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고대어의 원형을 품은 ‘제주어(濟州語)’, 소멸 위기에 처하다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훈민정음언해> 이미지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제7회에서는 제주의 강렬한 땡볕과 풋감의 탄닌 성분이 만나 천연 수지 코팅막을 형성하는 ‘제주 갈옷’ 속의 경이로운 섬유물리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이 준 기후적 시련을 극복하고, 이를 자외선 차단율 98%라는 완벽한 기능성 의복으로 녹여낸 선조들의 의생활 지혜는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지요.

이처럼 대지, 돌담, 밥상, 의복까지 삶의 모든 물질적 영역을 과학적 지혜로 채워가던 제주의 선조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자산에도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제주의 눈에 보이는 유산들을 넘어, 제주 사람들의 영혼과 역사의 궤적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는 무형의 위대한 자산, ‘제주어(濟州語)’ 속에 숨겨진 언어학적 가치와 마주한 소멸 위기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육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알아듣기 힘든 낯선 사투리로 취급받던 제주어가 어떻게 고대 한국어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타임캡슐이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1.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반치음() 품은 언어학적 타임캡슐

제주어가 이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는, 육지와 고립된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15세기 중세 한국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제주어는 국어사 연구의 표준을 제시하는 거대한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1) 아래아()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모음인 ‘아래아(ㆍ)’의 생생한 생존입니다. 육지 표준어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아래아 발음이 완전히 소멸하여 음가 자체가 사라졌지만, 제주어에서는 여전히 아래아의 독특한 발음이 일상 속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예>

* ᄒᆞᆫ저 옵서예(얼른 오세요)
* ᄆᆞᆯ(말)
* ᄒᆞ다(하다)
* 오ᄂᆞᆯ(오늘)
* ᄌᆞ근ᄌᆞ근(자근자근)
* ᄀᆞᆯ개비(개구리)
* ᄃᆞ람지(박쥐, 다람쥐)
* ᄃᆞ오다(데려오다)
* ᄒᆞ나(하나)
* 모ᄆᆞᆯᄎᆞ베기(메밀수제비)

2) 반치음(ㅿ)

15세기 문헌 속 반치음(ㅿ)을 포함하던 어휘들이 육지에서는 자음이 아예 날아가 버린 형태(가위, 아우, 겨울)로 변한 반면, 제주어에서는 ‘ㅅ’ 형태로 자음의 흔적을 굳건히 유지하며 육지 말(표준어)과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장정민·배영환, <20세기 초 제주방언의 음운론적 연구 – 《朝鮮語方言の硏究(1944)》를 중심으로 -> 내용 재구성

(발췌 요약)

중세 국어 어휘표준어
(ㅿ ➔ ∅ 변화)
(ㅿ 소리 완전히 소멸)
제주어
(ㅿ➔ ㅅ 변화)
(‘ㅅ’으로 남아 보존)
ᄀᆞᆺ애가위ᄀᆞ새, 가새
아ᅀᆞ아우아시
저ᅀᅳᆶ겨울ᄉᆞ울~ᄀᆞ실, 겨실
ᄀᆞᆺ가 (테두리)

3) 순경음 비읍(ㅸ)의 잔재

<제주어 표기법 해설> (2014, 제주발전연구원)에 제시된 어휘들을 살펴 보면, 순경음 비읍(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1음절 어간의 사례
* 형용사: 곱다, 밉다, 춥다, 덥다, 맵다, (각도가) 굽다, 답다, 쉽다
* 동사: 눕다, 줍다, 깁다, (불에)굽다, 낍다/끼우다, 돕다, 뱁다/배우다, 뵙다, 쌉다/싸우다  

② 2음절 이상의 어간의 형용사 사례* 차겁다, 뜨겁다, 서럽다, 즐겁다, 게벱다/게붑다(표준어의 가볍다), 무겁다, 더럽다, 어렵다, ᄆᆞᄉᆞᆸ다/무섭다, 부럽다/불룹다,


어릴 적 조부모님과 생활할 때에는 더운 날이면 “에고~ 더버라~”, 추울 때에는 “추버라”라고 발음하시는 것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당시에는 표준어가 아닌 잘못된 사투리 발음을 하시는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발음이 재미있어서 장난삼아 따라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자라서 순경음 비읍(ㅸ)을 알고 나니 그렇게 발음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문자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선조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대로 보존되어 온 생생한 언어의 유산이지요. 제가 보기에 요즘엔 거의 이런 발음을 하시는 분이 없는 듯합니다. 지금은 현대적 어휘로 많이 바뀌었지만, 조금만 거슬러 살펴보면 그 소중한 잔재를 여전히 실감할 수 있습니다.

4) 소결

이처럼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아래아(ㆍ), 반치음(ㅿ), 순경음 비읍(ㅸ)의 흔적이 어휘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국어학자들은 책 속의 활자로만 존재하던 고대어의 실제 발음과 문법을 연구하기 위해 반드시 제주를 찾습니다. 척박한 변방의 섬이라 불리던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아득한 세월 동안 한민족의 소중한 언어적·문화적 원형을 안전하게 품어낸 영리한 보관소가 되어준 것입니다.

2. 어휘의 풍요로움과 보존량

1) 어휘의 풍요로움

제주어에는 바람의 종류를 표현하는 단어와 바다에서 어로 작업에 관한 단어 및 돌과 관련된 단어들만도 각각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 실용적 생활 어휘가 발달해 있습니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고립이라는 한계를 중세 한국어 원형의 뚝심 있는 보존력으로 이겨낸 제주의 언어. 가뜩이나 디지털 소통으로 인해 전 세계의 소수 언어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는 요즘, 풍요로운 어휘를 가진 제주의 전통 언어는 사실상 한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탱하는 가장 귀하고 단단한 ‘무형의 생명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2) 중세 국어 어휘 보존량

전통 제주어는 15세기 조선 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고어(古語)의 형태와 ‘아래아(ㆍ)’ 등 중세 국어의 음운을 가장 풍부하게 품고 있어, 국어학계에서 ‘살아있는 중세 국어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어 어휘의 기록화 작업은 지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1995년 발간한 《제주어사전》에는 표제어 18,456 항목을 수록하였고, 2009년 발간한 《개정·증보 제주어사전》에는 25,350 항목을 수록했습니다. 이어서 제주학연구센터와 진행한 《제주어대사전》 편찬 사업을 통해 현장 어휘와 관용어 등을 보완하며 40,000여 개 이상을 목표로 어휘 자산이 확충 및 기록화되고 있습니다. 한편, 《제주어대사전》 웹사전 구축 기반을 마련하여 “제주어왓(‘제주어밭’이라는 뜻)”을 이미 시험 운영 중에 있습니다.

3. 제주어의 특징

1) 조사의 과감한 생략과 단어의 축약

예를 들면,

* 어디에 가십니까? –> 어디 감쑤강?
* 여기에 와서 이것을 보십시오 –> 여기 왕 이거 봅써.
* 어디에 가고 계십니까? –> 어디 감수꽈?
*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 —> 학교 강 공부 핸(해연).

제주어에서 조사가 생략되고 단어가 짧게 축약된 이유는 제주의 거센 ‘바람’과 생존 환경에 적응한 결과입니다. 숨비소리를 내는 해녀들의 물질이나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밭일 속에서 긴 문장으로 말하면 소리가 다 흩어져 버립니다. 특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친 바다에서의 뱃일과 해녀가 물질할 때 등에 정확한 의사전달은 생사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2) 독특한 형용사의 발달

표준어 역시 형용사가 대단히 발달한 언어이지만, 제주어는 표준어 단어와 일대일로 매칭하기 어려운 제주만의 독특한 형용사(맛, 온도, 성품, 상태 등)들을 풍부하게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회> 글에서 다룬 ‘맨도롱하다’는 ‘미지근하다’와 ‘따끈하다’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며, 우리가 몸으로 느끼기에 매우 알맞은 적당한 온도입니다. 육지의 언어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미묘한 온도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② ‘베지근하다’라는 말은 ‘고기 등을 푹 고아낸 국물이 구미가 당길 정도로 묵직하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있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름지거나 느끼한 맛이 아니라, 깊은 진국에서 느껴지는 풍부하고 진한 감칠맛을 표현할 때 쓰는 제주 특유의 대표적인 맛 형용사입니다. 제주어가 아니면 이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③ ‘사락사락하다’는 ‘무엇이 자꾸 가볍게 쓸리거나 맞닿는 소리가 나다. 또는 그런 소리를 내다.’, ‘물건의 겉이 매끄럽지 못하고 좀 거칠다.

④ ‘요망지다’는 ‘똑똑하고 야무지다. 나이에 비해 총명하고 어른스럽다.’

⑤ ‘오소록하다’는 ‘조용하고 구석진 곳으로써 으슥하다.’

⑥ ‘발아뎅기다’는 ‘담장이나 나무 위 따위 발붙이기 어려운 곳을 기어 다니거나 걸어 다니다.’


3) 공동체의 연대 철학이 담긴 어휘

이웃을 가족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삼춘’, 이웃 간의 공동체 품앗이를 뜻하는 ‘수눌음’이 있습니다. 또한 <제4회> 글에서 언급한 ‘정낭’은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완벽한 신뢰가 있어야만 유지 가능한 문화에서 탄생한 단어입니다. 각자도생하기 힘든 거친 환경 속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연대해 온 섬사람들의 상생 철학이 단어 한 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주어’만의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4. 출륙금지령의 역설: 거대한 고립이 만든 고대어의 보존 과학

도대체 어떻게 제주의 언어는 육지와 수백 년의 세월을 비껴가며 이토록 완벽하게 15세기의 영혼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그 역사적 열쇠는 역설적이게도 <제5회> 글에서 다루었던 중앙 정부의 가혹한 통제 정책, 바로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에 있습니다.

인조 7년(1629년)부터 순조 23년(1823년)까지 무려 200여 년 동안 제주 사람들은 나라의 법에 묶여 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육지 사람들과의 접촉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섬 전체가 거대한 ‘지리적·문화적 감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혹한 단절은 언어학적으로 엄청난 반전의 축복을 만들어냈습니다. 언어는 끊임없이 교류하고 섞이면서 변화하는 성질을 지녔지만, 제주의 언어는 외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완벽한 ‘폐쇄적 생태계’ 속에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육지의 언어가 전란과 개화기를 거치며 아래아(ㆍ)를 잃고 기존 문법의 원형을 빠르게 잃어갈 때, 제주의 언어는 섬 안의 단단한 공동체 네트워크 속에서 15세기의 음가와 단어들을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굳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단절의 역사가, 한민족 전체의 언어 고향을 지켜낸 위대한 방파제가 된 셈입니다.

5. 소멸 위기 4단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제주어의 냉정한 현실

1) 소멸 위기를 맞은 제주어

소멸 위기 4단계 언어로 분류된 제주어에 대해 문순덕 외의 《제줏말 소멸위기 실증적 진단과 대응 방안 연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수는 대략 6,000〜7,0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는 약 3,000개의 언어가 소멸위기에 있다고 추정함.

유네스코에서는 구체적으로 언어가 맞고 있는 소멸 위기를 아래와 같이 단계별로 구분합니다. 2010년, 유네스코(UNESCO)의 《소멸 위기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기준에 따라 살펴 보면, 7단계로 구분하여 정의하였지만 실제 언어 지도상 표시는 5단계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표는,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자료 해석의 편의를 위해서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소멸 위기 4단계 언어로 분류된 제주어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문순덕 외 <제줏말 소멸위기 실증적 진단과 대응 방안 연구>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위 표를 보면 제주 사투리가 아닌 ‘제주어’로 명확히 구획되어 있으며, 소멸 위기 4단계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조사 당시 제주어 사용 인구는 약 5,000~10,000명에 불과하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원 역시 70~75세 이상의 고령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제 공인 기구인, 세계 표준화 기구(ISO)에서도 ‘제주어’를 단순 방언이 아닌 독자적인 개별 언어로 인정하여, 고유 언어 코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SIL Global (ISO 639-3 등록 관리 기관) — iso639-3.sil.org

  • 한국어 공통 코드: kor (ISO 639-3) / ko (ISO 639-1)
  • 제주어 독자 코드: jje (ISO 639-3)

이처럼 ‘제주어’가 ‘한국어’와 별개의 고유 언어로 등록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독립된 언어 자산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제주어를 제주도 전역에서 흔하게 쓰이는 정겨운 사투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언어 다양성을 보존하는 유네스코(UNESCO)의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0년, 제주어를 단순한 사투리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언어(Jeju language)’로 인정함과 동시에, 전 세계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공식 등록했습니다. 즉, 소멸 직전 단계의 위기 상태인 것입니다.

4단계는 언어를 사용하는 최후의 보루가 오직 ‘조부모 세대’뿐이며, 그 아래 세대로는 더 이상 언어가 자연스럽게 전수되지 않는 고립된 상태를 뜻합니다. 실제로 지금 제주의 젊은 세대나 아이들 중 전통적인 제주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거친 섬바람을 견디며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영혼의 언어가, 현대화와 표준어 보급이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이 지금 제주어가 마주한 냉정한 현실입니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인들의 문화와 가치, 사고방식과 역사 인식 및 생태 양식이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나아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진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네스코는 물론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각 국가 및 지방에서 언어의 소멸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멸 방지 기한의 경고

현재 전통 제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 고령 인구의 연령대를 감안할 때, 향후 10~15년 이내에 체계적인 디지털 아카이빙을 완성하지 못하면 언어의 원형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현재 활발히 추진 중인 《제주어대사전》 완성과 함께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많은 어휘들을 추가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하고도 막중한 사명이라 하겠습니다.

저 역시 SNS 등에서 일부러 제주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애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6.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다

이 놀라운 언어학적 타임캡슐을 마주하고 나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육지의 표준어 기준에 비교되어 ‘교양 없고 투박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변방의 사투리’라 불리던 제주어는, 이제 더 이상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무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예부터 제주어는 억양이 강하고 단어가 축약되어 있어 거칠고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육지의 부드러운 서울말 기준으로만 바라보았을 때는 분명 낯선 언어가 맞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자연과 제주 선조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축복을 숨겨두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긴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기에 단어를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축약하여 소통의 속도를 높였고, 제1회에서 다룬 ‘맨도롱하다’처럼 오감과 식문화의 미묘한 경계를 날카롭게 집어내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실용적인 감정 어휘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변방의 고립이라는 한계를 한민족 최고의 문화적 자산인 고대어의 요람으로 승화시킨 제주의 언어. 이제 제주의 전통 제주어는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가치 있는 ‘무형 언어 자산의 정점’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마땅합니다.

7. 글을 마치며: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내 안의 고유한 목소리를 지킬 시간

제1회 글에서부터 오늘의 제8회 글까지, 제주오리진(Jeju Origin)의 이야기는 거친 바람 속에서도 나만의 원형을 잃지 않고 지켜온 숭고한 흔적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주변의 거센 유행이나 타인의 기준(표준)에 맞추느라, 나만의 고유한 색깔과 소중한 내면의 목소리(원형)를 잃어버린 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주의 언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비록 세상이 변방의 언어라 부르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수백 년간 아래아(ㆍ)를 품어온 제주어처럼 내 안에 깃든 고유한 가치와 신념을 뚝심 있게 지켜낸다면 그 자체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한 타임캡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오늘 하루, 차가운 세상의 유행 속에서 내 고유한 개성이 희미해져 힘겨워하고 있다면, 거센 섬바람 속에서도 고대어의 영혼을 단단하게 지켜내던 제주의 언어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타인의 자극적인 소음 앞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떳떳하고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채워내는 유연하고도 멋진 ‘맨도롱한’ 하루를 보내시는 것은 어떨지요?

다음 글에서는 말 한마디, 언어 하나에도 대자연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담겨 있듯, 거친 바다와 태풍이라는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따뜻한 위로와 연대로 지켜내 준 제주의 거대한 정신적 세계관, ‘1만 8천 신(神)들의 고향, 제주 신화’ 속에 숨겨진 포용의 미학을 함께 탐색해 보겠습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양창용⦁양세정. (2013). 〈소멸위기 언어 보존 사례 분석을 통한 제주어(제주방언) 보전 방안〉,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현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 장정민·배영환-20세기 초 제주방언의 음운론적 연구– 《朝鮮語方言の硏究(1944)》를 중심으로 -, 《한말연구》 제66권 15호(2025. 5), 한말연구학회

* <제주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 <소멸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2010. Unesco UNESDOC Digital Library

* SIL Global (ISO 639-3 등록 관리 기관) — iso639-3.sil.org

* 《제주어 표기법 해설》 (고재환 외, 2014, 제주발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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