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의 물리학: 구멍 숭숭 뚫린 돌담이 태풍을 이겨내는 원리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Jeju Origin입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화산섬 제주의 땅속이 어떻게 ‘다공성 화산회토’와 ‘송이(Scoria)’라는 천연 오리털 패딩을 입고 ‘맨도롱한 온기’를 스스로 유지하는지, 그 대지의 비밀을 함께 풀었습니다.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생명이 살기 좋은 온도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제주의 흙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지혜였습니다.

오늘은 그 대지의 온기를 품은 채, 사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섬바람과 매년 찾아오는 강력한 태풍으로부터 제주의 삶을 지켜내 온 거대하고 경이로운 구조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제주의 집 주위와 들판을 묵묵히 두르고 있는 ‘제주 돌담’입니다.

시멘트 한 줌 바르지 않고 거칠게 툭툭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이 돌담에는, 현대의 첨단 건축공학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놀라운 ‘유체역학의 물리학’이 숨어 있습니다. 거센 태풍의 한복판에서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바람의 길을 열어주며 자리를 지켜낸 제주 돌담의 비밀을 지금부터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제주 돌담의 형태와 오늘의 소재

제주의 돌담들은 그 쓰임새에 따라 울담, 밭담, 산담, 잣담, 원담, 성담 등 여러 형태가 있지만, 오늘은 울담과 밭담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울담은 집의 경계를 나누고 집안에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습니다.

밭담은 농사를 짓는 밭에 타인 소유의 농지와 경계를 나누며, 말이나 소 또는 야생동물들이 농작물을 해치는 것을 막고, 제주의 거친 바람에 흙이 날려버리거나 농작물이 쓰러지는 것을 줄이려 하였고, 때로는 비에 토양이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쌓았습니다.

이 돌담들은 두텁게 쌓는 산담, 원담, 성담들과 달리 한 줄로 쌓는 외담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양을 다듬어서 규격화하는 게 아니고 돌이 생긴 모습 그대로 쓰다 보니, 크기와 모양이 제멋대로인지라 불규칙하게 얹혀 있고 그 사이로 반대편 풍경이 훤히 보일 만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마치 성의없이 대충 쌓아 놓은 것처럼 엉성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2. 제주 돌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

시골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울담 너머 이웃집에는 제법 큰 앵두나무가 있었습니다. 열매가 빨갛게 익을 무렵에는 그 새콤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이웃집 어른들이 볼까 봐 마음졸이며 울담 구멍 사이로 팔을 쑥 집어넣어서 몰래 앵두를 따먹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고 나서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6월 중순경이면 따먹을 때가 되겠군요.

앞집 아이와 또는 옆집 아이들하고 울담 구멍사이로 얼굴을 보며 웃으며 떠들고, 유리구슬과 종이딱지를 교환하던 생각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렇듯 외담으로 쌓은 돌담은 온통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건너편과 고스란히 소통되는 공간입니다.

3.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의 대지를 지키는 검은 울타리

제주도를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검은색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들이 불규칙한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지며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검은 용이 대지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1만 리(약 4,000km)에 달한다고 하여 선조들은 이를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렀습니다. 실제로는 2만 2,000여k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므로, 이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슷한 길이가 됩니다.

‘탐라지’ 풍속편에 의하면, 김구가 1234년에 제주판관으로 임명되어 6년을 제주에서 보내면서 풍속을 규찰하고 단속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김구가 판관이 되어 백성의 고통을 물어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드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로써 제주의 돌담 역사는 약 800여년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이 돌담들은 단순히 땅의 경계를 나누는 선이 아니었습니다. 거센 바닷바람에 집을 보호하고, 밭의 흙과 씨앗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풍벽이자, 애써 키운 농작물을 보호하는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육지의 담장들은 시멘트나 진흙을 꼼꼼히 채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게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데, 제주의 돌담은 손으로 툭 밀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집과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태풍에 무너질 때도, 이 구멍 숭숭 뚫린 돌담들은 끄떡없이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도대체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 걸까요?

4. 돌담 구멍의 ‘유체역학’: 정면 충돌을 피하는 지혜

손으로 밀면 넘어질 듯 엉성한 돌담이 태풍을 견디는 첫 번째 비밀은, 바람을 ‘막아서는’ 대신 ‘흘려보내는’ 길을 선택한 바로 그 ‘비어 있는 구멍’에 있습니다.

물리학과 유체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공기)은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유체입니다.

틈새 없이 꽉 막힌 단단한 시멘트 벽은 강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바람의 압력(풍압)을 온몸으로 정면에서 받아내야 합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벽이 받는 압력은 그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벽 전체가 통째로 넘어지거나 균열이 가게 됩니다. 정면으로 맞서다 부러지는 셈입니다.

반면, 제주의 돌담은 태풍이 몰아치면 그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습니다. 대신 돌과 돌 사이에 뚫린 수많은 구멍 속으로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공기역학적으로 바람이 돌담의 좁은 구멍들을 통과할 때 마찰과 와류(소용돌이)가 발생하면서, 바람이 가진 거대한 운동 에너지가 순식간에 분산되고 약화됩니다. 즉, 돌담을 통과하기 전에는 초속 30~40m에 달하던 파괴적인 태풍이, 구멍들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야성을 잃고 온순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5. 중력과 마찰력이 빚어낸 ‘허튼층쌓기’의 구조학

제주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또 다른 비밀은 구조적 안정성에 있습니다. 제주의 전통 돌담은 네모반듯하게 깎인 돌을 규칙적으로 쌓는 대신,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불규칙하고 거친 현무암들을 가로세로 줄눈을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대로 흐트려 쌓는 ‘막쌓기(허튼층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네모난 돌들은 지진이나 충격이 오면 한꺼번에 미끄러지며 무너지기 쉽지만, 거친 표면을 가진 현무암들은 서로의 요철(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됩니다. 접착제를 쓰지 않는 대신, ‘돌 자체의 무게(중력)’와 돌과 돌이 맞닿은 면의 ‘마찰력’만으로 지탱되는 구조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돌담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 이 불규칙한 돌들은 오히려 틈새를 찾아 더 단단하게 가라앉으며 서로를 꽉 움켜쥐는 독특한 역학적 성질을 가집니다.

6. 비움의 물리학: ‘베르누이의 정리’가 적용되는 고정력

앞서 살펴본 유체역학과 구조학의 원리를 종합하면, 여기에는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베르누이의 정리(Bernoulli’s theorem)’가 경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제주대학교 대학원의 한 연구 논문에서는 이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제주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 내용 참고

“이러한 베르누이의 원리를 제주 돌담에 적용한다면, [그림 Ⅳ-19]에서와 같이 돌담의 틈새를 지나는 바람의 경우, 주위의 공기에 비하여 큰 속력으로 돌담 틈새를 지나므로 돌담의 틈새는 주위보다 낮은 압력이 되며, 주위와의 압력차로 인한 힘이 돌담의 틈새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압력차로 인한 틈새 방향으로 향하는 힘은 돌을 누르는 힘으로, 이 힘은 돌의 무게에 의하여 돌들 사이의 접촉면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과 함께 수직항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마찰력을 크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 논문 인용)



논문의 분석처럼, 바람이 좁은 돌 틈을 통과할 때 속도가 빨라지면서 구멍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이때 압력이 높은 바깥쪽 공기가 돌담 중심 방향으로 돌들을 ‘꾸욱 움켜쥐고 누르는 힘’을 발생시킵니다. 이 힘이 돌의 무게(중력)와 결합하여 돌과 돌 사이의 마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제주의 돌담은 바람이 불어도 그 형태가 바람의 저항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구조를 띠고 있어서 담장이 받는 전체적인 저항은 애초에 최소화 됩니다.게다가 울퉁불퉁하고 돌 자체에 미세한 구멍(기공)이 많은 현무암이기에 돌들끼리의 마찰력은 배가되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상태에서 중력과 내력이 동시에 작용하니, 태풍 속에서 돌담은 무너지기는커녕 더욱 단단한 요새로 변신하게 됩니다.

바람이 돌담을 무너뜨리려고 거세게 몰아칠수록, 역설적이게도 유체역학적 압력차에 의해 돌담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결속시킵니다.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여 스스로 구조적 균형을 찾아가는 일종의 ‘유연한 완충 시스템’인 셈입니다.

7. 생명을 살리는 ‘비움’과 ‘소통’의 로컬 정서

인간의 삶과 정서 역시 이 돌담의 과학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과거 척박한 화산섬에서 거친 바다와 태풍을 마주하며 살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유연하게 비켜서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돌담의 구멍은 단순히 바람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울담 너머로 이웃집의 안부를 확인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대화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단단하고 묵직한 돌을 가지고 가장 부드럽고 유연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한 제주 돌담은, 거친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해 낸 로컬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8. 글을 마치며: 꽉 막힌 벽 대신, 마음의 돌담을 쌓을 시간

첫 회 이야기에서 만나본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맨도롱한 온기’, 2회에서는 대지가 품은 ‘다공성의 단열 비밀’, 그리고 오늘은 거센 태풍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돌담의 유체역학’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주가 우리에게 건네는 온기와 과학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일상의 온도를 유지하고, 삶에 들이치는 모진 시련의 바람 앞에서는 온몸으로 맞서 상처받기보다 내 마음속에 작은 ‘구멍’ 하나를 내어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차가운 세상의 벽 앞에 힘겨워하고 있다면, 내 마음의 담장을 시멘트벽처럼 꽉 막아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가만히 돌아보면 어떨까요? 거센 바람의 길을 열어주어 스스로를 지켜내는 제주의 돌담처럼, 조금은 비워두고 조금 더 유연해지는 ‘맨도롱한’ 하루를 보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동안 ‘Jeju Origin’의 시리즈 연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주의 매우 독특한 문화인 ‘정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으로 ‘Jeju Origin’은 더욱 깊이 있고 매혹적인, 가장 제주다운 가치와 원형의 기록을 담은 새로운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Jeju Origin)


■ 참고 문헌 (References)

홍경모, 「과학교육 학습자료로서의 제주 전통 돌담에 대한 연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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