라는 큰 시련 속에서도 제주의 여성들은 굳건히 삶을 일구어 냈습니다.

    만일 독자 분들이 맞고 있는 상황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면, ‘제주 해녀’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강인함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스르는 건 어떨까요?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제주 이야기] 『<제5회> ‘제주 해녀’의 위대한 연대와 상생의 사회학』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제2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무사 경 멘작멘작ᄒᆞᆫ 멘주기 심엉 ᄆᆞᆫ죽거렴시니? (~올챙이를 잡고 만지작거리니?)

    숲속 냇가 웅덩이서 질척질척하고 미끄러운 진흙 땅에 장화를 신은 어린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올챙이들을 만지며 놀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가방과 텀블러를 곁에 둔 어머니가 다정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안전하고 평평한 풀밭 쪽에서 놀라고 말하고 있는 따뜻한 수채화 풍의 일러스트입니다.

    (그림: ai생성 )


    ‘제주어’는 표준어와 매우 달라서 대강의 의미조차 유추하기 어려운 어휘들이 많습니다. 특히 어미의 변화가 다양해서 그 변화의 쓰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미 정확히 알고 있는 어휘들로 구성된 문장마저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처음 접하면 외국어 못지않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겠지만 본 칼럼에서 드리는 어휘 설명을 읽고 나시면 점점 재미를 느끼며 하나씩 알게 될 것입니다. 힘드시겠지만 당분간 참고 함께 알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접하는 제주어 역시 생소한 어휘들이 많아서 쉽지 않을 거라 여깁니다. 따라서 독자분들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제주어를 접하게 되면 지레 겁먹고 흥미를 잃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한편, 왜 제주어를 표준어와는 별개의 독립된 언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느껴보시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찐 토박이의 제주어]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유사한 발음을 반복하며 즐기는 운율 놀이처럼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종의 언어유희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 문 >
    제주어“늰 무사 경 멘작멘작ᄒᆞᆫ 멘주기
    심엉 ᄆᆞᆫ죽거렴시니?
    경 는착는착ᄒᆞᆫ 디 싯당
    는착ᄒᆞ영 ᄂᆞ려지민 어떵ᄒᆞ젠 햄시니?
    ᄒᆞ커건 호꼼 멘짝ᄒᆞᆫ더레 강 자파리ᄒᆞ라.”
    번 역“너는 왜 그렇게 (부드러워서) 잘라질 듯한 올챙이를
    잡고서 만지작거리고 있니?
    그렇게 미끌미끌한 곳에 있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하려거든 (안전하게) 조금 평평한 데로 가서 놀거라.”

    ※ 안내: 박스 안의 제주어는 옛한글 원형입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ᄒᆞᆫ(~한, ~혼, ~헌)⬛ ᄆᆞᆫ죽거렴시니?(몬죽거렴시니?
    ⬛ ~ᄒᆞ영 (~하영, ~호영, ~허영)⬛ ᄂᆞ려지민 (노려지민)
    ⬛ ~ᄒᆞ젠 (~하젠, 호젠, ~허젠)⬛ ᄒᆞ커건 (하커건, 호~, 허~)

    ※ 안내: 제주어 옛한글 원형 어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현대 발음을 함께 표기합니다.


    2) 어휘 해설

    늰 무사 경 멘작멘작ᄒᆞᆫ 멘주기 심엉 ᄆᆞᆫ죽거렴시니?

    ⬛ 늰: 너는
      * 늬: <대명사> 너. (= 느)
      * 늰: <대명사> 늬 + <조사> -는 = 너는.

    ⬛ 무사: <부사> 왜. (= 웨)

    ⬛ 경: <부사> 그렇게.
    ⬛ 멘작멘작ᄒᆞᆫ: 멘작멘작한.
      * 멘작멘작: <부사> 물건이 조금만 건드려도 뚝뚝 끊어지는 모양. (= 믠작)

      * 멘작ᄒᆞ다: <형용사> 물건이 아주 부드럽고 연(軟)하여 만질만질하다.
    ⬛ 멘주기: <명사> 올챙이.
    ⬛ 심엉: 심어서
      * 심다: <동사> (손으로 ~을) 잡다/쥐다.
      * -엉: <어미> -어서. 두 동작을 말할 때, 앞에 나오는 음성모음의 용언 어간에 붙어서, 나중의 동작의 근거ㆍ이유ㆍ원인이나 시간적 선후 관계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 ᄆᆞᆫ죽거렴시니?: 만지작거리고 있니?

      * ᄆᆞᆫ죽거리다: <동사> 만작거리다. 자꾸 만지다.
      * -렴시니: <어미> -고 있니.
      * ᄆᆞᆫ지다: <동사> 만지다. (= ᄆᆞᆫ직다, ᄆᆞᆼ직다.)
      * ᄆᆞᆫ직아보다: <동사> 만져보다. (= ᄆᆞᆫ저보다.)


    경 는착는착ᄒᆞᆫ 디 싯당

    ⬛ 는착는착ᄒᆞᆫ 디: 는착는착한 곳에 ➔ 미끄러운 곳에.
      * 는착는착: <부사> 땅이 질고 반드러워 밟으면 자꾸 밀려 나가는 모양. ‘는착’의 힘줌말.
      * 는착: <부사> 땅이 질고 반드러워 밟으면 밀려 나가는 모양.
      * ᄒᆞᆫ: <동사> ᄒᆞ다 + <어미> -는. (예: 웃다 + -는 = 웃는)

      * -디: <조사> 데 (표준어의 의존명사 ‘곳’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말.)

      * -ᄒᆞᆫ 디: -한 데(에). -한 곳(에) (제주어는 조사 ’에‘를 대개 생략함.)

    ⬛ 싯당: 있다가.
      * 싯당: 싯다 + -다가
      * 싯다: <동사> 어느 곳에 머물다. (= 잇다.)

      * -당: <어미> -다가. (‘무엇을 하다가’의 ‘다가’에 해당.)


    는착ᄒᆞ영 ᄂᆞ려지민 어떵ᄒᆞ젠 햄시니?

    ⬛ 는착ᄒᆞ영: 미끌어져서(제주어). (표준어의 ‘미끄러져서’ 해당)
      * 는착ᄒᆞ다: <동사> 질척한 곳을 잘못 디디어 미끌하다. (= 는탁ᄒᆞ다, 닌착ᄒᆞ다.)
      * -영: <어미> -고서. (예: 무엇을 하영 ➔ 무엇을 하고서)

      * -영근에: <어미> -고서. 연결어미 ‘-영’의 뜻을 더욱더 세게 나타내는 연결어미. (= -여근에).

    ⬛ ᄂᆞ려지민: 넘어지면.
      * ᄂᆞ려지다: <동사> 넘어지다. (= 넘어지다, 부더지다, 푸더지다.)
    ⬛ 어떵ᄒᆞ젠: 어떻게 하려고. 어쩌려고.
      * 어떵: <부사> 의견,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찌 되게.
      * 어떵ᄒᆞ다: <형용사> 어떠하다. 어떠한 것이 이유나 원인이 되다.

      * -젠: <어미> -려고, -겠나. 용언 어간에 붙어서, ‘하게’ 할 자리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묻는 뜻을 나타내는 어미.

    ⬛ 햄시니?: 하고 있느냐? (예: 무사 경 햄시니? ➔ 왜 그렇게 하니?)

      * 시니: (하)니, (하)느냐. (예: 구린내 남시니? ➔ 구린내 나니?)


    ᄒᆞ커건 호꼼 멘짝ᄒᆞᆫ더레 강 자파리ᄒᆞ라.

    ⬛ ᄒᆞ커건: 하겠거든, (<동사> ᄒᆞ다 + <어미> 커건)
      * -커건: 어미 –겠거든.

    ⬛ ᄒᆞ꼼: <부사> 아주 자그만큼. (= ᄒᆞᄊᆞᆯ)
      * ᄒᆞ꼼만: <부사> 아주 조금만 (= ᄒᆞ쏠)

      * ᄒᆞ꼼썩: <부사> 아주 조금씩 (= ᄒᆞ꼼식, ᄒᆞᄊᆞᆯ썩, ᄒᆞᄊᆞᆯ씩)
      * ᄒᆞ꼼ᄒᆞ민: <부사> 1. 그저 약간하면, 2. 무슨 일이 조금만 있으면. (=ᄒᆞᄊᆞᆯᄒᆞ민)
      * ᄒᆞ끌락ᄒᆞ다: <형용사> 아주 작다.
    ⬛ 멘짝ᄒᆞᆫ더레: 평평한데로

      * 멘짝ᄒᆞ다: <형용사> 평평하다.
      * 멘짝ᄒᆞᆫ: 평평한.

      * -더레: <조사> 으로. 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서, 행동이 향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격조사.

    ⬛ 강: 가서. (<동사> 가다 + <어미> -ㅇ)

      * 가다

      * -ㅇ: <어미> -서, (서다 + -ㅇ = 성 = 서서)
    ⬛ 자파리: <명사> 어떤 것을 가지고 하는 놀이 또는 장난.

      * 자파리ᄒᆞ다: <동사> 1. 장난하다. 2. 짖궂게 못된 짓을 하다.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지난 제1회 글에서 보았던 ‘두린 몽생이‘, 이 아이가 위험하게 연못가의 질퍽하고 미끄러운 곳에서 올챙이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미끄러져 넘어질까 걱정하면서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장난하며 놀도록 이끌어 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늘 사용하던 어휘들이었지만, 요즈음은 쓰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점점 조용히 사라져가는 제주어의 현실을 보며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봅니다. 제주에서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주어를 익혀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제주어가 영원히 사랑받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찐 토박이의 제주어]는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두린 몽생이’들은 잘 크고 있나요? 혹시 위험한 곳에서 ‘자파리‘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럴 때 무조건 혼내시기보다 “ᄒᆞ커건 호꼼 멘짝ᄒᆞᆫ더레 강 자파리ᄒᆞ라.”며 정겨운 제주어 한마디를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한마디, 어떠셨나요?

    정겨운 제주어 단어 하나가 가족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제주어의 가치와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제주 이야기] 카테고리의 <제8회> 글 “고대어의 원형을 품은 ‘제주어(濟州語)’, 소멸 위기에 처하다” 편도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제1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사라져가는 소중한 보물, ‘제주어’ 연재를 시작하며

    부제: 두린 ᄆᆞᆼ생이 (어린 귀염둥이)

    현무암 돌담과 귤나무가 보이는 제주 전통 초가집의 마루에 정갈한 상차림이 차려져 있습니다. 어린아이(두린 몽생이)가 마루에 앉아 볼을 빵빵하게 밝은 표정으로 밥과 반찬(촐레)을 맛있게 오물오물 먹고 있으며, 옆에 앉은 할머니는 수건을 머리에 쓰고 아이를 사랑 가득한 눈빛과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정겹고 따뜻한 일러스트입니다.

    (그림: ai생성)

    1. 제주어의 독창성과 가치, 그리고 연재 취지

    흔히 ‘제주 사투리’ 또는 ‘제주 방언’으로 불리는 ‘제주어’는 단순히 한반도 육지 언어의 변형이나 사투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주어는 그 독창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독립된 고유 언어 코드(jje)를 부여받은 명실상부한 독립적 언어 자산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형태인 ‘아래아(ㆍ)’와 옛 어휘, 문법 구조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언어의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어는 현재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소멸 위기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제주어를 듣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 수천 년간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지탱해 온 언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에 ‘제주오리진(Jeju Origin)’에서는 소중한 제주어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누구나 일상에서 쉽고 친근하게 제주어를 접하고 이어나갈 수 있도록 [찐 토박이의 제주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꾸준히 제주어 문장을 선보이며, 그 속에 담긴 정서와 재미있는 생활 속 사용법을 알기 쉽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들러 제주어의 매력을 함께 느끼고 나누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2. 오늘의 제주어

    < 예문 >
    제주어에고~, 우리 두린 ᄆᆞᆼ생이,
    ᄎᆞᆯ레도 옴막옴막 잘 먹엄저.


    3. 문장 번역 및 어휘 해설

    1) 표준어로 번역

    < 예문 >
    번 역아이고~, 우리 어린 귀염둥이,
    반찬도 오물오물 잘 먹고 있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ᄆᆞᆼ생이 (몽생이)ᄎᆞᆯ레 (촐레)

    ※ 안내: 제주어 옛한글 원형 어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현대 발음을 함께 표기합니다.

    ⬛ 두린: <형용사> 어린.
      * 두린아기: <명사> 어린아기.
      * 두린때: <명사>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아직 모자란 시기.
      * 두리다: <형용사> 어리다.
    ⬛ ᄆᆞᆼ생이(몽생이): <명사> 1. 망아지(어린 말). 2. 동물의 새끼나 어린아이를 귀엽게 부를 때 사용.
      * ‘두린 몽생이’: 1. ‘어린 망아지’, 2. ‘귀여운 어린 아이’.
    ⬛ ᄎᆞᆯ레(촐레): <명사> 반찬(주로 밥과 곁들여 먹는 장, 젓 따위의 반찬)
    ⬛ 옴막옴막: <부사> 음식물 따위를 입안에 연이어 넣어 먹는 모양.
    ⬛ 먹엄저: 먹고 있다.
      * -엄저: <어미> -고 있다. 그 동작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의 종결어미.
      * 먹다 <동사> + -엄저 <어미> = 먹엄저.
      * 뒤집다 <동사> + -엄저 <어미> = 뒤집엄저.
      * (옷이) 젖다 <동사> + -엄저 <어미> = (옷이) 젖엄저.

    4. 토박이의 한마디

    어릴 적 밥상머리에 앉아 반찬을 오물오물 잘 먹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곁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에고~ 우리 두린 몽생이 잘 먹엄저” 하고 정답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원래 ‘몽생이’는 어린 망아지를 뜻하지만, 제주 할망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새끼를 부르는 따뜻한 대명사였습니다.

    독자 여러분 곁에도 사랑스러운 ‘두린 몽생이’가 있으신가요? 오늘은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겨운 제주어 한마디를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5. 마무리하며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한마디, 어떠셨나요?

    정겨운 제주어 단어 하나가 가족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제주어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지속하여 가꾸고 유지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 계속 전해드릴 [찐 토박이의 제주어]를 통해 제주어의 매력을 느끼시고, 소멸해가는 제주어를 지켜내는 작은 걸음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제주어의 가치와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제주 이야기] 카테고리의 <제8회> 글 “고대어의 원형을 품은 ‘제주어(濟州語)’, 소멸 위기에 처하다” 편도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제8회> 고대어의 원형을 품은 ‘제주어(濟州語)’, 소멸 위기에 처하다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훈민정음언해> 이미지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제7회에서는 제주의 강렬한 땡볕과 풋감의 탄닌 성분이 만나 천연 수지 코팅막을 형성하는 ‘제주 갈옷’ 속의 경이로운 섬유물리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이 준 기후적 시련을 극복하고, 이를 자외선 차단율 98%라는 완벽한 기능성 의복으로 녹여낸 선조들의 의생활 지혜는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지요.

    이처럼 대지, 돌담, 밥상, 의복까지 삶의 모든 물질적 영역을 과학적 지혜로 채워가던 제주의 선조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자산에도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제주의 눈에 보이는 유산들을 넘어, 제주 사람들의 영혼과 역사의 궤적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는 무형의 위대한 자산, ‘제주어(濟州語)’ 속에 숨겨진 언어학적 가치와 마주한 소멸 위기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육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알아듣기 힘든 낯선 사투리로 취급받던 제주어가 어떻게 고대 한국어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타임캡슐이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1.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반치음() 품은 언어학적 타임캡슐

    제주어가 이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는, 육지와 고립된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15세기 중세 한국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제주어는 국어사 연구의 표준을 제시하는 거대한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1) 아래아()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모음인 ‘아래아(ㆍ)’의 생생한 생존입니다. 육지 표준어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아래아 발음이 완전히 소멸하여 음가 자체가 사라졌지만, 제주어에서는 여전히 아래아의 독특한 발음이 일상 속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예>

    * ᄒᆞᆫ저 옵서예(얼른 오세요)
    * ᄆᆞᆯ(말)
    * ᄒᆞ다(하다)
    * 오ᄂᆞᆯ(오늘)
    * ᄌᆞ근ᄌᆞ근(자근자근)
    * ᄀᆞᆯ개비(개구리)
    * ᄃᆞ람지(박쥐, 다람쥐)
    * ᄃᆞ오다(데려오다)
    * ᄒᆞ나(하나)
    * 모ᄆᆞᆯᄎᆞ베기(메밀수제비)

    2) 반치음(ㅿ)

    15세기 문헌 속 반치음(ㅿ)을 포함하던 어휘들이 육지에서는 자음이 아예 날아가 버린 형태(가위, 아우, 겨울)로 변한 반면, 제주어에서는 ‘ㅅ’ 형태로 자음의 흔적을 굳건히 유지하며 육지 말(표준어)과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장정민·배영환, <20세기 초 제주방언의 음운론적 연구 – 《朝鮮語方言の硏究(1944)》를 중심으로 -> 내용 재구성

    (발췌 요약)

    중세 국어 어휘표준어
    (ㅿ ➔ ∅ 변화)
    (ㅿ 소리 완전히 소멸)
    제주어
    (ㅿ➔ ㅅ 변화)
    (‘ㅅ’으로 남아 보존)
    ᄀᆞᆺ애가위ᄀᆞ새, 가새
    아ᅀᆞ아우아시
    저ᅀᅳᆶ겨울ᄉᆞ울~ᄀᆞ실, 겨실
    ᄀᆞᆺ가 (테두리)

    3) 순경음 비읍(ㅸ)의 잔재

    <제주어 표기법 해설> (2014, 제주발전연구원)에 제시된 어휘들을 살펴 보면, 순경음 비읍(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1음절 어간의 사례
    * 형용사: 곱다, 밉다, 춥다, 덥다, 맵다, (각도가) 굽다, 답다, 쉽다
    * 동사: 눕다, 줍다, 깁다, (불에)굽다, 낍다/끼우다, 돕다, 뱁다/배우다, 뵙다, 쌉다/싸우다  

    ② 2음절 이상의 어간의 형용사 사례* 차겁다, 뜨겁다, 서럽다, 즐겁다, 게벱다/게붑다(표준어의 가볍다), 무겁다, 더럽다, 어렵다, ᄆᆞᄉᆞᆸ다/무섭다, 부럽다/불룹다,


    어릴 적 조부모님과 생활할 때에는 더운 날이면 “에고~ 더버라~”, 추울 때에는 “추버라”라고 발음하시는 것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당시에는 표준어가 아닌 잘못된 사투리 발음을 하시는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발음이 재미있어서 장난삼아 따라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자라서 순경음 비읍(ㅸ)을 알고 나니 그렇게 발음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문자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선조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대로 보존되어 온 생생한 언어의 유산이지요. 제가 보기에 요즘엔 거의 이런 발음을 하시는 분이 없는 듯합니다. 지금은 현대적 어휘로 많이 바뀌었지만, 조금만 거슬러 살펴보면 그 소중한 잔재를 여전히 실감할 수 있습니다.

    4) 소결

    이처럼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아래아(ㆍ), 반치음(ㅿ), 순경음 비읍(ㅸ)의 흔적이 어휘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국어학자들은 책 속의 활자로만 존재하던 고대어의 실제 발음과 문법을 연구하기 위해 반드시 제주를 찾습니다. 척박한 변방의 섬이라 불리던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아득한 세월 동안 한민족의 소중한 언어적·문화적 원형을 안전하게 품어낸 영리한 보관소가 되어준 것입니다.

    2. 어휘의 풍요로움과 보존량

    1) 어휘의 풍요로움

    제주어에는 바람의 종류를 표현하는 단어와 바다에서 어로 작업에 관한 단어 및 돌과 관련된 단어들만도 각각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 실용적 생활 어휘가 발달해 있습니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고립이라는 한계를 중세 한국어 원형의 뚝심 있는 보존력으로 이겨낸 제주의 언어. 가뜩이나 디지털 소통으로 인해 전 세계의 소수 언어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는 요즘, 풍요로운 어휘를 가진 제주의 전통 언어는 사실상 한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탱하는 가장 귀하고 단단한 ‘무형의 생명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2) 중세 국어 어휘 보존량

    전통 제주어는 15세기 조선 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고어(古語)의 형태와 ‘아래아(ㆍ)’ 등 중세 국어의 음운을 가장 풍부하게 품고 있어, 국어학계에서 ‘살아있는 중세 국어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어 어휘의 기록화 작업은 지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1995년 발간한 《제주어사전》에는 표제어 18,456 항목을 수록하였고, 2009년 발간한 《개정·증보 제주어사전》에는 25,350 항목을 수록했습니다. 이어서 제주학연구센터와 진행한 《제주어대사전》 편찬 사업을 통해 현장 어휘와 관용어 등을 보완하며 40,000여 개 이상을 목표로 어휘 자산이 확충 및 기록화되고 있습니다. 한편, 《제주어대사전》 웹사전 구축 기반을 마련하여 “제주어왓(‘제주어밭’이라는 뜻)”을 이미 시험 운영 중에 있습니다.

    3. 제주어의 특징

    1) 조사의 과감한 생략과 단어의 축약

    예를 들면,

    * 어디에 가십니까? –> 어디 감쑤강?
    * 여기에 와서 이것을 보십시오 –> 여기 왕 이거 봅써.
    * 어디에 가고 계십니까? –> 어디 감수꽈?
    *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 —> 학교 강 공부 핸(해연).

    제주어에서 조사가 생략되고 단어가 짧게 축약된 이유는 제주의 거센 ‘바람’과 생존 환경에 적응한 결과입니다. 숨비소리를 내는 해녀들의 물질이나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밭일 속에서 긴 문장으로 말하면 소리가 다 흩어져 버립니다. 특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친 바다에서의 뱃일과 해녀가 물질할 때 등에 정확한 의사전달은 생사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2) 독특한 형용사의 발달

    표준어 역시 형용사가 대단히 발달한 언어이지만, 제주어는 표준어 단어와 일대일로 매칭하기 어려운 제주만의 독특한 형용사(맛, 온도, 성품, 상태 등)들을 풍부하게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회> 글에서 다룬 ‘맨도롱하다’는 ‘미지근하다’와 ‘따끈하다’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며, 우리가 몸으로 느끼기에 매우 알맞은 적당한 온도입니다. 육지의 언어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미묘한 온도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② ‘베지근하다’라는 말은 ‘고기 등을 푹 고아낸 국물이 구미가 당길 정도로 묵직하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있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름지거나 느끼한 맛이 아니라, 깊은 진국에서 느껴지는 풍부하고 진한 감칠맛을 표현할 때 쓰는 제주 특유의 대표적인 맛 형용사입니다. 제주어가 아니면 이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③ ‘사락사락하다’는 ‘무엇이 자꾸 가볍게 쓸리거나 맞닿는 소리가 나다. 또는 그런 소리를 내다.’, ‘물건의 겉이 매끄럽지 못하고 좀 거칠다.

    ④ ‘요망지다’는 ‘똑똑하고 야무지다. 나이에 비해 총명하고 어른스럽다.’

    ⑤ ‘오소록하다’는 ‘조용하고 구석진 곳으로써 으슥하다.’

    ⑥ ‘발아뎅기다’는 ‘담장이나 나무 위 따위 발붙이기 어려운 곳을 기어 다니거나 걸어 다니다.’


    3) 공동체의 연대 철학이 담긴 어휘

    이웃을 가족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삼춘’, 이웃 간의 공동체 품앗이를 뜻하는 ‘수눌음’이 있습니다. 또한 <제4회> 글에서 언급한 ‘정낭’은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완벽한 신뢰가 있어야만 유지 가능한 문화에서 탄생한 단어입니다. 각자도생하기 힘든 거친 환경 속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연대해 온 섬사람들의 상생 철학이 단어 한 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주어’만의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4. 출륙금지령의 역설: 거대한 고립이 만든 고대어의 보존 과학

    도대체 어떻게 제주의 언어는 육지와 수백 년의 세월을 비껴가며 이토록 완벽하게 15세기의 영혼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그 역사적 열쇠는 역설적이게도 <제5회> 글에서 다루었던 중앙 정부의 가혹한 통제 정책, 바로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에 있습니다.

    인조 7년(1629년)부터 순조 23년(1823년)까지 무려 200여 년 동안 제주 사람들은 나라의 법에 묶여 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육지 사람들과의 접촉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섬 전체가 거대한 ‘지리적·문화적 감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혹한 단절은 언어학적으로 엄청난 반전의 축복을 만들어냈습니다. 언어는 끊임없이 교류하고 섞이면서 변화하는 성질을 지녔지만, 제주의 언어는 외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완벽한 ‘폐쇄적 생태계’ 속에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육지의 언어가 전란과 개화기를 거치며 아래아(ㆍ)를 잃고 기존 문법의 원형을 빠르게 잃어갈 때, 제주의 언어는 섬 안의 단단한 공동체 네트워크 속에서 15세기의 음가와 단어들을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굳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단절의 역사가, 한민족 전체의 언어 고향을 지켜낸 위대한 방파제가 된 셈입니다.

    5. 소멸 위기 4단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제주어의 냉정한 현실

    1) 소멸 위기를 맞은 제주어

    소멸 위기 4단계 언어로 분류된 제주어에 대해 문순덕 외의 《제줏말 소멸위기 실증적 진단과 대응 방안 연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수는 대략 6,000〜7,0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는 약 3,000개의 언어가 소멸위기에 있다고 추정함.

    유네스코에서는 구체적으로 언어가 맞고 있는 소멸 위기를 아래와 같이 단계별로 구분합니다. 2010년, 유네스코(UNESCO)의 《소멸 위기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기준에 따라 살펴 보면, 7단계로 구분하여 정의하였지만 실제 언어 지도상 표시는 5단계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표는,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자료 해석의 편의를 위해서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소멸 위기 4단계 언어로 분류된 제주어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문순덕 외 <제줏말 소멸위기 실증적 진단과 대응 방안 연구>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위 표를 보면 제주 사투리가 아닌 ‘제주어’로 명확히 구획되어 있으며, 소멸 위기 4단계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조사 당시 제주어 사용 인구는 약 5,000~10,000명에 불과하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원 역시 70~75세 이상의 고령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제 공인 기구인, 세계 표준화 기구(ISO)에서도 ‘제주어’를 단순 방언이 아닌 독자적인 개별 언어로 인정하여, 고유 언어 코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SIL Global (ISO 639-3 등록 관리 기관) — iso639-3.sil.org

    • 한국어 공통 코드: kor (ISO 639-3) / ko (ISO 639-1)
    • 제주어 독자 코드: jje (ISO 639-3)

    이처럼 ‘제주어’가 ‘한국어’와 별개의 고유 언어로 등록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독립된 언어 자산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제주어를 제주도 전역에서 흔하게 쓰이는 정겨운 사투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언어 다양성을 보존하는 유네스코(UNESCO)의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0년, 제주어를 단순한 사투리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언어(Jeju language)’로 인정함과 동시에, 전 세계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공식 등록했습니다. 즉, 소멸 직전 단계의 위기 상태인 것입니다.

    4단계는 언어를 사용하는 최후의 보루가 오직 ‘조부모 세대’뿐이며, 그 아래 세대로는 더 이상 언어가 자연스럽게 전수되지 않는 고립된 상태를 뜻합니다. 실제로 지금 제주의 젊은 세대나 아이들 중 전통적인 제주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거친 섬바람을 견디며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영혼의 언어가, 현대화와 표준어 보급이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이 지금 제주어가 마주한 냉정한 현실입니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인들의 문화와 가치, 사고방식과 역사 인식 및 생태 양식이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나아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진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네스코는 물론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각 국가 및 지방에서 언어의 소멸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멸 방지 기한의 경고

    현재 전통 제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 고령 인구의 연령대를 감안할 때, 향후 10~15년 이내에 체계적인 디지털 아카이빙을 완성하지 못하면 언어의 원형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현재 활발히 추진 중인 《제주어대사전》 완성과 함께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많은 어휘들을 추가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하고도 막중한 사명이라 하겠습니다.

    저 역시 SNS 등에서 일부러 제주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애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6.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다

    이 놀라운 언어학적 타임캡슐을 마주하고 나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육지의 표준어 기준에 비교되어 ‘교양 없고 투박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변방의 사투리’라 불리던 제주어는, 이제 더 이상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무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예부터 제주어는 억양이 강하고 단어가 축약되어 있어 거칠고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육지의 부드러운 서울말 기준으로만 바라보았을 때는 분명 낯선 언어가 맞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자연과 제주 선조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축복을 숨겨두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긴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기에 단어를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축약하여 소통의 속도를 높였고, 제1회에서 다룬 ‘맨도롱하다’처럼 오감과 식문화의 미묘한 경계를 날카롭게 집어내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실용적인 감정 어휘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변방의 고립이라는 한계를 한민족 최고의 문화적 자산인 고대어의 요람으로 승화시킨 제주의 언어. 이제 제주의 전통 제주어는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가치 있는 ‘무형 언어 자산의 정점’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마땅합니다.

    7. 글을 마치며: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내 안의 고유한 목소리를 지킬 시간

    제1회 글에서부터 오늘의 제8회 글까지, 제주오리진(Jeju Origin)의 이야기는 거친 바람 속에서도 나만의 원형을 잃지 않고 지켜온 숭고한 흔적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주변의 거센 유행이나 타인의 기준(표준)에 맞추느라, 나만의 고유한 색깔과 소중한 내면의 목소리(원형)를 잃어버린 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주의 언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비록 세상이 변방의 언어라 부르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수백 년간 아래아(ㆍ)를 품어온 제주어처럼 내 안에 깃든 고유한 가치와 신념을 뚝심 있게 지켜낸다면 그 자체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한 타임캡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오늘 하루, 차가운 세상의 유행 속에서 내 고유한 개성이 희미해져 힘겨워하고 있다면, 거센 섬바람 속에서도 고대어의 영혼을 단단하게 지켜내던 제주의 언어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타인의 자극적인 소음 앞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떳떳하고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채워내는 유연하고도 멋진 ‘맨도롱한’ 하루를 보내시는 것은 어떨지요?

    다음 글에서는 말 한마디, 언어 하나에도 대자연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담겨 있듯, 거친 바다와 태풍이라는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따뜻한 위로와 연대로 지켜내 준 제주의 거대한 정신적 세계관, ‘1만 8천 신(神)들의 고향, 제주 신화’ 속에 숨겨진 포용의 미학을 함께 탐색해 보겠습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양창용⦁양세정. (2013). 〈소멸위기 언어 보존 사례 분석을 통한 제주어(제주방언) 보전 방안〉,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현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 장정민·배영환-20세기 초 제주방언의 음운론적 연구– 《朝鮮語方言の硏究(1944)》를 중심으로 -, 《한말연구》 제66권 15호(2025. 5), 한말연구학회

    * <제주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 <소멸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2010. Unesco UNESDOC Digital Library

    * SIL Global (ISO 639-3 등록 관리 기관) — iso639-3.sil.org

    * 《제주어 표기법 해설》 (고재환 외, 2014, 제주발전연구원)

  • <제7회> 천연 염색의 미학: ‘제주 갈옷’에 숨겨진 자외선과 섬유물리학

    부제: 떫은 풋감과 태양이 합작한 천연 수지 코팅 과학

    제주 전통 갈옷인 갈적삼과 갈중이가 마당에 걸려있고, 제주 여성이 풋감 즙으로 무명천을 천연 염색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제6-1~4회에서는 화산섬의 결핍을 영리한 미생물 제어와 생화학적 지혜로 돌파한 제주인들의 식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척박한 땅과 바다에서 영양의 한계를 극복해 낸 ‘쉰다리, 상외떡, 빙떡, 푸른콩장, 몸국의 과학부터, 바다의 미네랄 보고인 ‘3대 전통 젓갈(게우·자리·멜젓)’, 그리고 대자연의 치유력을 담은 ‘꿩엿과 뎅이주 생엿 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이 준 한계를 건강한 장수의 비결로 승화시킨 그 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몸속 영양의 밸런스를 발효 과학으로 맞춰내던 제주의 선조들은, 지상으로 내리쬐는 가혹한 땡볕과 피부에 끈적하게 감겨오는 습한 바닷바람으로부터 몸의 표면을 지키기 위해서도 놀라운 자연 과학을 발휘했습니다.

    오늘은 제주의 흙과 돌담, 밥상에 이어 제주인들이 몸에 걸쳤던 가장 과학적인 로컬 의류, ‘제주 갈옷’에 숨겨진 섬유물리학의 비밀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척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자연의 재료를 가공해 입었던 이 소박한 옷이 어떻게 현대의 첨단 아웃도어 의류 못지않은 경이로운 기능성을 발휘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1. 뙤약볕 아래 마당에 펼쳐지던 초록색 풋감의 기억

    제주 갈옷은 엄밀히 구분하면 남녀공통으로 상의는 ‘갈적삼’, 남성의 하의는 ‘갈중이’, 여성의 하의는 ‘갈굴중이’라고 불렀지요. 요즈음은 ‘갈옷’하면 ‘갈중이’를 뜻하는 동의어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갈옷 중에 갈중이가 가장 마지막까지 삶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활용되었기에 자연스레 갈옷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입니다.

    유년 시절, 7~8월 한여름의 조부모님 댁 마당은 온통 초록빛과 갈색빛의 교차로였습니다. 고단한 노동이 일상이었던 제주의 여름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아직 채 익지 않아 떫은맛이 강한 초록색 토종 풋감을 수확했습니다.

    할머니를 도와 풋감을 따서 절구에 넣고 쾅쾅 찧다 보면, 단단한 감 씨앗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투명하고 말랑거리는 감씨의 속살이 알알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그걸 쏙쏙 골라내 입에 넣고 씹으면, 떫은맛은 덜하면서도 특유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어찌나 좋던지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맛에 취해 너무 많이 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변비로 며칠을 고생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몸속에서 수분을 강하게 응축해 버리는 풋감 속 ‘탄닌’ 성분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득했던 영락없는 유년의 훈장이었습니다.

    입안을 마비시키던 그 떫고 끈적한 감즙에 하얀 무명천을 푹 담가 적신 뒤, 조모님께서는 마당의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 천을 넓게 펼쳐놓으셨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뿌려가며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열흘 넘게 반복하셨는데, 이것을 ‘바래기’라고 합니다. 바래기를 하면 새하얗던 무명천은 어느새 묵직한 가을 대지의 갈색으로 익어갔고 손으로 만지면 빳빳한 소리가 날 만큼 단단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특히 쾌청한 밤바람 속에서 밤이슬을 맞히며 바랠 때 가장 최상의 빛깔과 태깔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조부모님은 밭으로 일을 나가실 때는 늘 빳빳한 갈옷을 갖춰 입으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 이 옷은 왜 이렇게 딱딱하고 색도 칙칙해요? 부드러운 옷이 더 편하지 않아요?” 하고 여쭈었을 때, 할아버지는 땀을 닦으시며 “이 갈중이가 보기엔 투박해도, 편하고 질긴 옷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저 형편이 어려워 입는 초라한 작업복인 줄로만 알았던 그 갈옷이, 훗날 고분자 과학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 가혹한 기후를 도리어 에너지로 활용한 ‘천연 수지 코팅 공학의 정수’였음을 깨닫고 깊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2. 풋감의 결핍이 빚어낸 천연 수지 코팅의 물리학

    제주 전통 초가 마당에서 수확한 토종 초록색 풋감을 나무 절구에 넣고 찧어 즙을 내는 과정과 항아리에 담긴 감즙 염색 원료 모습

    (ai 생성 이미지)

    제주 갈옷의 탄생은 제주의 지천에 널린 토종 감나무의 열매인 ‘풋감’에서 출발합니다. 육지에서는 가을에 감이 빨갛게 익으면 달콤한 과일로 소비하지만, 제주의 여름철(7~8월) 어머니들은 아직 채 익지 않아 떫은맛이 강한 초록색 풋감을 수확했습니다.

    이 제주의 자생 풋감은 육지 감과 달리 크기가 매우 작고 씨가 많아 식용으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결핍의 열매’였습니다. 제주 선조들은 이 쓸모없어 보이던 과실을 최고의 염색 원료로 대반전시켰습니다.

    풋감을 절구에 빻아 짜낸 즙에 무명천을 담가 적신 뒤, 이를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당이나 들판에 펼쳐놓고 물을 뿌려가며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물리적·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과정은 단순한 ‘색 입히기’가 아니라 섬유 조직 자체를 완전히 개조하는 고도의 ‘천연 수지 코팅 공학’입니다.

    떫은맛을 내는 풋감 속의 ‘탄닌(Tannin)’ 성분은 햇빛의 자외선(UV)을 받으면 서로 단단하게 엉겨 붙는 고분자 중합 반응을 일으키고,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갈옷 특유의 깊은 빛깔과 질긴 피막을 완성합니다. 이 성분이 무명천의 섬유 조직 사이사이에 촘촘히 스며들어 단단히 결합하면서, 연약하던 면직물은 이내 빳빳하고 견고한 구조로 재탄생합니다. 가죽의 인장강도와 면의 통기성을 동시에 구현해 낸,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친환경 하이브리드 천연 기능성 섬유’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3. 가혹한 노동을 쾌적함으로 바꾼 항균과 통기성의 메커니즘

    제주 선조들이 이 빳빳한 갈옷을 작업복과 일상복으로 애용했던 이유는 제주의 고온다습한 기후를 완벽하게 방어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밭담을 쌓고 밭을 일구며 흘리는 엄청난 양의 땀은 옷을 축축하게 적셔 가중되는 불쾌감을 유발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갈옷의 섬유물리학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탄닌 고분자로 코팅된 갈옷은 수분을 흡수하되 섬유가 몸에 착 달라붙지 않도록 일정한 ‘공간적 여백(텐트 효과)’을 유지합니다. 옷과 피부 사이에 천연 공기 통로가 확보되면서 바람이 유유히 통과해 땀을 빠르게 증발시키는 구조입니다. 심지어 한여름 더위에 일하다가 비누 없이 갈옷을 입은 채로 가볍게 몸을 씻고 헹궈도, 베인 땀이 물에 쉽게 빠지고 금방 고슬고슬해지는 놀라운 실용성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지상으로 사정없이 내리쬐는 가혹한 뙤약볕 아래서 갈옷은 독보적인 방패가 되어줍니다. 풋감 즙으로 물들인 갈옷은 일반 면직물에 비해 압도적인 자외선(UV) 차단 효과를 발휘합니다. 밭과 바다에서 온종일 그늘 하나 없이 가혹한 직사광선에 노출되어도 세포의 화상을 막고 피부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생화학적 비결이 바로 이 탄닌의 차단막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풋감의 탄닌 성분은 그 자체로 강력한 천연 방부제이자 항균제입니다. 땀에 젖은 채로 며칠을 방치해도 옷에서 쉰내가 나지 않고, 밭에서 풀독이 오르거나 가시 넝쿨에 찔려도 피부를 안전하게 보호해 줍니다. 빗물이나 바닷물이 튀어도 섬유 내부로 쉽게 스며들지 않고 겉 표면에서 튕겨 나가는 천연 방수 효과까지 발휘하니, 거친 바람과 바다를 마주해야 했던 제주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완벽한 생존 방어막이 없었던 셈입니다.

    4. 숫자가 증명하는 갈옷의 기능성 과학 (정밀 섬유 시험 데이터)

    제주 갈옷의 기능성은 단순한 로컬의 경험적 예찬에 그치지 않습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이혜선 님의 박사학위 논문 〈갈옷에 關한 硏究(1994)〉의 정밀 과학적 분석 데이터를 보면,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숫자로 명확히 증명됩니다.

    1) 자외선 차단 효과

    논문에 따른 제주 갈옷의 자외선 차단 효과는, 분광광도계를 통한 파장 영역별 정밀 측정 결과를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태양볕이 가장 강렬할 때 피부 세포를 손상시키고 화상을 유발하는 자외선 파장대(200~380nm)를 기준으로 볼 때, 염색하지 않은 일반 천연 무명옷은 자외선을 최소 15.43%에서 최대 35.50%까지 무방비로 통과시킵니다. 밭과 바다에서 일할 때 자외선의 최대 3분의 1 이상이 옷을 뚫고 들어와 피부에 그대로 내리쬐는 셈입니다.

    반면, 제주 토종감의 풋감 즙을 입혀 햇빛에 정성껏 발색시킨 전통 갈옷 면포는 자외선 투과율이 1.06% ~ 2.25% 미만으로 뚝 떨어집니다. 이를 실제 차단율로 환산하면 갈옷은 유해 자외선을 최소 97.75%에서 최대 98.94%까지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것입니다. 풋감의 탄닌 고분자가 일반 무명천 위에 천연 자외선 차단막을 형성하여 선조들의 세포를 온전히 지켜냈음이 학술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것입니다.

    2) 섬유 내구성 (Tensile & Abrasion Strength)

    위 논문에 따르면, 감즙 염색 후 면직물의 인장강도는 약 28% 향상되며, 특히 마찰에 견디는 마모저항성(마모강도)은 가공 전보다 2배 이상 강력해집니다. 거친 돌밭과 가시덤불 속 거친 노동에서도 쉽게 닳거나 찢어지지 않는 독보적인 내구성을 학술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3) 천연 항균성 (Antibacterial Property)

    위 논문의 황색포도상구균을 이용한 항균성 시험 결과는, 인위적인 화학 항균제 없이 오직 풋감의 탄닌 성분만으로 약 50%에 달하는 상시 세균 감소율을 기록했습니다. 땀에 젖어도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여 옷의 부패와 쉰내를 막아내는 훌륭한 천연 방부 메커니즘이 확인된 것입니다.

    4) 발수성 (물방울을 튕겨내는 표면 과학)

    발수성은 옷 표면에 닿은 물방울을 미끄러지듯 튕겨내는 표면 과학을 의미합니다. 위 논문 속 표면 발수도 시험 결과는 갈옷의 이 놀라운 능력을 숫자로 명백히 증명합니다.

    물을 분사하여 표면에서 물방울이 맺히고 튕겨 나가는 정도를 0점부터 100점까지 판정한 결과, 염색하지 않은 일반 면 원포는 0점을 기록했습니다. 물을 뿌리는 족족 천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옷이 축축하게 젖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반면, 풋감 즙을 먹여 탄닌 코팅을 완성한 전통 갈옷 면포는 무려 50점의 높은 발수도를 기록했습니다. 옷 표면에 물이 닿는 순간 섬유 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성질이 새롭게 부여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사실은 실크(견), 레이온, 나일론 등 다른 직물들은 감즙 염색을 해도 발수 점수가 여전히 0점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오직 ‘무명옷(면직물)’에 감즙을 들였을 때만 발수성이 50점으로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독점적 특징을 보였습니다. 선조들이 왜 오직 무명천에 감물을 들여 작업복으로 삼았는지, 이슬 맺힌 새벽 풀밭을 걸어도 옷이 젖지 않고 물방울을 튕겨내던 발수성의 비밀이 바로 이 50점이라는 숫자에 숨어 있었습니다.

    5) 내수성 (천연 방수 방어막)

    발수성이 옷 표면에 닿은 물방울을 미끄러지듯 튕겨내는 표면의 힘이라면, 내수성은 수분이 섬유 조직 내부로 침투하여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아내는 저항력입니다.

    제주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혹은 거친 바닷물이 들이치는 환경 속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가혹한 환경에서 전통 갈옷은 물을 막아내는 든든한 ‘천연 방수 방어막’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내수 성능의 비밀은 논문의 전자현미경(SEM) 분석 결과로 시각화됩니다. 풋감의 탄닌 성분이 면섬유 표면을 감싸 안으며 천연 코팅(Coating) 효과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섬유와 섬유 사이를 메꾸며 군데군데 얇은 막(膜)을 형성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 촘촘한 천연 방어막 덕분에 빗물이나 바닷물이 섬유 조직 내부로 쉽게 스며들지 못하고 겉 표면에서 제어되는 뛰어난 방수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6) 천연 방충성 (섬유의 부패와 좀벌레를 막는 탄닌의 지혜)

    같은 논문에 수록된 갈옷의 역사적 배경 고찰을 살펴보면, 갈옷이 지닌 천연 방충 및 방부 능력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기록에 따르면 과거 우리 선조들은 갈옷을 ‘군복(軍服)’으로도 널리 활용해 왔는데, 이는 갈옷에 강력한 방부 작용(防腐作用)이 있어 옷에 좀이나 벌레가 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풋감의 탄닌(Tannin) 성분이 직물 조직에 결합하면서 미생물과 좀벌레 같은 해충이 섬유를 갉아먹거나 부패시키는 것을 막아주는 생화학적 방어막 역할을 해주었음을 뜻합니다. 땀과 오염 물질에 상시 노출되는 가혹한 야외 환경 속에서도 옷이 쉽게 삭아내리지 않도록 직물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했던 선조들의 뛰어난 실용 과학이 논문 속 역사적 기록으로도 고스란히 증명됩니다.

    7) 상쾌한 촉감과 위생성(방오성)

    이상과 같이 이혜선 님의 박사 논문 실험 항목에서는 갈옷의 기능성이 현대적 과학적 데이터로 계량화하여 보여집니다. 한편, 고부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의 기조 강연, <제주 갈옷의 전통과 계승 발전 방향>에서 밝힌 민속학적 현장 조사와 선조들의 구술 기록은 갈옷의 우수성을 고스란히 삶의 체험에서 증명합니다. 당시 제주인들이 몸소 겪었던 생생한 증언과 갈옷의 독보적인 일상 기능성을 고부자 교수의 기록을 통해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갈옷은 일하기에는 어떤 날 어디서 입어도 편하고 만만한 옷이다. 새 옷일 때는 풀을 세게 먹인 옷처럼 뻣뻣하여 살이 닿는 목이나 겨드랑이 쪽은 까칠하다. 그러나 몇 번 입고 빨면 살가워진다. 느낌은 차츰 약해지지만 낡아도 유지된다.

    비나 땀에 젖어도 살에 달라붙지 않고 촉감이 좋다. 땀이나 비에 젖은 옷을 빨지 못하고 두어도 썩지 않으며 나쁜 냄새도 덜 난다. 보리까끄라기나 오물도 잘 묻지 않는다. 오물이 덜 묻으니 매일 입고 일해도 한 벌이면 2~3년 정도 견딘다. 쇠파리나 모기 같은 독충의 피해도 덜하다. 더운 여름 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냇가나 마을에 있는 물구덩이에서 목욕을 하였다. 갈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옷은 비누 없이 대충 주물러서 빨아 입었다. 비누는 귀하기도 하였으나 옷에 더러움 등 오염물이 다른 옷에 비해 덜 묻고 묻어도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베인 땀이나 오염이 물에 잘 빠지기 때문에 덜 써도 되었다.

    8) 소결: 지속 가능한 미래의 의류

    제주 전통 돌담 밭에서 보릿짚으로 만든 낡은 패랭이를 쓰고 갈옷을 입은 채 밭일하는 농부들과, 전통 어선인 덕판배 위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이 갈옷을 입고 작업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사방에 내리쬐는 폭염과 습도라는 한계를 풋감의 탄닌 세포와 자외선의 합작품으로 이겨낸 제주의 의복. 가뜩이나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는 화학 합성 기능성 의류가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받는 요즘, 제주의 전통 갈옷은 사실상 미래 인류의 의류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친환경 아웃도어의 요람’ 역할을 든든하게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5.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주인의 삶을 안아준 무공해 순환

    전 단국대학교 고부자 교수의 고증에 따르면, 옛 제주 사람들은 평생을 이 갈옷의 품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전통은 바로 ‘초생아 첫 싸개’ 문화입니다. 이하 고부자 교수의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과거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 배꼽 정리를 마치면, 새 옷이 아닌 ‘아버지가 입다가 낡아서 부드러워진 갈중이’를 가져와 아기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물이 귀해 아기를 즉시 목욕시키기 어려웠던 시절, 풋감의 강력한 탄닌 성분이 지닌 천연 항균·위생성이 핏덩이 아기를 보호하는 완벽한 방어막이 되어주었고, 수없이 일하며 닳고 닳은 아비의 헌 갈옷은 아기의 연한 살갗에 가장 부드러운 촉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비의 숨결이 배어 있는 갈중이에서 첫 삶을 시작한 제주의 아이들은, 자라나 평생 일터에서 갈옷을 입었습니다. 특히 가난했던 시절,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활동성을 위해 품이 좁고 길이가 아주 짧은 갈적삼을 입고 밭에서 종일 엎드려 일하곤 했습니다. 속옷도 없이 짧은 옷을 입고 일하다 보니, 허리 잔등이 피부만 햇볕에 새까맣게 가로띠 모양으로 그을리곤 했는데, 이를 제주어로 “존둥띠”라고 불렀습니다. 제주의 밭담과 숨비소리 뒤에는 이 잔둥띠를 훈장처럼 달고 살았던 어머니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갈옷은 인간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완벽한 ‘친환경 순환’을 실천했습니다.

    새 갈옷 ➔ 낡으면 아기 첫 싸개 ➔ 더 낡으면 포대기와 지성귀(기저귀) ➔ 가재도구나 질빵을 보수하는 끈 ➔ 청소용 걸레 ➔ 마지막엔 아궁이 불쏘시개

    한 치의 낭비도 허락하지 않는 제주의 조냥(절약) 정신이 깃든 갈옷은, 마지막 순간까지 천연 무공해 자원으로 지구에 완전히 귀환했습니다.

    6. 초라한 작업복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다

    이 경이로운 섬유물리학을 마주하고 나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육지의 화려한 비단옷과 삼베옷에 비교되어 ‘물이 덜 빠진 초라한 노동복’이라 불리던 제주의 갈옷은, 이제 더 이상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무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예부터 갈옷은 흙빛을 닮은 칙칙한 갈색인 데다 질감이 빳빳하여 격식 없는 하층민의 옷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육지의 화려한 오색 염색 기준으로만 바라보았을 때는 분명 투박한 옷이 맞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자연과 제주 선조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축복을 숨겨두었습니다. 화려한 염료가 귀했기에 제주의 강렬한 햇빛과 자외선 그 자체를 ‘염색의 가공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고, 거친 무명천을 햇빛 아래 달구어내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최고의 인간 공학적 의복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고부자 교수님은 글에서

    “서양 광부의 노동복이었던 ‘진(jean)’은 1970년대 이후 세계가 ‘진 패션’의 절정을 이루었고, 아직도 그 기세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염액은 공해거리인 화학염료이다. 제주 갈옷, 이에 대적해 볼 만하지 않은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태양이 선물한 무공해 노동복 제주의 ‘갈옷’ 역시 세계 패션에 대적할 만한 위대한 정체성을 품고 있습니다.

    가혹한 기후와 재료의 한계를 제주의 햇빛과 풋감의 지혜로 승화시킨 제주의 의복. 이제 제주의 전통 갈옷은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과학적인 ‘천연 섬유공학의 유산’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마땅합니다.

    7. 제주 오리진(Jeju Origin)이 풀어주는 제주 갈옷 FAQ

    독자분들이 제주의 갈옷 문화와 관리법에 대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드립니다.

    Q1. 갈옷은 입을수록 색이 더 짙어지고 이뻐지나요? 아니면 색이 바래나요?

    A. 처음 감물을 들이고 햇볕에 말리는 발색 과정(수일~수주일) 동안에는 자외선과 산소의 영향으로 색이 점점 깊고 짙은 황갈색으로 익어갑니다. 하지만 이 옷을 입고 오랜 세월 강한 햇볕 아래서 노동을 하고 반복해서 세탁하다 보면, 자외선에 의해 탄닌 색소가 서서히 분해되어 되레 색이 바래고 옅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주의 선조들은 갈옷을 오래 입어 색이 바래고 빳빳한 기운이 죽으면, 다시 한번 풋감 즙을 내어 옷에 감물을 입히는 ‘재염색’을 하곤 했습니다. 낡은 옷에 탄닌 성분을 다시 보충해 줌으로써 색상을 아름답게 복원할 뿐만 아니라, 방풍·방오·발수라는 갈옷 특유의 강인한 기능성까지 새 옷처럼 부활시켰던 선조들의 놀라운 의생활 관리 지혜였습니다.

    Q2. 갈옷을 세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나 전통적인 관리법이 있나요?

    A. 전통적으로 갈옷은 일반 화학 세제나 비누를 사용해 빨지 않았습니다. 알칼리성 세제가 닿으면 탄닌 고분자 피막이 파괴되어 갈옷 특유의 빳빳함과 항균 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저 맑은 냇물이나 용천수에 땀기만 가실 정도로 비누 없이 가볍게 주물러서 빤 뒤, 햇볕에 바짝 말려주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Q3. 육지의 삼베나 모시 같은 여름 의복과 제주의 갈옷은 무엇이 다른가요?

    A. 삼베와 모시는 정적인 여름철 ‘청량 의복’에 가깝습니다. 조직이 성글고 구멍이 뚫려 있어 바람은 잘 통하지만, 마찰에 극히 약해 거친 노동을 하면 금방 미어지고 찢어집니다. 반면 제주의 갈옷은 면직물의 조밀한 짜임새 위에 감즙 코팅을 더해 내구성을 극대화한 ‘동적인 노동 방어복’입니다. 통기성을 확보하되, 날카로운 현무암 돌담이나 가시넝쿨 속에서도 신체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지혜의 결실입니다.

    8. 글을 마치며: 시련의 햇빛을 받아들여, 나를 더 촘촘하게 만들 시간

    1회차에서 만나본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맨도롱한 온기’, 2회차의 ‘다공성 토양의 비밀’, 3회차의 태풍을 흘려보내는 ‘돌담의 유체역학’, 4회차의 신뢰의 메신저 ‘정낭’, 5회차의 ‘삼다의 뚝심’, 6회차의 ‘발효의 바이오 과학’, 그리고 오늘 7회차의 ‘갈옷의 섬유물리학’까지. 제주 오리진(Jeju Origin)의 이야기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아름다운 삶의 양식으로 승화해 낸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 시련의 진눈깨비를 맞거나, 반대로 온몸을 태워버릴 듯 내리쬐는 모진 압박의 햇빛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원치 않는 삶의 오염물들이 내 영혼에 거칠게 묻어나는 순간도 존재합니다.

    그럴 때 제주의 갈옷은 제주 돌담’이 가르쳐 준 ‘비움과 순응’의 지혜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제주 돌담이 거센 바람을 억지로 틀어막지 않고 틈새로 흘려보내며 무너지지 않듯, 갈옷 역시 제주의 거센 바람을 억지로 막아 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옷과 피부 사이에 너른 바람 길을 열어두어, 바람이 자유롭게 스쳐 지나가며 땀을 식히게 놔둘 뿐입니다.

    다만, 내 본질을 상하게 만드는 끈적한 오염물과 뜨거운 자외선만큼은 피부에 닿지 않도록 겉 표면에서 묵묵히 받아내고 가볍게 털어냅니다. 안으로는 바람을 받아들여 순응하되, 겉으로는 내 온전함을 지키는 유연한 경계막을 세우는 것. 거친 세파 속에서도 나만의 중심을 유연하게 열어두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제주 돌담과 갈옷이 동행하며 우리에게 전하는 제주의 위대한 생존 방식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서 내 마음의 외벽이 닳고 상처받아 힘겨워하고 있다면, 닳고 바래진 틈 사이로 다시 한번 감물을 정성스레 들이며 스스로를 복원해 내던 제주의 갈옷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외부의 자극에 무작정 버티며 소모되기보다, 거친 바람은 유연하게 흘려보내고 내 안의 지혜로운 방어막을 묵묵히 채워내는 것. 그렇게 나를 온전히 지켜내며 마음 한 자락 ‘펜안한(편안한)’ 하루를 보내시기를 응원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말 한마디, 억양 하나에도 제주의 거친 대자연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담겨 있으며, 고대 한국어의 원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무형의 위대한 문화유산, ‘제주어(語)’ 속에 숨겨진 언어학적 타임캡슐의 비밀을 함께 열어보겠습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고운 감즙을 들인 갈옷, 노동복

    * 이양섭(1995), 갈물염색-풋감을 이용하여 황적색계 갈색으로 물을 들이는 염색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혜선 (1994). 〈갈옷에 關한 硏究〉. 세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家政學科 복식문화전공)

    * 고부자 (2023). 「[기조 강연] 제주 갈옷의 전통과 계승 발전 방향」. 『제주 갈옷 전승양상과 문화유산 가치』 학술대회 자료집,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제주학연구센터, pp. 5-15.

    * 홍희숙 (2023). 「제주 갈옷의 역사와 변천 양상」. 《제주 갈옷의 전승 양상과 문화유산 가치》 학술대회 주제발표문, 제주학연구센터 소장.

  • <제6-4회> 약방의 약 못지않은 제주의 식료학: 꿩엿과 뎅이주 생엿 물

    부제: 겨울 칼바람을 이겨낸 전통 약엿의 과학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제6-3회에서는 게우젓 속에 숨겨진 발효 숙성의 미학, 그리고 자리젓과 멜젓의 깊은 염장 과학을 살펴보았습니다. 척박한 바다와 돌바람 속에서 단백질을 확보하기 위한 선조들의 눈물겨운 지혜를 확인하셨을 줄 압니다.

    오늘 다룰 제6-4회에서는 약방이 귀하던 시절, 제주의 겨울철 매서운 칼바람으로부터 가족의 생명을 지켜내던 독보적인 동물성 보양학 ‘꿩엿’과, 이웃 마을 약방 약 못지않게 감기에 즉효였던 천연 구급약 ‘뎅이주(뎅유지) 생엿 물’에 담긴 분자요리학적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1. 꿩엿, 왜 하필 이었으며 어떻게 이 되었는가?

    육지 사람들에게 ‘엿’은 그저 명절에나 찾아 먹는 달콤한 주전부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곡식이 극도로 귀했던 제주에서 엿은 단순한 주전부리나 간식의 영역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땅에서 기력이 쇠해진 노인과 겨울철 모진 바람에 기침을 앓는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식료(食療, 음식을 통한 치료)’이자, 자연의 영양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두려 했던 고도의 영양 보존학이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정갈한 식료(食療, 음식 치유) 전통 속에는, 결핍을 과학으로 이겨내려 했던 제주의 위대한 생명 DNA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습니다.

    1) 벼농사가 불가능한 땅이 낳은 대안,

    제주는 화산회토 특성상 물이 지하로 모두 빠져나가 벼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탄수화물 공급원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 보리, 메밀 같은 잡곡뿐이었습니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니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가축의 대량 사육도 원천적으로 제한적이었습니다. 인간이 먹을 곡식(조, 보리 등)이나 남은 밥찌꺼기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돼지나 닭 같은 잡식성 가축을 수백 마리씩 떼로 키우는 것은 척박한 제주의 일반 가정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사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주의 가축 사육은 가구당 한두 마리 수준으로 통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식량을 단 한 톨도 축내지 않고 오직 거친 풀과 넝쿨만을 먹고 자라는 소(牛)나 말(馬) 같은 초식성 가축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이들은 훗날 인간이 도저히 농사지을 수 없었던 광활한 ‘한라산 중산간 초지’를 배경으로 하여, 제주만의 독특하고 거대한 대량 목축문화이자 또 다른 생명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대한 소와 말을 일상의 밥상 위에서 수시로 도축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은 민초들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돼지와 닭은 사료가 부족해 여러 마리를 키우기 어렵고, 대량 목축하는 소는 귀한 자산이었기에, 제주의 선조들은 인간의 곡식을 단 한 톨도 축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자라나 중산간 지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최고의 천연 단백질 공급원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야생 꿩’이었습니다.

    과연 선조들이 선택한 이 야생의 대안은 영양학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대한민국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최신 국가표준식품성분표(2026년 기준)를 펼쳐 한우 등심과 야생 꿩고기(생것)의 데이터 구조를 정밀하게 대조해 보면, 두 식재료가 가진 영양학적 성분 구조가 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2026년 기준) 발췌, 비교 분석>

    식자재 분류단백질 (g)지방 (g) 영양학적 데이터 분석 및 비교 근거
    수꿩 (생것)27.5 g0.8 g한우 등심 대비 단백질 약 1.8배, 지방은 약 1/32 수준
    암꿩 (생것)27.2 g0.6 g한우 등심 대비 단백질 약 1.7배, 지방은 약 1/43 수준
    한우 등심 (생것)15.61 g26.3 g지방이 26% 이상으로 최고치, 단백질 대비 지방이 1.7배

    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흔히 명품 육류로 꼽히는 한우 등심(생것) 100g 속에는 총 26.3g의 높은 지방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지방 속에는 혈관 관리에 유의해야 하는 포화지방산(10.83g)과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12.34g)이 섬세하게 공존하고 있으나, 영양의 무게중심이 단백질(15.61g)보다 지방(26.3g) 쪽에 훨씬 무겁게 쏠려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구조적 특징입니다.

    반면 ‘꿩고기 생것’의 오리지널 분석 수치는 실로 독보적입니다. 식품 100g당 단백질 함량이 수꿩 27.5g, 암꿩 27.2g에 달하는 반면, 지방은 수꿩 0.8g과 암꿩 0.6g에 불과하며 탄수화물은 정확히 0g입니다. 한우 등심을 가볍게 압도하는 이 고단백 밀도는 꿩고기가 품은 풍부한 천연 아미노산의 양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강력한 과학적 지표가 됩니다.

    이는 지방산의 종류를 불문하고, 체내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불필요한 노폐물이나 과잉 열량을 축적하지 않으면서 오직 순수한 근육 세포 재생을 돕는 고밀도 단백질을 고스란히 체내에 밀어 넣어주는 청정 육질의 전형입니다. 선조들이 겨울철 기력 회복의 최우선 보약으로 왜 꿩을 선택했는지, 그 영양학적 가치를 국가 데이터가 투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가 증명하는 이러한 압도적인 고단백 밀도는 꿩고기의 생물학적 특징과도 직결됩니다. 야생에서 쉼 없이 비행하며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는 꿩은 근육 세포 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색소 단백질인 ‘미오글로빈(Myoglobin)’이 극도로 풍부한 대표적인 적색근(Red muscle) 조류입니다. 꿩고기 특유의 짙은 선홍빛 육질과 씹을수록 치밀하고 단단한 식감은 바로 이 야생의 활동량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발달한 탄탄한 근육 조직 구조 속에 국가가 공인한 27.5%의 고농축 단백질과 미네랄이 낭비 없이 응축되어 있으니, 선조들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치유의 식료(食療)는 없었던 셈입니다.

    2) 아밀라아제(Amylase)의 천연 당화와 동물성 단백질의 융합

    문제는 이 귀한 꿩고기를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장기 보존하며 영양 흡수율을 극대화할 것인가였습니다. 제주의 선조들이 선택한 방법은 기가 막히게도 과학적인 ‘곡물의 천연 효소 분해’였습니다.

    맥아를 가공한 엿기름의 투입

    조나 보리를 쪄서 고두밥을 만든 뒤, 겉보리의 싹을 틔워 말린 약재인 맥아(麥芽)를 거칠게 빻아 만든 ‘엿기름(가루)’를 섞습니다. 이 엿기름 속에는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대량의 베타-아밀라아제(beta-amylase) 효소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저온 전분 분해(당화)

    일정한 따뜻한 온도에서 엿기름의 효소들이 고두밥의 거대한 탄수화물(전분) 분자를 촘촘히 가위질하여, 분자 구조가 작은 맥아당과 포도당으로 쪼개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꿩엿의 베이스가 되는 천연 당화 과정입니다.

    꿩고기의 장시간 열분해 및 가공

    당화가 완료되어 달콤해진 전분 베이스에 삶은 꿩고기를 잘게 으깨어 넣고, 무쇠솥에서 수일 동안 약한 불로 뭉근하게 졸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류에 의한 높은 삼투압 환경과 장시간의 열분해 작용이 결합하면서, 꿩고기의 단백질 섬유 조직이 소화 흡수가 용이한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단위로 부드럽게 용해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제주의 전통 꿩엿은 바짝 말려서 단단하게 굳힌 육지의 고형 엿과 달리, 수분이 진득하게 남아 있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반고형 조청의 물성을 띱니다. 수분 함량이 약 20%~34% 안팎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식품학적으로 수분 활성도(Water Activity)는 대개 0.7~0.8 사이의 중간 수분 구간을 형성하게 됩니다.

    학계의 『생약제 농축액에서 미생물 성장에 대한 수분활성도의 영향』 데이터에 따르면, 이 수분 활성도 0.7~0.8 구간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소를 내뿜는 황색포도상구균(S. aureus)이나 대장균(E. coli) 같은 병원성 식중독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데는 매우 탁월한 방어막이 됩니다.

    실제로 이 조건에서 식중독 세균들은 증식하지 못합니다(특히 0.69의 시료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완전히 사멸하는 궤적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 구간은 내삼투압성 효모나 내건성 곰팡이류가 미세하게 성장할 수 있는 취약 지대이기도 합니다. 수분 활성도가 0.80 수준에 장기간 머무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생물 수가 서서히 증가하며 변질될 위험이 잔존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제주의 선조들은 꿩엿을 만들 때 무쇠솥에서 수일 동안 은은한 불을 조절해가며 ‘매우 진하게 고아내는 가혹한 농축 과정’을 완수해야만 했습니다. 수분을 극한으로 쥐어짜내어 수분 활성도를 미생물 성장이 완전히 정체되는 0.69 이하의 안전선까지 억지로 밀어 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 집요한 농축을 통해 당 농도의 삼투압 효과를 극대화해야만, 곰팡이와 효모의 침입선까지 완벽히 무너뜨려 별도의 방부제 없이도 상온에서 수개월간 보존할 수 있는 위대한 천연 방어막을 마침내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꿩엿은 선조들의 장인 정신이 담긴 농축 과학을 통해 상온 장기 보존성을 달성함과 동시에, 육류 단백질이 이미 분자 수준으로 세밀하게 쪼개져 있어, 위장 기능이 극도로 떨어진 환자나 어르신들이 소화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고도 즉각적으로 영양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제주의 위대한 ‘천연 고밀도 분자 영양제’가 되는 것입니다.

    2. 뎅이주 생엿 물, 약방의 약 못지않던 천연 추출 과학

    어릴 적 머리가 지끈거리고 오한이 드는 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 이웃 마을에 있는 약방의 약처럼 마시기만 하면 신기하게 감기가 싹 달아나던 최고의 명약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주의 재래종 감귤인 ‘뎅유지(댕유지, 당유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 ‘뎅이주’로 고아낸 생엿 물입니다. 나의 기억 속 뎅이주 생엿 물은, 할머니께서 냄비에 뎅이주를 껍질째 듬성듬성 썰어 넣고, 알싸한 생강과 단단하고 달콤한 생엿 덩어리를 물과 함께 푹 고아 주시던 한 사발의 천연 물약입니다. 이 전통 약방문에는 현대 의학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천연 약리 추출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1) 뎅이주·생엿·물의 약성 추출 메커니즘

    [약성 추출의 연쇄 반응]

    혼합물 뎅이주(껍질째 듬성듬성) + 생강 + 생엿 + 물
    냄비에서 가열
    (과정 및 효과)
    1. 과피의 헤스페리딘⦁나린진⦁리모넨 성분 가열 추출 (항염, 항바이러스, 소염)
    2. 생강의 진저롤 융합 (말초혈관 확장, 오한 발산)
    3. 생엿의 고농도 포도당 공급 (면역 에너지 즉시 보충)

    제주의 선조들이 감기 기운이 완연할 때 왜 그 수많은 귤 중 하필 ‘뎅이주(뎅유지)’를 선택해 단단한 생엿과 함께 고아냈는가는, 1967년 연구 『한국산 감귤류의 화학성분에 관한 연구(I)』를 통해 그 베일이 완벽히 벗겨집니다.

    당시 품종별 성분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뎅유지는 과실 전체에서 껍질이 차지하는 비율인 과피율이 무려 48.6%로 독보적인 두께를 자랑합니다.

    또한 신선과실 100g당 유기산(Acid) 함량이 44.2 m.e.(밀리당량, 유기산의 화학적 반응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를 기록하며, 조사된 모든 감귤 품종 중 압도적인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당대 가장 신맛이 강하다고 알려진 병귤(19.5 m.e.)의 2배를 상회하며, 육지의 홍옥 사과(10.2 m.e.)보다는 4배 이상 강력한 신맛의 약성이 집약된 수치입니다.

    반면 과실 자체의 ‘당과 산의 비율’을 뜻하는 ‘감미비(Sugar/Acid)’는 단 2.06에 불과합니다. 네이블오렌지(13.35)나 사과 홍옥(31.4), 배(82.0) 등과 대조했을 때 과일 중 가장 낮고 씁쓸한 약리적 풍미를 지니고 있으며, pH 역시 3 이하(2.90)의 강한 산성을 띱니다.

    이에 더해 체내 면역 세포의 정상적인 대사를 돕는 칼슘(CaO) 등의 무기 성분 함량까지 타 감귤류 및 일반 과일보다 2배 이상 높게 고농도로 박혀 있는 영양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 극단적인 성분 수치가 ‘단단한 생엿’과의 필연적인 약성 추출 결합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자체 당도가 지극히 낮고 강력한 산도를 뿜어내는 뎅유지를 우리 몸이 위장 장애 없이 온전히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엿기름으로 전분을 삭혀 만든 고농도의 맥아당 덩어리인 ‘생엿’의 완충 작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단단한 생엿이 가열된 냄비 속에서 뜨거운 물을 만나 녹아내리면서 뎅유지 껍질 속 고농도 유기산과 결합할 때, 비로소 자극적인 신맛은 부드럽게 순화되고 식물성 약리 성분들의 체내 세포 흡수율은 극한으로 끌어올려지는 절묘한 ‘천연 약성 추출 메커니즘’이 가동되는 것입니다.

    2) 껍질 속에 숨겨진 해독제, 헤스페리딘·나린진·리모넨 성분

    고현민・김주성, 『당유자 과피 메탄올 추출물 및 분획물의 생리활성 검정』 논문을 인용합니다.

    『또한 열매는 예로부터 감기와 간 보호 등에 효과가 있어 약재로 사용되어왔다. 당유자의 유기산 함량은 유자에 비하여 2배 높고 비타민 C 함량은 4배가 높다. 또한 당유자에는 비타민 외에도 주성분인 hesperidin, naringin, naringenin, narirutin, neohesperidin, rutin 등의 플라보노이드류가 있다. (중략)

    Hesperidin과 naringin은 체내에 독성을 일으키지 않으며 항산화 작용, 콜레스테롤 저해 및 각종 암세포의 억제, 항균, 항알러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여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일반 감귤보다 크고 시며 쌉싸름한 맛이 강한 뎅이주는 알맹이보다 ‘껍질(과피)’에 진짜 핵심 약효가 몰려 있습니다. 선조들이 뎅이주를 껍질째 듬성듬성 썰어 넣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뎅이주 껍질에는 일반 귤의 수십 배에 달하는 헤스페리딘(비타민 P)과 특유의 쓴맛을 내는 나린진(Naringin) 성분이 가득합니다.

    현대 영양학에서 나린진은 매우 강력한 천연 항염증제이자 항바이러스 물질로 분류됩니다. 현대 면역학 연구에 따르면 이 성분들은 호흡기 세포 내 염증 스위치를 차단함으로써 바이러스가 호흡기 점막 세포로 침투하는 경로를 방해하고, 기관지 내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억제하여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삭이는 데 직효를 발휘합니다.

    실제 대전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의 정밀 분석 연구(정시화, 『감귤에서 분리한 정유 성분의 항균활성 및 안정화 연구』)에 따르면, 감귤류 과피에서 추출한 천연 오일 성분의 무려 87~92%가 이 리모넨(D-Limonene)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리모넨 오일은 단 0.1%라는 지극히 미미한 농도만으로도 호흡기 점막의 파괴자들을 완벽히 무력화합니다. 감기나 독감으로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목구멍과 기관지 점막에 증식하며 급성 화농성 염증을 유발하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은 물론, 기침과 점막 염증을 심화시키는 칸디다 진균(Candida albicans)의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하고 제어하는 독보적인 항균·항진균 활성을 나타냅니다.

    제주의 선조들이 감기 기운으로 목이 붓고 가래가 끓을 때 왜 하필 뎅이주를 껍질째 듬성듬성 썰어 넣었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뜨거운 생엿 물 위로 리모넨이라는 천연 에센셜 오일 성분이 향긋한 정유의 기화 현상을 타고 올라오며, 부어오른 환자의 목구멍 점막과 기관지 속 유해균들의 세균 기지를 단숨에 초토화하며 직효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3) 생강의 진저롤(Gingerol)과 생엿의 삼투압 융합

    실제 학술지에 등재된 연구(이봉수 외, 『생강으로부터 6-Gingerol의 분리 및 항산화 활성』)에 따르면, 생강의 핵심 약리 물질인 6-진저롤(6-Gingerol)은 추출 조건에 따라 그 용출량이 극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일반 물(맹물)로만 추출했을 때는 생강 1g당 1.11 mg에 불과했던 진저롤 성분이, 세포벽 파괴를 유도하는 최적의 환경조건을 충족하자 1g당 6.1 mg까지 증가함이 확인되었습니다. 본 연구는 물리화학적 조건 제어를 통해 천연물 속 유효 성분의 추출 효율을 무려 5.5배나 극대화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명쾌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가마솥의 뜨거운 열을 만나 더욱 강력하게 깨어나는 생강은 알싸한 진저롤(Gingerol)과 가열 과정을 통해 극대화되는 쇼가올(Shogaol) 성분의 시너지 효과를 보태줍니다. 이 성분들은 우리 몸의 심부 체온을 올리고 굳어 있던 말초혈관을 부드럽게 확장합니다. 혈액순환이 촉진되면서 차갑게 식어 가던 손발 끝까지 따뜻한 혈액과 온기가 공급되고, 이는 호흡기 면역 세포들의 활동성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천연 면역 부스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약성 성분을 하나로 묶어 체내 세포 깊숙이 탄환(彈丸)처럼 빠르게 밀어 넣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생엿’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체내 면역 세포들이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글리코겐(에너지)을 소모하므로 환자는 극도의 피로감과 탈진을 느낍니다. 이때 보리로 당화시킨 순수한 생엿의 맥아당과 포도당 성분이 들어가면,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혈관으로 즉각 흡수되어 면역 세포에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위해 탄약을 실어 나르듯 에너지 공급을 초고속으로 완료합니다.

    단순히 약재를 맹물에 달이는 수용성 탕약과 달리, 고농도의 당 분자인 생엿과 함께 고아냈기 때문에 뎅이주 껍질의 유효 성분들이 당 분자와 결합하여 체내 세포막을 훨씬 더 빠르게 통과하는 ‘고속 흡수 메커니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웃 마을 약방 약 못지않게 뎅이주 생엿 물이 즉효성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던 이유가 바로 이 완벽한 약리적 상호작용 덕분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의 당유자 과피 미생물 대사 연구(현재석 외, 『당유자 과피 발효물의 플라보노이드 성분 변화 및 항산화 활성』)에 따르면, 뎅유지 껍질은 자체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100g당 3.395g에 달할 정도로 약리 성분의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 단단한 껍질 구조가 냄비 속에서 열을 만나 뭉근하게 고아질 때 일어나는 분자생물학적 변형의 궤적은 현대의 첨단 발효 과학과 완벽히 본질을 공유합니다. 가마솥의 지속적인 열수 추출 과정(뜨거운 물로 유효한 약성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면, 껍질 깊숙이 갇혀 있던 완고한 배당체 형태의 약성들이 완벽히 추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뎅유지 과피의 분자 구조가 깨지며 유효 비중이 22.02%까지 치솟을 때, 유해 활성산소의 소거 능력이 1.85배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를 공격하여 만성 염증과 세포 손상을 유발하는 과산화수소 독소를 중화시키는 소거 능력이 무려 3.64배나 강력해지며 완벽한 천연 약방문으로 진화합니다.

    할머니가 불 위에서 단단한 생엿과 뎅이주를 푹 고아내던 그 시간은, 단순히 재료를 익히는 과정을 넘어 단단한 세포벽을 파괴하여 유효 성분의 용출량을 맹물 대비 최대 5.5배까지 끌어올리고, 추출물 내 순수 약리 성분의 비중을 22.02%로 극대화하던 고도의 열수 추출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3. 현대 영양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의 약엿과 식료 문화

    제주 전통 식료학의 가치를 현대 식품영양학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명확한 과학적 데이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 분 꿩 엿 뎅이주 생엿 물
    주요 원료 야생 꿩고기 + 조/보리 고두밥 + 엿기름뎅이주(당유자) 과피 + 생강 + 생엿
    핵심 과학베타-아밀라아제 천연 당화 및 단백질 효소 분해헤스페리딘·나린진·리모넨 가열 추출 및 생강 진저롤의 혈관 확장
    현대적 효능 단백질 소화 흡수율 극대화, 면역글로불린 합성호흡기 바이러스 차단, 기침·소염 직효, 에너지 즉시 보충
    식료학적
    의의
    결핍된 겨울철 단백질의 장기 보존 및 아미노산화약방이 없던 시절 최고의 천연 구급약

    제주의 선조들은 육지처럼 귀한 한약재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척박한 고립섬에서, 뎅이주, 생강, 그리고 생엿만으로 현대 구급약 못지않은 훌륭한 ‘천연 약리 복합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어쩌다 전해 내려온 민간요법이 아닙니다. 자연의 결핍 속에서 인간의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식재료 고유의 분자 메커니즘을 본능적으로 관통해 낸 위대한 로컬 바이오 과학의 결정체입니다.

    뎅유지와 함께 가마솥 안에서 쌍벽을 이루며 들어가는 재료인 생강은 물이 쉽게 빠지는 제주의 척박한 화산재 땅에서는 대량으로 키워낼 수 없는 대단히 귀하고 사치스러운 약재였습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우영밭 또는 마당 돌담 밑의 촉촉한 땅을 골라, 겨울철 가족들의 호흡기를 지켜줄 비상 가정상비약으로 생강을 소량씩 애지중지 길러냈습니다. 밭에서 흔하게 구한 재료가 아니라, 제주라는 섬의 거친 환경 속에서 귀하게 길러낸 토종 생강과 뎅유지, 그리고 가마솥의 생엿이 만났기에 선조들의 꿩엿과 뎅이주 엿물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몸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천연 처방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약국에서 쉽게 사 먹는 감기약과 비타민제 속에는 어릴 적 할머니가 무쇠솥에 푹 고아 건네주던 뎅이주 생엿 물 한 사발의 따뜻한 식료(食療) 정신과 지혜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제주 오리지널 콘텐츠의 깊이는 바로 이 결핍을 풍요로 바꾼 선조들의 위대한 과학 정신에 있습니다.

    다음 제7회에서는 ‘제주 갈옷(갈중이)에 숨겨진 자외선과 섬유물리학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꿩고기 수꿩 생것 , 꿩고기 암꿩 생것 , 소고기 한우 등심 생것)

    * 곽이성·신현주·주종재, 『생약제 농축액에서 미생물 성장에 대한 수분활성도의 영향』

    * 양차범·박훈·김재욱 (1967). 『韓國產 柑橘類의 化學成分에 關한 硏究(I) – 主要柑橘品種別化學成分含量에 關하여 -』. 《농화학회지》,

    * 정시화 (2012). 『감귤에서 분리한 정유 성분의 항균활성 및 안정화 연구』. 대전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석사학위논문.

    * 이봉수, 고명석, 김현종, 곽인섭, 김동호, 정봉우 (2006). 『생강으로부터 6-Gingerol의 분리 및 항산화 활성』. 《한국생물공학회지》, 제21권 제6호, 484-488.

    * 현재석․강성명․한상원․강민철․오명철․오창경․김동우․전유진․김수현, 『당유자 과피 발효물의 플라보노이드 성분 변화 및 항산화 활성』,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38(10), 1310-1316.

  • <제6-3회> 제주의 지방과 미네랄 영양학: 게우젓, 자리젓, 멜젓

    부제: 어패류의 생화학적 미네랄 흡수율과 필수 지질의 조리 과학

    제주의 화산재 토양은 지표면의 유기물 함량은 높으나, 다우지 특성상 비가 내리면 대사에 필수적인 칼슘과 마그네슘 등의 유효 미네랄 성분들이 하부 층위로 쉽게 용탈(Leaching)되는 독특한 지질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토양 자체에 존재하는 미네랄마저 일반토양과 달리 인산을 강하게 흡착 고정하는 화산회토 특유의 강한 성질 때문에 토양의 유효인산 함량이 매우 떨어져서 비옥도가 낮아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식물들이 미네랄을 제대로 흡수하여 자라나기 힘든 척박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주 땅에서 수확한 곡물이나 채소는 인간의 골격 대사에 필요한 활성 미네랄이 태생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주의 물은 겹겹이 쌓인 현무암과 화산재층을 통과하며 천연 미네랄을 풍부하게 흡수해 낸 세계 최고 수준의 청정 약알칼리성 암반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식수라 할지라도 물속에 녹아있는 이온 형태의 미네랄만으로는 인간이 하루에 필요한 칼슘과 영양소의 절대량을 모두 충족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식수와 채식 위주의 식단에서 결핍되기 쉬운 필수 미네랄과 영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주의 선조들은 척박한 땅 대신 청정한 제주의 바다로 눈을 돌렸고, 바다의 선물인 어패류를 지혜롭게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바다에서 얻은 전복의 내장, 자리돔, 멸치를 소금에 삭혀 만든 ‘발효 젓갈 문화’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염장 보존식을 넘어, 섬 환경의 영양학적 한계를 극복한 지혜였습니다.

    이번 제6-3회 연재에서는 제주의 식탁을 지켜온 핵심 축인 ‘지방(Fat)과 미네랄(Mineral)’에 주목하여, 발효를 통해 미네랄의 체내 흡수율을 극대화하고 필수 지질을 확보했던 선조들의 경이로운 조리 과학을 파고들고자 합니다.

    1. 전복 게우젓: 푸른 바다의 미네랄 결정체와 불포화지방산의 조화

    제주 바다의 깊은 영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전복의 내장으로 담근 ‘게우젓’입니다. ‘게우’는 전복의 내장을 뜻하는 순수한 제주어입니다. 역사적으로 제주의 ‘포작인'(해산물 채취하는 남성)과 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채취한 양질의 전복은 알맹이만 발라내어 잘 말린 건전복(乾全鰒)으로 만들어 왕실에 진상품으로 고스란히 바쳐져야만 했습니다. 정작 전복을 채취한 제주인들의 손에 남은 것은 보관이 까다롭고 쉽게 상하는 내장뿐이었지요. 이 아픈 진상의 역사와 결핍 속에서 태어난 눈물겨운 지혜가 바로 ‘게우젓’입니다.

    어린 시절,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신 동네 해녀 삼춘들이 건네주던 신선한 게우를 기억합니다. 그것을 천일염에 살짝 버무려 장독에 삭혀두다가 밥반찬으로 내어주실 때, 그 진한 녹색의 젓갈이 뿜어내던 바다의 풍미와 감칠맛은 어린 제 입맛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따끈한 보리밥 위에 게우젓 한 점을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지요.

    ‘제주전복’은 생태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맛의 방주’에 99호로 공식 등록되어 있습니다. 제주 청정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를 먹고 자라서 바다의 영양을 고스란히 응축해 낸 전복은 선조들에게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영양의 보고 그 자체였습니다. 전복의 영양 핵심은 살코기보다 오히려 독특한 녹진함을 품은 ‘게우(제주 방언, 전복의 내장)’에 몰려 있습니다.

    전복의 모든 영양소가 농축된 내장으로 담근 게우젓은, 토양과 식수만으로는 채우기 힘들었던 미네랄과 필수 영양소를 가장 활성화된 상태로 섭취할 수 있게 돕는 최고의 발효 과학이었습니다. 바다의 생명력을 인간의 생체 이용률로 전환해 낸 선조들의 경이로운 지혜가 이 작은 젓갈 한 종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이 귀한 제주전복의 영양학적 정수인 내장을 버리지 않고 발효 과학을 접목해 ‘게우젓’으로 재탄생시킨 지혜는, 원재료의 가치를 한층 더 극대화한 식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1) 해조류의 영양 응축과 자기소화(Autolysis)’의 메커니즘

    과학의 관점에서 게우젓은 일반적인 식물성 발효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 핵심은 식재료 자체가 가진 효소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자기소화(Autolysis)’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복은 바다의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갈조류를 주식으로 삼아 성장하는 패류입니다. 이 때문에 전복의 내장(게우) 조직에는 거친 해조류의 섬유질과 성분들을 소화하기 위한 자체적인 소화 분해 효소들이 자연스럽게 밀집해 있는 생태적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소화 기관에 축적된 해조류 유래 무기질 성분 덕분에, 게우는 인체 대사 기능에 관여하는 아연(Zn), 철분(Fe), 구리(Cu) 등의 영양소를 풍부하게 품은 보고가 됩니다. 내장에 소금을 쳐서 삭히기 시작하면, 게우가 본래 품고 있던 자체 효소들이 활성화되면서 고분자 단백질 구조를 장에서 흡수하기 쉬운 저분자 상태로 해체하는 자기소화 공정의 첫 단추를 채우게 됩니다.

    실제 국립목포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논문인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복의 영양성분 비교 분석(2013)>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생화학적 사실이 드러납니다.

    (인용, 일부 발췌 수정)
    Table 3. 전복 육(살)과 내장의 미네랄 함량 비교 (단위: mg/100 g)

    부위전복 육(살코기)전복내장(게우)
    산지제주도제주도
    칼슘 (Ca)31.6846.74
    구리 (Cu)0.521.96
    철분 (Fe)3.8220.92
    칼륨 (K)65.66119.14
    마그네슘 (Mg)62.7284.72
    나트륨 (Na)529.12587.16
    (P)114.31159.44
    아연 (Zn)0.722.04

    (인용 끝)

    위 미네랄 분석 데이터(Table 3)는 왜 제주의 선조들이 전복의 살코기보다 내장을 영양의 정수로 취급했는지를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대변해 줍니다.

    인간의 혈액을 생성하고 빈혈을 예방하는 핵심 원소인 철분(Fe)의 경우, 제주산 전복 내장에는 살코기보다 무려 5.4배가 넘는 고농축 결정체(20.92 mg)가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체내 대사와 면역계 항산화 효소의 활성을 돕는 구리(Cu)는 3.7배, 아연(Zn)은 2.8배나 더 내장에 밀집해 있었으며, 화산섬 제주 땅에서 늘 결핍되기 쉬웠던 칼슘(Ca)과 영양 대사를 돕는 마그네슘(Mg), 인(P), 칼륨(K) 등의 무기질 전반이 살코기를 압도하는 강력한 영양의 밀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전복의 생태적 특성 덕분에 내장에 풍부하게 응축된 무기질 성분들은, 섬 지형 특성상 일상적인 식단에서 미네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던 제주인들에게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재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선조들은 이러한 내장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이를 버리지 않고 발효 과학과 결합하여 게우젓이라는 지혜로운 식문화를 완성해 냈던 것입니다.

    위의 같은 논문을 인용합니다.

    “전복 내장의 구성아미노산 함량은 93.16~127.02 mg/g이었으며 이는 전복 육(살코기)의 평균 145 mg/g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반면에 전복 내장의 유리아미노산 함량은 16.81~20.10 mg/g으로 전복 육의 7.90~10.59 mg/g에 비하여 2배 높은 값을 보였다.“

    여기서 ‘구성아미노산’은 단백질 덩어리 속에 단단히 묶여 있어 인간이 섭취했을 때 위장과 소장에서 소화 효소로 다 쪼개야만 비로소 흡수될 수 있는 ‘잠재적 영양소’를 뜻합니다. 반면 ‘유리아미노산’은 단백질로 묶이지 않고 세포액 속에 자유롭게 녹아 있어 혀에 닿자마자 강한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고 소화 과정 없이 몸에 즉시 흡수되는 ‘활성 영양소’입니다.

    즉, 총 단백질 덩어리(구성아미노산) 자체는 전복의 살코기가 내장보다 더 많지만, 몸에 즉시 흡수되고 깊은 맛을 내는 활성 유리아미노산은 내장이 살코기보다 무려 2배나 많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제주의 선조들이 행한 ‘발효(젓갈)’가 더해지면 놀라운 생화학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내장에 소금을 쳐서 삭히면, 게우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강력한 자체 소화 효소들이 삼투압 환경 속에서 활성화되어 내장 속에 묶여 있던 고분자 단백질 사슬을 스스로 다 끊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잠재적 영양소였던 구성아미노산들이 몸에 즉시 흡수되는 저분자 활성 유리아미노산으로 대량 전환되는 것입니다.

    2) 내염성 미생물 발효의 결합과 미네랄 흡수율의 극대화(Chelation 효과)

    자연 상태의 미네랄은 거친 무기질 형태여서 인간의 장벽을 통과해 흡수되는 비율(생체이용률)이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게우가 소금과 만나 삭혀지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자체 효소의 자기소화’와 동시에 ‘내염성 미생물에 의한 발효 작용’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소금 속에서 살아남은 특수한 유산균과 미생물들이 대사 과정에서 유기산을 분해·형성하고, 앞서 목포대 연구팀의 고증에서 드러났듯 살코기보다 2배나 풍부하게 녹아 있는 저분자 유리아미노산들이 무기질 미네랄 성분들과 결합하는 생화학적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처럼 발효 과정을 통해 생성된 천연 유리아미노산 성분들이 미네랄 입자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구조적 변화는, 미네랄이 인간의 장벽에서 보다 수월하게 수용되어 체내 생체 이용률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영양학적 기제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선조들은 게우젓이라는 발효식품을 통해, 신체 대사 기능과 방어 기제에 필요한 미네랄 성분들을 한층 더 효율적인 상태로 섭취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게우젓에 응축된 아연과 구리는 인체 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강력한 항산화 효소의 활성 유도체로 작용하여, 화산섬의 척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세포의 산화적 손상을 방어하는 핵심적인 생체 방어 기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3) 초저지방 식단의 단비, 필수 불포화지방산

    게우는 전복 살코기와 달리 지질(지방) 함량이 높은 편인데, 이 지질의 상당부분은 혈액 속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며 혈관 건강을 돕고 두뇌 기능에 필수적인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의 ‘전복의 영양성분을 비교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전복육의 지방산조성은 불포화지방산이 약 41%로 포화지방산 약 31%에 비하여 높았으며, 전복육보다 전복내장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이처럼 일상 식단에서 지방 섭취가 극도로 제한되었던 제주인들에게, 알싸하게 삭은 게우젓은 세포막을 구성하고 호르몬을 대사하는데 필요한 필수 지방산을 공급하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습니다.

    2. 자리젓: 척박한 화산재 땅의 칼슘 결핍을 메운 골격 영양학

    제주인들의 밥상에서 가장 친숙하면서도 영양학적으로 위대한 젓갈은 바로 ‘자리젓’입니다. 몸집이 작고 뼈가 단단한 자리돔을 통째로 소금에 삭혀 만드는 자리젓에는 섬 지형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하려는 선인들의 눈부신 생존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자리젓 냄새가 하도 고소해서 먹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어린 제가 먹기에는 단단한 가시가 거슬려서 조심스럽게 국물만 떠서 밥에 비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가시가 부드럽게 씹히기에 자리젓의 온전한 맛을 느끼며 먹게 되었습니다.

    자리젓의 원재료인 자리돔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향토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맛의 방주 59호 ‘자리돔’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인들은 이 자리돔을 통째로 삭히는 발효 과정을 통해 단단한 뼈를 연화시키고 칼슘 성분의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지혜로운 식문화를 완성해 냈습니다.

    1) 화산재 토양의 한계와 칼슘 결핍의 극복

    현무암과 화산재로 덮인 제주의 토양은 물과 함께 미네랄을 쉽게 흘려보내는 물리적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 땅에서 자란 채소나 곡물은 육지의 것에 비해 칼슘 함량이 태생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으며, 식수를 통해서도 미네랄을 충분히 보충하기 어려웠습니다. 선조들은 이 고질적인 칼슘 결핍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려 뼈째 삭혀 먹는 자리젓,멜젓이라는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특히 원재료인 자리돔은 몸집에 비해 뼈가 매우 억세어서 생으로 섭취할 때는 반드시 뼈를 추려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물론 자리돔을 뼈째 먹는 문화가 있었지만, 단단한 생선 뼈의 주성분인 인산칼슘 구조는 무기질 결정을 이루고 있어 단독으로 섭취할 때 인간의 장벽에서 일어나는 소화 흡수율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척박한 화산섬 지형 특성상 일상적인 식수와 채식에서 활성 미네랄을 충분히 얻기 어려웠던 제주인들에게, 생선 뼈 속 칼슘의 생체 이용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영양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의 선조들은 두 가지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첫째는 날것으로 먹는 자리물회에 ‘식초(초산)’를 결합하여 산성 환경을 만들어 뼈를 부드럽게 녹여내고 칼슘의 용해도를 높인 조리 과학이며, 둘째는 오랜 시간 소금에 삭혀 먹는 ‘자리젓’의 발효 과학입니다. 선조들은 고질적인 미네랄 결핍 환경에 굴하지 않고, 뼈째 삭히는 과정에서 인산칼슘 구조가 저분화되어 흡수율이 극대화되는 자리젓을 통해 연중 사시사철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천연 칼슘 보완책을 완성해 냈습니다.

    2) 유기산 발효를 통한 골격 연화와 천연 활성 칼슘 전환

    인간의 소화계가 쉽게 흡수할 수 없던 자리돔과 멜의 단단한 무기질 결정 구조는, 소금에 절여 장기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화학적 반전을 맞이합니다.

    학계의 전통 수산발효 연구 고증에 따르면, 젓갈이나 식해와 같은 전통 어류 발효 식품들은 숙성 과정에서 자생하는 젖산균(유산균)들과 미생물들이 대사산물로 천연 유기산을 지속적으로 뿜어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산성 환경의 조성이 단단한 생선 뼈의 조직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연화(Softening) 작용’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잘 삭은 자리젓이나 멜젓을 입에 넣었을 때 억센 뼈가 이물감 없이 부드럽게 씹히는 비결이 바로 이 수산발효 고유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효 과정을 통해 딱딱한 뼈가 부드러워져 온전히 섭취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체내 흡수가 어려웠던 무기 칼슘 성분들이 장벽에서 한층 수월하게 수용될 수 있는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재로 거듭났던 셈입니다.

    이처럼 발효 과학을 거치며 섭취와 흡수가 용이한 형태로 전환된 천연 칼슘과 인 성분들은, 섬 지형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한 식수나 농작물을 얻기 힘들었던 제주인들에게 일상 속에서 결핍되기 쉬운 무기질을 지속적으로 채워주는 든든한 영양학적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본래 우리 전통 젓갈의 본질은 어패류를 염장한 후, 재료 내부의 자가 소화효소와 미생물의 작용을 동시에 활용해 육질과 뼈를 완전히 분해해 내는 고도의 생체 이용률 극대화 공정입니다.

    멸치 젓갈 등전통 수산발효식품에 관한 공인 연구에 따르면, 염장 숙성 과정을 거치며 단백질이 해체되면서 소화 흡수가 용이한 저분자 유리아미노산이 현저히 증가하게 됩니다. 자생한 유익 젖산균(유산균)들은 장내 환경을 산성화하여 식중독균 등 유해 세균의 증식을 강력하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장 점막의 면역 시스템 기능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서의 탁월한 생리활성 효능을 발휘합니다.

    더욱이 이들 자생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뿜어내는 특수한 대사산물들은 체내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 젓갈은 단순한 염장 저장식을 넘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옛 선조들의 장내 면역 장벽을 지키고 신체 활력을 유지해 주었던 지혜로운 면역 영양식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제주대학교 대학원 신은영의 연구 논문 《동굴숙성 제주 전통젓갈의 미생물 특성연구(2007)》에 따르면, 전통 방식대로 삭혀낸 제주의 자리돔젓 등에서는 전복이나 생선의 자체 소화효소뿐만 아니라, 분리 균주의 무려 67%(300균주 중 200균주)에 달하는 강력한 단백질 분해 활성 미생물들(Bacillus subtilis 등)이 공존하며 숙성과 구조 해체를 주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불어 전통 젓갈 발효 과학의 경이로움은 단순히 영양소의 저분화와 흡수율 극대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국식품과학회지에 발표된 임은서 연구팀의 학술 고증 《멸치 젓갈로부터 분리된 젖산세균의 프로바이오틱 특성 및 안전성 평가(2016)》에 따르면, 젓갈 속 자생 유산균들은 강력한 위산(pH 2.0~3.0)과 거친 쓸개즙의 공격을 견뎌내고 살아서 장까지 도달할 뿐만 아니라, 장벽 상피세포에 단단히 부착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기구(FAO)가 정한 ‘인체에 유익한 프로바이오틱스’ 균주로서의 필수적인 기본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결과입니다. 더불어 이 유산균들이 항균 물질이면서 유전적 돌연변이나 독성 물질 유발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유익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젓갈 속 미생물들은 외부 유해 잡균의 침입을 원천 차단하는 정교한 생물학적 방제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농업생명공학연구원 윤상홍 연구팀의 논문 《한국 전통젓갈에서 분리한 Bacillus subtilis JKK238 균주 유래 세 종류 Lipopeptide의 분리 및 특성(2005)》에 따르면, 젓갈 속 자생 고초균들은 발효 과정에서 폭넓은 항생능을 지닌 ‘이투린(iturin)’, ‘서팩틴(surfactin)’, ‘펜지신(fengycin)’, ‘프리파스타틴(plipastatin)’ 등의 강력한 천연 항균 물질(Lipopeptide)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냅니다. 이 천연 항균 물질들은 외부 유해균의 세포막을 즉각 해체하여 젓갈 내부의 안전성을 완벽히 지켜내며, 나아가 식중독 유해균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저해하여 장내 환경을 방어합니다.

    특히 실험실 내(in vitro) 검정 결과, 면역 저하자에게 치사율이 높아 치명적인 식중독균으로 분류되는 리스테리아(Listeria monocytogenes)에 대해 매우 강력한(+++) 억제 활성을 나타냈으며, 일상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대표적 식중독 원인균인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의 증식 또한 효과적으로 저해(+)했습니다.

    유전적 독성이 없는 안전한 유익균들이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자생 고초균이 천연 방제 물질을 내뿜어 완성한 이 위대한 발효식품은, 척박한 화산섬에서 거친 노동을 견뎌내야 했던 제주 선조들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되살리고 면역 시스템을 뒷받침하던 최고의 생명선이었던 셈입니다.

    3. 멜젓: 제주재래돼지와 멜의 만남, 지질(Fat) 대사와 아미노산의 시너지 과학

    고향 마을은 바닷가 가까이에 접해 있습니다. 어렸을 적 가끔씩 “멜(멸치) 들어 왔수다~” 하고 누군가 소리치면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농사 짓던 일손을 멈추고 양손에 양동이며 소쿠리 등을 들고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바닷가로 달려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희 마을 포구 밖 입구 쪽 바다에 원담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원담은 폭과 높이를 약 1m 정도가 되도록 돌담을 큰 원을 그리며 듬성듬성 쌓아 둔 것을 말합니다. 밀물 때에 몰려 온 물고기들이 썰물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만든 일종의 거대한 돌담 그물이라 하겠습니다.

    멜(멸치)은 크게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 무리가 일단 원담 안에 갇히면 그 양 또한 엄청납니다. 썰물이 빠져나간 원담 바닥 위에서 엄청난 살짝 푸른 빛을 띤 은빛 멸치 무리들이 펄떡이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구니를 대고 쓸어 담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 양이 워낙 많기에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소리치며 모여들어 큰 바구니 등에 마구 쓸어 담아도 미처 다 챙기지 못할 정도일 때도 꽤 있었습니다. 어차피 다 담아 오지 못하면 밀물에 도로 사라지게 되므로 온 동네에 소문을 내며 빨리 주으라고 서로 챙겨주었던 것입니다. 멜은 원래 지방질이 많아서 바로 소비하지 않으면 상하기 쉬웠습니다. 워낙 많이 주워 운 멜을 보관하는 방법은 즉시 젓갈로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멜을 사 먹기보다 원담 안에서 주워 와서 먹은 게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식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없애 버렸기에, 사라진 원담은 이제 그저 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항상 진한 아쉬움 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 식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조리 과학적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멜젓(멸치젓)’입니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대부분의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식당에서 멜젓을 당연하다는 듯이 상차림에 기본으로 나옵니다.

    봄철 제주 바다를 가득 메우던 큰 멸치(멜)를 삭혀 만든 멜젓은, 특히 제주의 상징이며 맛의 방주 25호 등록된 ‘제주재래돼지’와 만나면 강력한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를 통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제주 특유의 돔베고기 문화와 돋보이는 지질 대사 과학을 완성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러한 멜젓의 독보적인 분해 능력은 또 다른 독창적인 향토 자산인 ‘맛의 방주’ 117호 ‘제주 수애’와 만났을 때도 빛을 발합니다. ‘수애’는 제주방언으로 ‘수웨’라고도 불렀으며 전통적 제주식 순대입니다. 수애는 돼지피에 보리가루와 메밀가루를 섞고, 잘게 썬 소량의 부추 등 야채와 함께 약간의 다진마늘과 다진쪽파, 생강, 소금, 후추 등을 넣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 후에 돼지 내장에 넣어서 만듭니다.

    성장하여 육지부에 처음 갔을 때 접한 당면 순대는 유년 시절 늘 먹어왔던 고향의 순대와 그 형태와 맛이 너무나도 달라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돼지 내장 한쪽 끝에 깔때기를 끼워 신선한 돼지피를 집어넣고 실로 묶어 가마솥에서 도새기를 삶은 진한 국물에 몸국을 끓이기 직전에 먼저 끓여내던 생생한 가택 도축의 풍경을 수없이 목격하며 자랐기에, 당연히 모든 순대는 제주의 전통 수애처럼 선지를 중심으로 속을 묵직하게 채웠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찌는 방식의 낯선 육지식 순대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쌀이 귀한 환경에서 선지의 점성을 잡기 위해 메밀가루를 섞고 채소 고명과 함께 속을 채워 빚어낸 묵직한 고단백의 제주 수애는 자칫 장내에서 소화 대사가 더딜 수 있으나, 발효된 멜젓의 풍부한 아미노산과 분해 효소들이 수애의 단백질 구조를 부드럽게 연화시키고 영양 성분의 체내 흡수율을 극대화하는 보완적 대사 과학을 훌륭하게 수행해 냅니다.

    1) 지방 분해 효소와 지질 대사의 활성화

    제주의 선조들이 삶은 돔베고기나 구운 돼지고기를 먹을 때 반드시 멜젓을 곁들이거나 불판 위에 멜젓을 자작하게 끓여 찍어 먹었던 풍습은 인체 소화 과학의 정수입니다. 잘 삭은 멜젓의 국물 안에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뿜어낸 강력한 단백질 분해 효소인 프로테아제와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가 고농축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조리 과학적으로 멜젓 속의 프로테아제는 돼지고기 특유의 단단한 단백질 섬유를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상태로 사전 분해하여 위장관의 소화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와 동시에 강력한 리파아제 성분은 돼지 지방의 트리글리세라이드 구조를 유기산과 모노글리세리드로 빠르게 가수분해합니다. 기름진 돼지 지방이 위장에 들어가기 전 멜젓의 효소들이 일차적으로 지질 구조를 미세하게 쪼개어 소화 불량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전 분해 작용은 포화지방산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장내에서 더부룩함이나 가스를 유발하는 부담을 줄여줍니다. 즉, 멜젓의 천연 리파아제는 지방을 우리 몸이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빠르게 전환시켜, 기름진 고기를 섭취할 때 발생하기 쉬운 소화기계의 부담을 자연스럽게 덜어주는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 역할을 합니다.

    2) 불포화지방산 필수 아미노산의 영양학적 상보성

    등푸른생선인 멜(멸치)의 핵심 영양소는 풍부한 핵산(Nucleic acid), 그리고 오메가-3 계열인 EPA와 DHA를 다량 함유한 양질의 지질입니다. 이 불포화지방산들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발효된 멜젓은 돼지고기의 포화지방이 혈관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불포화지방산을 공급해 주며, 돼지고기 단백질과 미생물 발효 단백질이 만나 아미노산의 영양학적 상보성(서로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효과)을 완벽하게 완성합니다.

    6-3회 맺음말: 바다의 지혜가 완성한 영양학적 균형

    결국 제주의 게우젓, 자리젓, 멜젓은 단순히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나 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화산 섬이 지닌 미네랄의 결핍을 바다의 유기물로 메우고, 초저지방 식단 속에서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지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미생물의 발효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급받았던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습니다.

    바다의 영양을 옹기 속 미생물 발효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흡수 형태로 변환시킨 선조들의 지혜는, 영양 과잉과 미네랄 불균형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식단에 깊은 과학적 메시지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6-3회 연재를 통해 제주의 바다가 선물한 게우젓, 자리젓, 멜젓 속 ‘발효 미생물과 양질의 지질, 그리고 고칼슘의 영양학’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어지는 다음 제6-4회 연재에서는 이번 단백질과 미네랄 식문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제주의 독창적인 ‘천연 약용 보존 과학: 꿩엿과 뎅이주 약엿’의 세계로 찾아갑니다.

    겨울철 부족한 영양을 당(Sugar)의 힘을 빌려 상하지 않게 묶어두었던 선인들의 지혜와, 기침을 멎게 하던 뎅이주 껍질 속 약리 과학을 저의 생생한 유년 시절의 따뜻한 추억과 흥미로운 의학적 데이터와 함께 풀어내겠습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우리말샘, 제주방언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대한민국 맛의 방주

    * 류순호, 송관철, “제주도의 토양과 농업자원: 제주도 토양의 분류와 특성 및 관리 문제”, 제주도연구(제주학회), 제8집, 1991, pp. 42-58.

    * 이정뢰, 보섭, 강성국,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복의 영양성분 비교 분석”,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제20권 제4호, 2013, pp. 441-450.

    * 신은영, “동굴숙성 제주 전통젓갈의 미생물 특성연구” (2007) 제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 임은서·김영목·이은우, “멸치 젓갈로부터 분리된 젖산세균의 프로바이오틱 특성 및 안전성 평가”, 한국식품과학회지, Vol. 48, No. 4, pp. 306~316 (2016)

    * 윤상홍, 김정봉, 임융호, 홍성렬, 송재경, 김삼선, 권순우, 박인철, 김수진, 여윤수, 구본성, “한국 전통젓갈에서 분리한 Bacillus subtilis JKK238 균주 유래 세 종류 Lipopeptide의 분리 및 특성”,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지, 제33권 제4호, 2005, pp. 291-297.

  • <제6-2회> 제주의 단백질 영양학: 푸른콩장과 몸국

    가마솥과 옹기독이 놓인 제주 전통 부엌을 배경으로, 나무 테이블 위에 옹기 그릇들에 정갈하게 담긴 전통 푸른콩장과 푸른콩 간장 병, 그리고 원료가 되는 토종 푸른콩이 놓여 있는 풍경


    부제: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의 활용 지혜

    제주의 선조들은 척박한 화산재 땅과 거친 바다라는 고립된 섬 환경 속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제주의 토양은 물을 머금지 못해 쌀농사가 불가능했으며, 이는 늘 만성적인 영양 결핍, 특히 단백질의 부족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선인들은 때로는 미생물의 힘을 빌리고, 때로는 고유의 조리 과학을 활용해 이 한계를 위대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탄수화물 중심의 곡물 발효(쉰다리, 빙떡, 상외떡)를 통해 에너지원의 보존 과학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제주의 척박함을 이겨내게 한 핵심 영양소인 ‘단백질’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땅에서 얻은 식물성 단백질 발효의 정수인 ‘푸른콩장’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대사를 통해 얻은 동물성 단백질의 결정체인 ‘몸국’으로 이어지는 제주의 식문화 흐름 속에는 선인들의 경이로운 영양학적 진화와 조리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1. 땅에서 얻은 천연 영양 보고, 제주 푸른콩장의 미생물학적 메커니즘

    1) 슬로푸드 운동과 ‘맛의방주’

    슬로푸드운동은 슬로푸드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입니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전세계 170개 국가에서 100만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슬로푸드 철학은 전통적이며 지속 가능한 음식과 식재료를 지키며, 경작법과 가공법을 보존하고 가축과 야생 동물의 생물종다양성을 보호합니다. 지역의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역의 전통음식, 토종 종자, 발효음식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데 나서고 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에 지역음식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맛의방주’라는 국제 프로젝트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맛의방주는 노아의 방주처럼 소멸 위기에 처한 종자나 식재료를 찾아 목록을 만들어 ‘맛의방주’에 승선시켜 지역음식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국제 프로젝트이다. 맛의방주는 2024년 12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161개국에서 6,110여 종이, 한국에서는 제주푸른콩을 비롯하여 118종이 국제 슬로푸드 ‘맛의방주’에 등재되었다. 맛의방주는 전 세계 문화와 전통이 깃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을 기록한 온라인 목록이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는 한국의 슬로푸드운동을 대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맛의 방주 100개를 엄선하였습니다. 협회의 발굴기준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역 고유 맛을 가진 식재료와 식품, 지역 고유 토종 또는 야생종, 지역 생산물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만든 가공식품
    ② 지역의 전통적인 조리방법과 가공법 등을 가지고 있고 독창적인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식품

    2) 제주푸른콩장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엄선한 ‘대한민국 맛의방주 100’의 제1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 바로 ‘제주푸른콩장’입니다.

    제주푸른콩장은 푸른독새기콩 등으로 불리는 제주 지역 토종콩인 푸른콩으로 만든 장입니다.

    제주 선조들은 타지역과 달리 여름철에 된장냉국, 된장물회를 즐겼고 채소는 물론 생선회, 돼지고기 수육도 대부분 생된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따라서 생된장과 함께 섭취하는 전통음식이 많습니다. ‘푸른콩장’은 이러한 전통음식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 역시, 어린 시절 육지 사람들처럼 된장을 늘 끓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자리돔 물회에 생된장을 듬뿍 풀고, 밭에서 갓 딴 고추나 물외(토종 오이, 노각 오이) 등을 생된장에 툭툭 찍어 먹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서 만드는 국이 제일 맛있다고 하시며, 다른 집 음식은 할머니 국 맛을 못 따라간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께서 만드신 된장 맛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하셨죠. 비록 푸른콩장은 아니었지만, 할머니께서 담그셨던 베지근한 그 된장의 살아있는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향수입니다.

    제주 토종 콩인 ‘푸른콩’은 ‘장콩’이라고도 부르며, 콩 자체가 자당을 9.1% 함유하고 있어 일반 메주콩에 비해 고소하며 단맛이 높고 찰집니다. 또한 감칠맛이 나고, 오래 숙성시켜도 장 특유의 군내가 나지 않아서, 일반 된장과 차별되는 독특한 맛을 품고 있습니다.

    제주의 푸른콩은 육지의 대두와 달리 껍질과 속이 모두 은은한 푸른빛을 띄며, 제주의 강한 바람과 가뭄을 견뎌낸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습니다. 이 푸른콩을 기반으로 만드는 제주의 전통 ‘푸른콩장’은 일반 육지의 된장과 비교했을 때 제조 과정과 균주(菌株)의 분포에서도 매우 독창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3) 된장의 미생물학적 메커니즘

    콩을 삶아서 벽돌 모양의 메주로 만든 다음 볏짚으로 엮어 처마에 매달아 두는 이유는 고초균을 활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초균은 마른풀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로서 볏짚에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라고 합니다.

    메주를 볏짚으로 엮어 두면, 지푸라기에 서식하고 있던 바실러스 서브틸리스가 콩에 달라붙어 강력한 분해 효소(Protease)를 분비하는데, 콩이 가진 전분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분해하여 포도당으로 분해한다던지, 콩의 거대하고 거친 식물성 단백질 구조를 인간의 장벽에서 즉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인 아미노산으로 정밀하게 쪼개어 줍니다. 이 아미노산이 감칠맛을 나게 하는 성분인 것입니다.

    4) 제주 푸른콩장 제조 과정의 특징

    제주의 토종된장은 육지의 된장처럼 짜고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고, 특유의 향긋함과 은은한 단맛, 그리고 묵직한 감칠맛이 도는 독창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화된 발효학의 비밀은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볏짚의 결핍에 기인합니다.

    제주는 논농사를 짓지 못해 메주를 묶을 ‘볏짚’이 귀했습니다. 육지에서는 볏짚에 붙어 있는 유익 미생물인 고초균을 메주에 이식하여 발효를 유도하지만, 제주의 선조들은 볏짚 없이 맑은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교차하는 서늘한 돌담 공간에서 청정한 자연계에 상시 존재하던 고유의 토종 고초균(Bacillus subtilis) 균주들을 메주 표면에 자연스럽게 안착시켜 발효를 유도하였습니다.

    이 제주의 토종 고초균들은 푸른콩이 가진 풍부한 아미노산 성분과 결합하여 강력한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고초균이 분비하는 효소들이 콩 단백질을 미세하게 쪼개면서, 인공 조미료의 감칠맛을 능가하는 천연 글루탐산(Glutamic acid)을 폭발적으로 생성해 냅니다. 소금을 많이 쓰지 않아도 장맛이 깊고 베지근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제주의 푸른콩장은 제조 방법과 발효 환경에서 육지의 장류와 궤를 달리합니다. 삶은 콩을 메주로 만들어 쓰는 육지와 달리,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삶은 콩을 으깨어 누룩가루와 섞은 뒤 몇 개월만 숙성시키면 완성되는 막장을 많이 담갔습니다. 때로는 볶은 푸른콩가루(개역)를 직접 활용하여 장을 담그기도 하였는데, 이는 미생물과의 접촉 면적을 극대화하여 발효 속도를 앞당기는 선인들의 영양학적 지혜였습니다.

    또한, 잿물을 바르지 않아 숨구멍이 살아있는 제주 고유의 전통 옹기에 담았는데, 제주의 옹기는 고온다습한 섬 기후 속에서도 내부 공기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유해 부패균을 막고 고유의 유익한 바실러스 균주들이 안정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최고의 미생물 생태계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5) 전통 제주 푸른콩장의 과학적 우수성

    콩에 다량 함유된 이소플라본(Isoflavone) 성분은 미생물의 효소와 만나면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체내 흡수율이 몇 배나 높은 ‘비배당체(Aglycone)’ 형태로 전환됩니다. 이는 혈관 건강 개선을 비롯해 항염증, 항암, 대사증후군 예방 및 장내 미생물 환경 조절 등 전방위적인 건강상 이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제주 푸른콩은 원료인 상태는 물론 된장으로 발효된 상태에서도 우수성이 입증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농업기술센터의 논문을 인용합니다.

    (인용)

    표 5. 품종에 따른 원료 및 된장의 이소플라본 함량 변화(㎎/100g)

    구 분세부 성분푸른콩
    (제주토종)
    백운콩
    (장류용)
    풍산콩
    (나물용)
    원 료제니스틴 (genistin)188.7155.6182.9
    다이드진 (daidzin)135.4103.7121.3
    제니스테인 (genistein) 8.7 8.4 8.6
    다이드제인 (daidzein) 23.1 4.5 4.7
    된 장제니스틴 (genistin) 5.4 5.1 6.1
    다이드진 (daidzin) 12.7 11.3 11.6
    제니스테인 (genistein) 114.1 81.5 99.7
    다이드제인 (daidzein) 74.8 41.8 52.8

    (인용 끝)

    제니스테인과 다이드제인은 생리기능이 가장 우수한 대표적인 이소플라본이라고 합니다. 원본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보면,

    콩 원료 상태에서 다른 콩과 대비 시 다이드제인(daidzein)은 백운콩 대비 5.13배, 풍산콩 대비 4.91배로 압도적이며, 발효 과정을 거쳐 된장이 되었을 때, 흡수율이 극대화된 형태인 제니스테인은 백운콩 대비 1.40배, 풍산콩 대비 1.14배이며, 다이드제인은 백운콩 대비 1.79배, 풍산콩 대비 1.42배로 나타나 다른 된장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검출되었습니다. 이는 발효 후에도 제주 푸른콩장이 일반 된장 대비 영양학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는 명확한 과학적 증거입니다.

    제주대학교 연구팀이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J Korean Soc Food Sci Nutr)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제주 전통 방식으로 제조된 된장(푸른콩장)에서 자생하는 토종 바실러스(Bacillus) 속 균주들은 일반 표준 균주보다 단백질 분해 효소(Protease) 분비능이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강력한 세포외효소들은 콩의 거대하고 거친 식물성 단백질 구조를 인간의 장벽에서 즉각적으로 소화 흡수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인 아미노산과 저분자 펩타이드로 정밀하게 쪼개어 줍니다.

    더욱 놀라운 과학적 사실은 이 제주 토종 발효 미생물들이 현대인의 만성 성인병인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강력한 ‘혈전용해 활성’을 뿜어낸다는 점입니다. 논문의 실험 결과, 제주 발효 균주 중 하나가 나타낸 혈전용해 활성은 인체 내에 존재하는 천연 혈전용해 효소인 플라스민(Plasmin)의 효능 대비 무려 192%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즉, 제주의 푸른콩장은 단순한 향토 음식을 넘어, 미생물의 대사 작용을 통해 단백질의 흡수율을 극대화하고 혈행 건강을 돕는 고부가가치 ‘기능성 바이오 푸드’의 원형인 것입니다.

    6) 전통 제주 장류 보존을 위한 노력의 필요

    전통 장류발효식품은 우리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하지만 염분의 함량이 높아 현대인의 성인병 예방 차원에서 볼 때 저염화 추세가 요구되는 요즘의 식생활을 감안하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제주 식단은 자극적인 절임 음식을 최소화하여, 전국에서 가장 담백하고 나트륨 자극이 적은 건강식으로 분류됩니다. 가뜩이나 인스턴트와 과도한 나트륨으로 현대인들의 장 건강과 면역계가 위협받는 요즘, 제주의 전통 푸른콩장은 사실상 미래 인류의 식단을 치유할 ‘천연 바이오 생명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소중한 전통 발효 식품이 자칫하면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주 전통 푸른콩의 종자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푸른콩을 원료로 한 전통 된장 제조 방법의 명맥을 유지하고 연구⦁개발하며 대외에 알리고 있는 제주 도내의 영농조합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여깁니다. 제주인의 일원으로서 관계자 분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2. 식물성에서 동물성으로의 영양학적 확장

    가마솥과 옹기독이 있는 제주 가정집 부엌을 배경으로, 소박한 나무 식탁 위에 뚝배기에 담긴 따끈하고 걸쭉한 모자반 몸국을 국자로 들어 올리는 모습과 그 곁에 찰기 있는 보리밥, 콩자반, 송송 썬 고추 등 소박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제주 전통 가정식 밥상 풍경

    제주의 잔치나 상례 등 대사(大事)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몸국’입니다.

    식물성 발효 단백질(푸른콩장)을 통해 일상적인 기초 영양을 확보한 제주의 식문화는, 마을의 대사(大事)를 기점으로 식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 동물성 단백질로 영양학적 영역이 확장됩니다. 그 중심에 바로 제주의 잔치나 상례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던 음식인 ‘몸국’이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마을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또는 ‘가문 잔치’에서 이웃들과 함께 도새기(제주 방언, 돼지)를 잡고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는 고유의 풍습을 유지해 왔습니다. 가문-잔치(家門잔치)란 「명사」이며, ” 제주 전통 혼례에서, 혼례 전날 가까운 친척들이 잔칫집에 모여 치르는 잔치”를 뜻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우리말샘’)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귀한 도새기를 잡은 후 살코기는 삶아 내어 잔치 상에 올리지만, 돼지의 뼈와 내장, 부산물 역시 단 한 점도 버릴 수 없는 귀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이었습니다. 이를 모두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오랜 시간 뭉근하게 푹 고아내어 진한 육수를 만들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동물성 단백질과 진한 지방 성분이 국물에 녹아내립니다.

    여기에 거친 제주 바다에서 채취하여 말려둔 ‘몸'(제주 방언, 모자반)을 가득 넣어 끓여내어, 마지막에 메밀가루를 풀고 소금이나 전통 간장으로 간을 맞춰 완성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린 시절 동네에 큰 잔치가 열려 도새기를 잡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거대한 무쇠 가마솥 근처에 모여서 놀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뼈와 내장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고아낸 진한 육수에 말린 모자반을 한가득 집어넣고 메밀가루를 휘휘 풀 때 퍼지던 그 구수하고 묵직한 냄새는 잔칫날의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 몸국이라는 제주의 전통 요리 안에는 미생물 발효 못지않게 감탄을 자아내는 조리 과학적 상호작용이 숨어 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 안에서 일어난 ‘유화 작용’ 덕분에 우리 선조들과 이웃들은 그 귀한 돼지 한 마리를 가장 완벽하고 소화가 잘되는 상태로 나누며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지방의 유화(Emulsification)와 소화 흡수 과학

    지방의 유화(Emulsification)는 물과 섞이지 않는 지방을 미세한 입자로 쪼개어 물속에 고르게 분산시키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접촉 면적이 넓어져 소화 효소의 작용이 원활해지게 됩니다.

    돼지 부산물에서 나온 짙은 동물성 지방은 자칫 인간의 위장에 큰 부담을 주고 소화 불량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기름진 돼지 고기 국물임에도 불구하고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내며 소화가 잘되는 비결은 바로 바다의 모자반에 있습니다.

    1985년 한국수산학회지에 발표된 김동수·박영호 연구팀의 모자반 알긴산 연구 논문에 따르면, 모자반은 건조물 기준으로 원물의 25~26% 이상이 순수한 천연 ‘알긴산(Alginic acid)’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풍부한 알긴산과 다당류 성분은 가마솥에서 온도가 뜨겁게 상승함에 따라 분자 구조가 유연하게 풀려나와 퍼지는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지닙니다. 고온의 국물 속에서 해리된 알긴산 분자들이 천연 유화제 역할을 수행하여, 물과 섞이지 않는 무거운 동물성 지방 입자들을 미세하게 쪼개어 국물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킵니다. 이 유화 과정을 통해 지방의 접촉 면적이 넓어져 체내 소화 효소의 작용이 원활해지며, 결과적으로 위벽을 보호하고 소화 흡수율을 극대화하는 상태로 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은 모자반의 알긴산 성분이 지닌 독특한 분자 배열 구조에 의해 유해 금속 이온에 대해서도 뛰어난 흡착 및 이온교환능을 지니고 있음을 화학적 수치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선인들이 기름진 고단백 고지방 영양을 보충하는 동시에, 식이섬유질이 풍부한 해조류를 다량 곁들임으로써 장내 환경을 정화하고 영양적 밸런스를 완벽하게 맞추고자 했던 식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2) 메밀가루를 통한 영양학적 밸런스와 잡내 제어

    (농촌진흥청, 그린매거진 인용)

    『메밀은 비타민 B1, B2, E, D를 비롯해 다른 곡물이나 쌀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14%나 높은 매우 영양가 있는 곡물이다. 또한 쌀이나 밀가루보다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단백가가 높으며 비타민 B1과 B2는 쌀에 비해 3배 정도 함유되어 있다.

    메밀 성분 중 매우 특징적인 것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 P 일종인 플로보노이드 유도체 루틴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루틴은 고혈압, 동맥경화증, 폐출혈, 궤양성질환, 동상, 치질, 감기 치료 등에 효과가 인정돼 임상에 이용되고 있는 성분이다. 또한 체내 노폐물을 내보내 피를 맑게 하여 혈관을 부드럽게 하고 혈압을 안정시켜준다.』

    전통적인 몸국은 조리 마지막 단계에 반드시 메밀가루를 물에 풀어 솥에 흩뿌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메밀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라이신(Lysine)’ 등 필수 아미노산은 돼지고기 단백질에 부족한 아미노산 조성을 완벽하게 보완하여 단백질의 영양가를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또한 메밀의 전분 입자는 돼지 육수 특유의 휘발성 누린내 성분을 물리적으로 흡착하여 가두어 버림으로써, 맛을 한층 더 부드럽고 담백하게 감싸주는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3. 맺음말: 식단 구조의 진화와 영양학적 대안

    결국 제주의 푸른콩장과 몸국은 단순한 향토 음식을 넘어, 섬이라는 지리적 고립과 척박함 속에서 자연 환경과 인간의 영양학이 치열하게 타협하여 만들어낸 식문화 예술입니다.

    일상적인 식물성 단백질의 미생물 분해(푸른콩장)에서 시작하여, 특별한 날 공동체가 함께 나누던 동물성 지방과 해조류, 그리고 잡곡의 조리 과학적 결합(몸국)으로 이어지는 단백질 식단의 확장은 제주의 생존을 지탱한 핵심이었습니다. 자극적인 현대 식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제주의 전통 단백질 식문화는,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소화계가 최적의 기능을 하도록 돕는 상태인 장 건강(Gut Health)과 깊은 영양적 위로를 주는 미래의 웰빙 대안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제6-2회 글이 땅에서 올린 푸른콩장과 바다와 마을이 합작한 몸국을 통해 ‘단백질의 영양학’을 살펴보았다면, 다음 제6-3회 연재에서는 제주인들의 일상 식탁을 지켜온 또 다른 핵심 축, ‘지방(Fat)과 미네랄’의 조리 과학을 파고듭니다. 척박한 섬 환경 속에서 귀한 지방 성분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고 보존하기 위해 선조들이 선택했던 지혜로운 식재료 활용법과, 제주의 청정 자연이 선사한 미네랄의 영양학적 비밀을 흥미로운 과학적 데이터와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우리말샘. 제주방언 사전 데이터.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홈페이지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홈페이지, 대한민국 맛의 방주 100 공식 선정 자료

    * 홍석일 (2020). 유용 미생물의 대명사가 된 ‘바실러스’. 농기자재신문 기고문.

    * 오유성·박지은·오현정·김정현·오명철·오창경·오영주·임상빈 (2010). 제주전통된장으로부터 세포외효소 분비능이 우수한 미생물의 분리 및 특성.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 한식진흥원 (KFPI). ‘푸른 콩장’으로 되살아난 제주 토종 ‘푸른 콩’ 온라인 매거진 리포트.

    * 기능식품 저널 (74, 2020). 주요 이소플라본 아글리콘과 그 대사산물의 생체이용률과 건강상의 이점. ScienceDirect 수록.

    * 김미실 (2005~2006). 제주토종 푸른콩의 가공적성 및 장류 제조특성 연구.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연구보고서.

    * 김동수·박영호 (1985). 알긴산의 화학적 조성 및 그 물성에 관한 연구 (4) 외톨개모자반 및 괭생이모자반의 알긴산. 한국수산학회지, 18(2), 12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