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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 다시 만났을 때 안부 묻기와 헤어지기 인사말

    제주도 초가집과 돌담길에서 따뜻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삼춘 어르신과 여행자의 정겨운 수채화 일러스트

    (그림: ai 생성)


    지난 3회의 글에서 ‘제주어’로 길을 가리켜 줄 때의 말을 배웠습니다.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전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경우와 헤어질 때의 인사말을 준비했습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 문 >
    제주어또시 만낭 반갑수다.
    그동안 잘 지냅디강?
    그동안 어떵 지냇수과?
    또시 왓수가?
    언제 옵디가?
    ᄒᆞᆫ저 옵서.  
    어디레 감수광?
    잘 갑서 양!
    멩심ᄒᆞ영 갑서.
    또시 보게마씸..
    번 역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또 오셨습니까? / 다시 오셨습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 언제 오셨나요?
    어서 오십시오. /빨리 오세요.  
    어디로 가십니까?
    잘 가세요! / 안녕히 가세요!
    조심해서 가십시오. / 명심해서 잘 가세요.
    또 봅시다. / 다시 뵙겠습니다.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 ᄒᆞᆫ저 (혼저, 한저, 헌저)
    ⬛ 멩심ᄒᆞ영 (멩심호영, 멩심하여, 멩심허영)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 ) 안의 표기는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발음 표기를 사용합니다.


    2) 어휘 해설

    또시 만낭 반갑수다. (해석: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 또시: <부사> 또. 거듭.
    ⬛ 만낭: 만나-(‘만나다’의 어간) + -앙. (해석: 만나서, 만나니.)
      ⬥ 만나다: <동사> 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

      ⬥ -앙: <어미> -해서, -하여. 연결어미.

      * (예문) 여기 왕 밥 먹으라. (해석: 여기 와서 밥 먹어라.)
    ⬛ 반갑수다: 반갑-(‘반갑다’의 어간) + -수다. (해석: 반갑습니다.)
      ⬥ 반갑다: <형용사>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서 즐겁고 기쁘다.

      ⬥ -수다: <어미> 상대를 정중하게 높이는 서술형 종결어미 (-습니다, -ㅂ니다).
      * (예문) 날씨가 참 곱수다. (해석: 날씨가 참 곱습니다/예쁩니다.)


    그동안 잘 지냅디강?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그동안: <명사> 지나간 얼마 동안의 때나 시간.
    ⬛ 잘: <부사> 아무 탈 없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 지냅디강: 지내-(‘지내다’의 어간) + -ㅂ디강. (해석: 지내셨습니까? 지내셨던가요?)
      ⬥ 지내다: <동사> 일정한 시간이나 세월을 보내다.

      ⬥ -ㅂ디강: <어미> -셨던가요? -셨습니까? 말하는 이가 과거의 사실이나 상대의 안부를 정중하게 되물어볼 때 쓰는 의문형 종결어미.
      * 어간에 받침이 없거나 ‘ㄹ’ 받침일 때는 ‘-ㅂ디강’, 자음 받침이 있을 때는 ‘-습디강, -읍디강’이 붙음.

      * (예문) 밥은 잘 먹읍디강? (해석: 밥은 잘 드셨습니까?)

    그동안 어떵 지냇수과? (해석: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그동안: <명사> 지나간 얼마 동안의 때나 시간.

    ⬛ 어떵: <부사> 어떻게. 모양, 형편, 상태 등이 어떠하게.
    ⬛ 지냇수과: 지내-(‘지내다’의 어간) + -았-/-엇-(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 + -수과(의문형 종결 어미). (해석: 지내셨습니까?)
      ⬥ 지내다: <동사> 일정한 시간이나 세월을 보내다.

      ⬥ -았-, -엇-: <어미> 지난 일이나 과거 상태를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

      * ‘지내-‘ 뒤에 과거 시제가 결합하여 ‘지냇-‘ 형태가 됨.
      ⬥ -수과: <어미> -습니까? -ㅂ니까? 상대를 정중하게 높여 물어볼 때 쓰는 의문형 종결어미.

      * 서술형 어미 ‘-수다’와 짝을 이루는 의문형 짝궁 어미. (설명형·판정 의문 모두 사용.)

      * (예문) 어디 감수과? (해석: 어디 가십니까?)


    또시 왓수가? (해석: 또 오셨습니까? 다시 오셨습니까?)

    ⬛ 또시: <부사> 또. 다시. 거듭.

    ⬛ 왓수가: 오-(‘오다’의 어간) + -앗-(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 + -수가(의문형 종결 어미). (해석: 오셨습니까?)
      ⬥ 오다: <동사> 말하는 이가 있는 쪽으로 위치를 옮기다.

      ⬥ -앗-: <어미> 동작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과거임을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

      * ‘오-‘ + ‘-앗-‘이 결합하여 ‘왓-‘으로 축약됨.
      ⬥ -수가: <어미> -ㅂ니까? -습니까? ‘예/아니오’의 대답을 구하는 판정 의문문에서 상대를 높여 물어보는 의문형 종결 어미.

      * 어간 받침 유무에 따라 ‘-수가, -우가, -수과’ 등의 형태로 쓰임.
      * (예문) 밥은 먹엇수가? (해석: 밥은 먹었습니까?)


    언제 옵디가? (해석: 언제 오셨습니까? 언제 오셨나요?)

    ⬛ 언제: <명사/부사> 지나간 때를 묻는 의문사.
    ⬛ 옵디가: 오-(‘오다’의 어간) + -ㅂ디가(의문형 종결 어미). (해석: 오셨습니까? 오셨나요?)
      ⬥ 오다: <동사> 말하는 이가 있는 곳으로 이르다.

      ⬥ -ㅂ디가: <어미> -셨습니까?, -셨나요? 이미 완료된 상대방의 과거 행동이나 사실을 정중하게 물어보는 상대 높임 의문형 종결어미.
      * 모음 어간 뒤에서는 ‘-ㅂ디가’, 자음 받침 뒤에서는 ‘-습디가, -읍디가’가 결합함.

      * 끝소리를 비음화하여 ‘-ㅂ디강’으로 쓰기도 함.
      * (예문) 밥은 먹읍디가? (해석: 밥은 드셨습니까?)

      * (예문) 밥은 먹읍디강? (해석: 밥은 드셨습니까?)


    ᄒᆞᆫ저 옵서. (해석: 어서 오십시오. 빨리 오세요.)

    ⬛ ᄒᆞᆫ저: <부사> 어서, 빨리.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 아래아(ㆍ) 음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중세 고어형 부사 어휘.

    ⬛ 옵서: 오-(‘오다’의 어간) + -ㅂ서(명령·권유형 종결 어미). (해석: 오십시오, 오세요.)
      ⬥ 오다: <동사> 말하는 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이르다.

      ⬥ -ㅂ서: <어미> -십시오, -세요. 상대를 정중하게 대우하면서 어떤 행동을 정중히 요청하거나 권유할 때 쓰는 명령·청유형 종결어미.
      * 모음 어간 뒤에서는 ‘-ㅂ서’, 자음 받침 뒤에서는 ‘-으십서, -읍서’가 결합함.

      * (예문) ᄒᆞᆫ저 먹읍서. (해석: 어서 드십시오.)


    어디레 감수광? (해석: 어디로 가십니까?)

    ⬛ 어디레: 어디 + 레. (해석: 어디로, 어느 쪽으로.)
      ⬥ 어디: <대명사> 알지 못하는 장소나 방향을 가리키는 의문 대명사.

      ⬥ 레: <향진격조사> -로, -으로, -에게로. 움직이는 방향이나 목적지를 나타내는 제주어 고유의 부사격 조사.
      * 모음 뒤에서는 ‘레’, 받침 있는 체언 뒤에서는 ‘더레’, ‘데레’, ‘드레’, ‘듸레’ 형태로도 쓰임.

      * (예문) 집더레 가자. (해석: 집으로 가자.)

      * (예문) 밭더레 강 일ᄒᆞ자. (해석: 밭으로 가서 일하자.)

    ⬛ 감수광: 가-(‘가다’의 어간) + -ㅁ-(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 + -우광(의문형 종결 어미). (해석: 가십니까?)
      ⬥ 가다: <동사>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나아가다.

      ⬥ -ㅁ-: <어미> -ㄴ-, -는-. 현재 진행 중인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
      ⬥ -우광: <어미> -십니까? 상대를 정중하게 높여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설명 의문형 종결어미. (= -우까, -우가, -우과, -우강.)

      * ‘-우과’에 콧소리(비음 ‘ㅇ’)가 더해져 한층 더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제주어 존칭 어미.
      * (예문) 무사 울멍 감수광? (해석: 왜 울면서 가십니까?)


    잘 갑서 양! (해석: 잘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 잘: <부사> 잘, 안녕히, 아무 탈 없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 갑서: 가-(‘가다’의 어간) + -ㅂ서(명령·권유형 종결 어미). (해석: 가십시오, 가세요.)
      ⬥ 가다: <동사>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떠나가다.

      ⬥ -ㅂ서: <어미> -십시오, -세요. 상대를 정중하게 대우하면서 어떤 행동을 권유하거나 배웅할 때 쓰는 존칭 명령형 종결어미.
      * 모음 어간 뒤에는 ‘-ㅂ서’, 자음 받침 어간 뒤에는 ‘-읍서, -으십서’가 결합함.

      * (예문) 똑바로 걸읍서. (해석: 똑바로 걸으십시오.)
    ⬛ 양: <감탄사> 예. 존대할 자리에 재차 묻는 말. (= 야.)
      ⬥ 어미 뒤에 덧붙어 문장의 억양을 부드럽게 만들고 다정한 마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함.

      * (예문) 고맙수다 양. (해석: 고맙습니다.)


    멩심ᄒᆞ영 갑서. (해석: 조심해서 가십시오. 명심해서 잘 가세요.)

    ⬛ 멩심ᄒᆞ영: 멩심ᄒᆞ-(‘멩심ᄒᆞ다’의 어간) + -영(연결 어미). (해석: 명심해서, 조심해서)
      ⬥ 멩심ᄒᆞ다: <동사> 명심하다. 잊지 않도록 마음에 깊이 새기거나 주의하여 조심하다.

      ⬥ -영: <어미> -고서, -해서, -하여. 이유나 앞선 행동을 이어주는 연결어미.
      * (예문) 경 ᄒᆞ영 되커냐? (해석: 그렇게 해서 되겠냐?)

      * 제주어에서는 ‘ᄒᆞ다’ 동사 뒤에 연결 어미가 결합할 때 ‘ᄒᆞ여, 해서’ 대신 ‘-영'(‘해영’) 형태로 자주 쓰임.

      * (예문) 멩심ᄒᆞ영 들으라. (해석: 주의해서/명심해서 들어라.)
    ⬛ 갑서: 가-(‘가다’의 어간) + -ㅂ서(명령·권유형 종결 어미). (해석: 가십시오, 가세요.)

      ⬥ 가다: <동사> 가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떠나가다.

      ⬥ -ㅂ서: <어미> -십시오, -세요. 상대를 정중하게 대우하면서 어떤 행동을 권유하거나 배웅할 때 쓰는 존칭 명령형 종결어미.
      * 모음 어간 뒤에는 ‘-ㅂ서’, 자음 받침 어간 뒤에는 ‘-읍서, -으십서’가 결합함.

      * (예문) 놀멍 갑서. (해석: 천천히 가십시오.)

      * (예문) ᄒᆞᆫ저 돌읍서. (해석: 빨리 달리십시오.)


    또시 보게마씸. (해석: 또 봅시다. 다시 뵙겠습니다.)

    ⬛ 또시: <부사> 또. 다시. 거듭.
    ⬛ 보게마씸: 보-(‘보다’의 어간) + -게 + -마씸. (해석: 뵙겠습니다, 봅시다)
      ⬥ 보다: <동사> 눈으로 대상을 마주하여 만나다.

      ⬥ -게: <어미> -ㄹ게, -자.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나 친구에게 함께 하기를 권하는 종결어미. 말하는 이의 다짐, 약속, 의지를 나타내는 어미.
      ⬥ -마씸: <어미/보조사> -습니다, -ㅂ니다, -요. <첨사> 서술어미 뒤에 덧붙여 존대를 나타내는 첨사. (= 마씀, 마슴, 마시, 마심, 마씨).
      * ‘보게’라는 약속·청유형 표현 뒤에 존대어 첨사인 ‘-마씸’이 붙어 “다시 봅시다, 또 뵙겠습니다”라는 따뜻하고 정중한 작별 인사를 완성함.
      * (예문) 낼 또시 보게마씸. (해석: 내일 또 뵙겠습니다.)

      * (예문) 우리 ᄀᆞ치 밥 먹게마씸. (해석: 우리 같이 밥 먹읍시다.)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제주 사람들의 인사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아니라, 거친 비바람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삼춘들의 따뜻한 배려와 정이 담긴 마음의 표현입니다.

    “또시 만낭 반갑수다” 하고 건네는 반가운 미소부터, 떠나는 이의 뒷모습에 “멩심ᄒᆞ영 갑서”, “또시 보게마씸” 하며 손을 흔들어 주는 배웅의 말까지, 제주어 인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중세 국어의 옛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제주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삼춘들에게 다정하게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도 안녕히 잘 보내십서 양!”


    계속하여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와 함께 제주어를 익혀 보시면 이런 추억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① 제주의 전통 문화를 찾아서 찐 토박이의 시선으로 풀어 보는 [제주 이야기]
    ② [찐 토박이의 제주어]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우리말 샘(우리말 사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제3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 길을 가리켜 줄 때

    제주도 시골 돌담 올레길에서 밀짚모자를 쓴 토박이 어르신이 배낭을 멘 여행자에게 오름과 언덕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제주어로 길을 안내해 주는 일러스트

    (그림: ai 생성)


    지난 2회의 글에서는 ‘제주어’로 길을 물어 보는 말을 배웠습니다.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올레길을 걷다가 만난 어르신이 길을 가리켜 주는 때의 말을 준비했습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 문 >
    제주어 
    <길을 가리켜 줄 때>

    이 질 ᄄᆞ랑 구짝 감시민 웬착에 보여마씸.

    고짝 앞더레 가당근에.
    처엄 보이는 시커리서 오른착더레 갑서.

    저착에 보이는 엉덕 넘엉
    ᄒᆞ쏠만 더 감시민 웬착에 잇수다.
     
    저 앞의 보이는 오름 앞의서는
    바로 웬짝에 바레여질 거우다.
    번 역<길을 가리켜 줄 때>
     
    이 길 따라서 곧장 가시면 왼쪽에 보입니다.

    곧장 앞으로 가다가,
    처음 보이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십시오.

    저쪽에 보이는 언덕을 넘어서,
    조금만 더 가시면 왼쪽에 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오름 앞에서는
    바로 왼쪽에 보일 겁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 ᄄᆞ랑 (또랑, 따랑, 떠랑)
    ⬛ ᄒᆞ쏠 (호쏠, 하쏠, 허쏠)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 ) 안의 표기는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발음 표기를 사용합니다.


    2) 어휘 해설

    이 질 ᄄᆞ랑 구짝 감시민 웬착에 보여마씸.

    ⬛ 이: <대명사> 이. 말하는 이에게 가까이 있거나 말하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 질: <명사> 길. (= 질레.)

    ⬛ ᄄᆞ랑: ᄄᆞ르다 + -랑. (해석: 따라서.)
      ⬥ ᄄᆞ르다: <동사> 따르다. (= ᄄᆞᆯ로다. ᄄᆞᆯ르다.)
      ⬥ -랑: <어미> -라서. ‘르다ㆍ오르다’ 등 제1음절이 양성모음으로 된 ‘르변칙’ 용언 어간에 붙어서, 뒤에 하는 동작의 까닭이나 전제가 됨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구짝: <부사>① 곧장. 옆으로 빠지지 않고. ② 곧게. 굽거나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르게. 곧바로. (= 고짝, 곧작, 과짝, 구짱, 굳작.)
    ⬛ 감시민: 가다 + -암시민. (해석: 가고 있으면.)
      ⬥ 가다: <동사> 가다.
      ⬥ -암시민: <어미> -고 있으면. 양성모음의 용언 어간에 붙어서, 동작을 가정하여 나타내는 연결어미.
    ⬛ 웬착에: 웬착 + 에. (해석: 왼쪽에.)

      ⬥ 웬착: <명사> 왼쪽 (=웬짝, 웬쪽.)
      ⬥ 참고: <부사> 왼편.
      ⬥ 에: <조사>에. 고정된 공간적 처소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격조사.
    ⬛ 보여마씸: 보이다 + -여 + 마씸. (해석: 보입니다.)

      ⬥ 보이다: <동사> 보이다.

      ⬥ -여: <어미> -다. 받침 없는 체언이나 형용사 ‘아니다’의 어간에 연결되어서, 그 사실을 단정하여 나타내는 종결어미.

      ⬥ 마씸: <첨사> 서술어미 뒤에 덧붙여 존대를 나타내는 첨사. (= 마씀, 마슴, 마시, 마심, 마씨).

    고짝 앞더레 가당근에.

    ⬛ 고짝: <부사> ① 곧장. 옆으로 빠지지 않고. ② 곧게. 굽거나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르게. 곧바로. (= 구짝, 곧작, 과짝, 구짱, 굳작.)
    ⬛ 앞더레: 앞 + 더레. (해석: 앞으로.)
      ⬥ 앞: <명사> 앞. (※ 고어: 앒.)

      ⬥ -더레: <조사> 으로. 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서, 행동이 향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격조사.
      * (예문) 그 곳더레 가민 사름 잇수다. (해석: 그 곳으로 가면 사람이 있습니다.)
    ⬛ 가당근에: 가다 + -당 + -ㅇ근에. (해석: 가다가, 가서는.)
      ⬥ 가다: <동사> 가다.
      ⬥ -당: <어미> -다가. 앞의 동작이 다음 동작으로 옮겨짐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ㅇ근에: <어미> -어서, -아서. 둘 이상의 동작을 순차적으로 연결하여 앞선 동작 후 다음 동작을 행함을 나타내는 연결어미. (= -그네.)


    처엄 보이는 시커리서 오른착더레 갑서.

    ⬛ 처엄: <명사, 부사> 처음. (= 처음, 체얌, 초담.) (※ 고어: 처ᅀᅥᆷ.)

      * (예문) 처엄엔 무지 어려워마씸. (해석: 처음엔 무척 어렵습니다.)
    ⬛ 시커리서: 시커리 + 서. (해석: 세거리에서, 삼거리에서)

      ⬥ 시커리: <명사> 세거리, 삼거리. (= 시커림, 세커림,)

      ※ (참고) 시커리질: <명사> 세거리길, 삼거리길

      ⬥ 서: <조사>에서. ① 받침 없는 체언에 붙어서, 사물이 움직이고 있는 곳을 나타내는 처소격 조사. ② 받침 없는 명사나 대명사에 붙어서 움직임의 출발점을 나타내는 유래격 조사.

    ⬛ 오른착더레: 오른착 + -더레. (해석: 오른쪽으로.)
      ⬥ 오른착: <명사> 오른쪽. (= 오른짝, 오른쪽, 오른펜, ᄂᆞ단착, ᄂᆞ단짝, ᄂᆞ단쪽, ᄂᆞ단펜.)
      ※ (참고) 오른착손 (뜻: 오른쪽손), 웬착팔 (뜻: 왼쪽팔).

      ⬥ -더레: <조사> 으로. 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서, 행동이 향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격조사.
    ⬛ 갑서: 가다 + -ㅂ서.
      ⬥ 가다: <동사> 가다.
      ⬥ -ㅂ서: <어미> -ㅂ쇼. ‘합쇼’ 할 자리에서 모음으로 끝난 동사 어간이나 일부 어미 뒤에 붙어, 그 행동하기를 바라는 대자존대(對者尊待)의 명령법 어미.

      * (예문) 그 일은 이렇게 처리합서. ➔ 해석: 그 일은 이렇게 처리하십시오.


    저착에 보이는 엉덕 넘엉

    ⬛ 저착에: 저 + 착 + 에. (해석: 저쪽에.)

      ⬥ 저: <대명사> 저. 말하는 이와 듣는 이로부터 멀리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 착: <명사> 쪽. 방향을 가리키는 말. (= 쪽, 펜.)
      * (예문) 이착은 웬착 저착은 오른착. ➔ 해석: 이쪽은 왼쪽, 저쪽은 오른쪽.

      ⬥ 에: <조사>에. 고정된 공간적 처소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격조사.
    ⬛ 엉덕: <명사> 언덕.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문장에서는 ‘언덕을’에서 <조사> ‘을’이 생략된 형태임)
    ⬛ 넘엉: 넘다 + -엉. (해석: 넘어서.)

      ⬥ 넘다: <동사> 낮은 데서 공간이나 물건의 위를 지나 다른 낮은 데로 가다.

      ⬥ -엉: <어미> -어서. 두 동작을 말할 때, 앞에 나오는 음성모음의 용언 어간에 붙어서, 나중의 동작의 근거ㆍ이유ㆍ원인이나 시간적 선후 관계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ᄒᆞ쏠만 더 감시민 웬착에 잇수다.

    ⬛ ᄒᆞ쏠만: <부사> 아주 조금만 (= ᄒᆞ꼼만)
    ⬛ 더: <부사> 더. 계속하여. 또는 그 위에 보태어.

    ⬛ 감시민: 가다 + -암시민. (해석: 가고 있으면.) (앞의 설명 참조.)

    ⬛ 웬착에: 웬착 + 에. (해석: 왼쪽에.)
    ⬛ 잇수다: 잇다 + -우다. (해석: 있습니다.)

      ⬥ 잇다: <형용사> 있다. 사람, 동물, 물체 따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 싯다.)

      ⬥ -우다: <어미> -ㅂ니다. 받침 없는 체언이나 형용사 ‘아니다’의 어간에 붙어서, ‘합쇼’ 할 자리에서 ‘-ㅂ니다’의 뜻으로 쓰이는 종결어미. (정중하게 높여서 말할 때 쓰는 존대어.)
      * (예문) 그림이우다 = 그림이다 + -우다 (뜻: 그림입니다.)
      * (예문) 만났수다 = 만나다 + -아ㅅ- + -우다 (뜻: 만났습니다.)


    저 앞의 보이는 오름 앞의서는

    ⬛ 저: <대명사> 저. 말하는 이와 듣는 이로부터 멀리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 앞의: 앞 + 의. (해석: 앞에.)
      ⬥ 앞: <명사> 앞. (※ 고어: 앒.)
      ⬥ 의: <조사> 에. ‘집ㆍ바당ㆍ앞ㆍ옆ㆍ밤ㆍ낮’ 등의 명사에 붙는 처소격 조사.

      * (예문) 저 집의 불 낫저.  해석: 저 집에 불이 났다.
    ⬛ 오름: <명사> 한 번의 분화(噴火) 활동으로 봉긋봉긋 솟아오른 화산. (= 오롬.)

    ⬛ 앞의서는: 앞 + 의서는. (해석: 앞에서는.)

      ⬥ 의서는: <조사> 에서는. 처소격 ‘에서’에, 사물을 제시하여 지정하는 ‘는’이 결합된 격조사 ‘에서는’의 변이형태로, ‘집ㆍ바당ㆍ낮ㆍ밤’ 등 명사에 연결되어 쓰이는 격조사.


    바로 웬짝에 바레여질 거우다.

    ⬛ 바로: <부사> 바로. 공간이나 거리의 틈이 없이 아주 가까이 잇대어 있음을 나타내거나, 다름 아닌 특정 방향·위치를 강조하는 말.

    ⬛ 웬짝에: 웬짝 + 에. (해석: 왼쪽에.)

    ⬛ 바레여질 거우다: 바레여보다 + -어지다 + -ㄹ 거우다. (해석: 보일 겁니다.)
      ⬥ 바레여보다: <동사> 바라보다. (= 바레보다.)
      ⬥ -어지다: <보조동사> 동사 뒤에 붙어 피동(바라보이다/보이다)의 뜻을 나타내는 말.

      ⬥ -ㄹ 거우다: <어미> -ㄹ 겁니다. 용언 어간에 연결되는 화자의 추측이나 상대방의 의도를 나타내는 종결어미.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예문, 어떠셨나요?

    오늘은 제주의 올레길을 걷다가 만난 어르신이 길을 가리켜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제주에 오신다면, 제주의 올레길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정겨운 제주 풍경을 천천히 즐기며 걷다가 만난 사람이 제주어로 가리켜 주는 길 안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계속하여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와 함께 제주어를 익혀 보시면 이런 추억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① 제주의 전통 문화를 찾아서 찐 토박이의 시선으로 풀어 보는 [제주 이야기]
    ② [찐 토박이의 제주어]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우리말 샘(우리말 사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제2회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 길을 물어볼 때에

    제주도 해안 돌담이 있는 올레길에서 현지 어르신이 여행자에게 손을 뻗어 길을 가리켜 주는 모습

    (그림: ai 생성)


    지난 1회의 글에서 배운 ‘제주어’ 인사말 어떠셨나요? 표준어와는 너무나 달라서 외국어보다 어렵진 않았나요?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가 전하는 오늘의 제주어는 바닷가 올레길을 걷다가 만난 이에게 길을 물어보는 때의 말을 준비했습니다.


    1. 오늘의 제주어: 예문과 표준어 번역

    < 예 문 >
    제주어 <길을 가다가 물어볼 때에>

    양! 삼춘!

    ᄒᆞ꼼 여쭈어보쿠다
    ᄒᆞᆫ곡지 여쭤보쿠다.
    뭐 ᄒᆞ꼼 물어보쿠다.  

    뭐 ᄒᆞ꼼 여쭤봐도 되쿠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되쿠강?
    ᄒᆞ꼼 여쭤봐도 되카마씸?
    ᄒᆞᆫ곡지 물어봐도 되카마씸?  

    질 좀 ᄀᆞᆯ아 줍서.
    질 좀 ᄀᆞ리쳐 줍서.

    <대답에 감사 인사드릴 때>  
    고맙수다.
    하영 고맙수다.
    무지 감사하우다.
    번 역<길을 가다가 물어볼 때에>

    저기요! 삼촌(할머니/아주머니)!

    조금 여쭈어보겠습니다.
    한마디 여쭈어보겠습니다.
    뭐 조금 물어보겠습니다.  

    뭐 조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조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한마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길 좀 말해 주십시오.
    길 좀 가리켜 주십시오.  

    <대답에 감사 인사드릴 때>

    고맙습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무척 감사합니다.


    2. 주요 어휘 및 사용법 설명


    1) 주요 어휘의 발음

    ᄒᆞ꼼 (호꼼, 하꼼, 허꼼)
    ᄒᆞᆫ곡지 (혼곡지, 한곡지)
    ᄀᆞᆯ아 (골아)
    ᄀᆞ리쳐 (고리쳐, 가리쳐, 거리쳐)

    ※ 안내: 박스 안의 어휘는 제주어 옛한글 원형입니다. ( ) 안의 표기는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발음 표기를 사용합니다.


    2) 어휘 해설

    <양! 삼춘!>
    (해석: 저기요/여보세요! 할머니/아주머니!)

    ⬛ 양: <감탄사> 예. 존대할 자리에 재차 묻는 말.

      ⬥ 어른이 아이를 부르거나 같은 또래끼리 서로 부를 때의 ‘야’에 해당하는 존대말.  

      ⬥ 참고: 문장에서는 ‘저기요’, ‘여보세요’, ‘잠깐만요’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

      * 예문: 양~!, ᄒᆞ꼼만 기다려 줍서. ➔ 해석: 저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삼춘: 삼촌 (해석: 이 문장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처음 만나서 존대를 하는 뜻으로 쓰임)
      ⬥ 삼춘: <명사> 삼촌. 부모의 형제. (참고: 제주에서는 자기의 부모 또래의 어른들에게 ‘삼춘’ 또는 ‘삼촌’이라고 다정한 의미로 부름).

    <ᄒᆞ꼼 여쭈어보쿠다>
    (해석: 조금만 여쭈어보겠습니다)

    ⬛ ᄒᆞ꼼:<부사> 아주 자그만큼. (= ᄒᆞᄊᆞᆯ)
      ⬥ ᄒᆞ꼼만: <부사> 아주 조금만 (= ᄒᆞ쏠)

      ⬥ ᄒᆞ꼼썩: <부사> 아주 조금씩 (= ᄒᆞ꼼식, ᄒᆞᄊᆞᆯ썩, ᄒᆞᄊᆞᆯ씩)
      ⬥ ᄒᆞ꼼ᄒᆞ민: <부사> ① 그저 약간하면, ② 무슨 일이 조금만 있으면. (=ᄒᆞᄊᆞᆯᄒᆞ민)
      ⬥ ᄒᆞ끌락ᄒᆞ다: <형용사> 아주 작다.

    ⬛ 여쭈어보쿠다: 여쭈어보다 + -쿠다. ➔ 해석: 여쭈어보겠다 (‘물어보겠다’의 높임말.)

      ⬥ -쿠다: <어미> -겠습니다. 용언 어간이나 또는 어간에 연결되어서, ‘합쇼’ 할 자리에서 화자의 의도ㆍ추측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 예문: 학교에 가쿠다. ➔ 해석: 학교에 가겠습니다.

     

    <ᄒᆞᆫ곡지 여쭈어보쿠다.>
    (해석: 한마디 여쭈어보겠습니다.)

    ⬛ ᄒᆞᆫ곡지: <명사> 말(言) 등의 한마디.

    <뭐 ᄒᆞ꼼 물어보쿠다> (뭐 좀 물어보겠습니다)

    ⬛ 뭐: <대명사> ‘무어’의 준말.

    ⬛ ᄒᆞ꼼:<부사>아주 자그만큼. (= ᄒᆞᄊᆞᆯ) (※ 앞의 설명 참조) 

    ⬛ 물어보쿠다: 물어보다 + -쿠다. (해석: 물어보겠습니다)

    <뭐 ᄒᆞ꼼 여쭤봐도 되쿠가?>
    (해석: 뭐 조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되쿠강?>
    (해석: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뭐: <대명사> ‘무어’의 준말.

    ⬛ ᄒᆞ꼼:<부사>아주 자그만큼. (= ᄒᆞᄊᆞᆯ) (※ 앞의 설명 참조)
    ⬛ 여쭤봐도: 여쭈어보아도. (‘물어보아도’의 존대말)

    ⬛ 되쿠가?: 되(다) + -쿠가. (해석: 되겠습니까?)

      ⬥ -쿠가: <어미> -겠습니까. ‘합쇼’ 할 자리에서 용언 어간이나 일부 어미 뒤에 붙어, 상대방의 의도나 추측을 묻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 -쿠강, -쿠과.)
    ⬛ 하나: 한가지. 한마디
    ⬛ 물어봐도: 물어보아도.

    ⬛ 되쿠강?: = 되쿠가? = 되쿠과?


    <ᄒᆞ꼼 여쭤봐도 되카마씸?>
    (해석: 조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ᄒᆞᆫ곡지 물어봐도 되카마씸?>
    (해석: 한마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되카마씸: ① 되다 + -카 + -마씸 ② 되다 + -카마씸 (해석: 되겠습니까?, 될까요?)
      ⬥ 되다: <동사>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가능하게 되다. 또는 허용되다.
      ⬥ -카: <어미> -ㄹ까. 받침 없는 용언 어간이나 어미 뒤에 붙어서, ‘하게’ 할 자리에서 상대방의 의도나 추측을 묻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어간이나 어미에 연결되기에 따라서 ① 미래·추측·의문, ②진행. ③완료, ④의도 등을 나타냄.
      ⬥ -카마씸: <어미> 받침 없는 용언 어간에 붙어서, ‘합쇼’ 할 자리에서 그 의도ㆍ추측을 묻는 뜻을 나타내는 어미.
      * 예문: 우리 좀 쉬카마씸? ➔ 해석: 우리 좀 쉴까요?
      ⬥ 마씸: <접미사> 서술어미 뒤에 덧붙여 존대를 나타내는 첨사. (= 마씀, 마슴, 마시, 마심, 마씨)


    <질 좀 ᄀᆞᆯ아 줍서>
    (해석: 길 좀 말해 주십시오)

    <질 좀 ᄀᆞ리쳐 줍서>
    (해석: 길 좀 가리켜 주십시오)

    ⬛ 질: <명사> 길(路). (=질레)
      * 예문: 질이(= 질레가) 좁구나. ➔ 해석: 길이 좁구나.
    ⬛ ᄀᆞᆯ아 줍서: ᄀᆞᆯ아 주다 + -ㅂ서 (해석: 말해주십시오)

      ⬥ ᄀᆞᆯ아 주다: 말해 주다.

      ⬥ ᄀᆞᆯ다: <동사> 말하다. (= ᄀᆞᆮ다)

      * 예문: 아멩 ᄀᆞᆯ아줘도 ᄒᆞᆷ치 모를 거여. ➔ 해석: 아무리 말해줘도 전혀 모를 거야.
      * 예문: ᄀᆞᆮ단 보난 내가 지첨쩌. ➔ 해석: 말하다 보니 내가 지치네.

      ⬥ -ㅂ서: <어미> -ㅂ쇼. ‘합쇼’ 할 자리에서 모음으로 끝난 동사 어간이나 일부 어미 뒤에 붙어, 그 행동하기를 바라는 대자존대(對者尊待)의 명령법 어미.

      * 예문: 그 일은 이렇게 처리합서. ➔ 해석: 그 일은 이렇게 처리하십시오.
    ⬛ ᄀᆞ리쳐 줍서: ᄀᆞ리치다 + -어 + 주다 + -ㅂ서. (ᄀᆞ리쳐주다 + -ㅂ서)
    ⬛ ᄀᆞ리치다: <동사> 가리키다.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집어서 보이거나 말하거나 알리다.


    <고맙수다>
    (해석: 고맙습니다)

    ⬛ 고맙수다: 고맙(다) + -아ㅅ- + -우다 (뜻: 고맙습니다.)
      ⬥ 고맙다: <형용사> 고맙다.

      ⬥ -아ㅅ-: <선어말> -아 있-. 양성모음의 용언 어간에 붙어서, 그 ‘동작이 끝나 있음’ 또는 그 ‘상태가 되어 있음’이란 뜻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 -아시-)

      ⬥ -우다: <어미> -ㅂ니다. 받침 없는 체언이나 형용사 ‘아니다’의 어간에 붙어서, ‘합쇼’ 할 자리에서 ‘-ㅂ니다’의 뜻으로 쓰이는 종결어미. (정중하게 높여서 말할 때 쓰는 존대어.)
      * 예: 그림이우다 = 그림이다 + -우다 (뜻: 그림입니다.)
      * 예: 만났수다 = 만나다 + -아ㅅ- + -우다 (뜻: 만났습니다.)


    <하영 고맙수다>
    (해석: 많이 고맙습니다)

    <무지 감사하우다>
    해석: (무척 감사합니다)

    ⬛ 하영: <부사> 많이(多). (= 만히)
      * 예문: 밥 하영 먹으라. ➔ 해석: 밥 많이 먹어라.
      * 참고: ‘하영’의 반대말은 ‘ᄒᆞ꼼, ᄒᆞ쏠‘

    ⬛ 무지: <부사> 보통보다 훨씬 정도에 지나치게.

    ⬛ 감사하우다: 감사하다 + -우다. (해석: 감사합니다.)


    3. 마무리: 토박이의 한마디

    오늘 소개해 드린 제주어 예문, 어떠셨나요?

    오늘은 제주의 올레길을 걷다가 만난 ‘삼춘’에게 길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제주에 오신다면, 제주의 올레길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정겨운 제주 풍경을 천천히 즐기며 걷다가 만난 사람에게 오늘 배운 제주어 한마디로 길을 묻는 것은 어떨까요?

    계속하여 [찐 토박이의 제주어 배우기]와 함께 제주어를 익혀 보시면 이런 추억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① 제주의 전통 문화를 찾아서 찐 토박이의 시선으로 풀어 보는 [제주 이야기]
    ② [찐 토박이의 제주어]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개정 증보 제주어사전』 (제주특별자치도, 2009)
    * 『제주어대사전 제주어왓 (시험 운영 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 『우리말 샘(우리말 사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네이버 국어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제4회> 닫혀 있으나 신뢰로 열리는 문, 제주의 지혜 ‘정낭’

    제주 초가집 입구 돌담 사이에 세 개의 나무 막대(정낭)가 가로로 모두 끼워져 출타 중임을 알리는 제주의 전통 정낭과 정주석 풍경

    (ai 이미지 생성)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3회에서는 거친 태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바람과 상생하는 <제주 돌담의 물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람의 길을 막지 않고 통과시키는 돌담의 유연함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지요.

    그 부드러운 곡선의 돌담은 각자의 집 앞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오늘은 그 돌담이 끝나는 곳, 마을 길에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의 집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제주의 전통 대문인 ‘정낭’, 그리고 대문으로 들어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주의 진짜 ‘올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조부모님 댁 입구에 들어설 때면, 거칠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사이에 정겹게 걸쳐놓은 길다란 나무 장대를 늘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정낭에는 단순히 집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과학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1. ‘올레’의 원래 의미와 현재 알려진 ‘올레길’의 차이

    ‘정낭’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정낭과 처음 마주치는 공간인 ‘올레’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올레길 걷기’ 열풍으로 널리 알려져 사용 중인 ‘올레길’의 의미는 제주 전통의 ‘올레’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1) 전통적 의미의 올레

    ‘올레’는 ‘큰길이나 마을 길에서 집 마당까지 이어지는 돌담으로 둘러쌓인 좁은 골목길’을 뜻합니다.

    제주 초가집은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큰길에서 마당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돌담을 디귿(⊏)자나 곡선 형태로 길게 쌓아 입구를 만들었는데, 이 공간을 ‘올레’라고 불렀습니다.

    2) 올레의 과학

    이 올레에는 제주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올레는 넓고 크게 만들기보다 일부러 좁게 하거나 구부러지는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의 강한 바람이 큰길에서 집안으로 곧장 불어닥칠 때, 좁고 굽어진 돌담 골목인 올레를 통과하면서 바람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즉, 거센 바람이나 태풍으로부터 안마당과 초가집을 보호하는 ‘천연 바람 완충 지대’였던 셈입니다. 이 올레가 끝나는 지점, 즉 집 마당의 진짜 입구에서 우리는 제주의 대문인 ‘정낭’을 마주하게 됩니다.

    3) 의미가 확장된 요즘의 ‘올레길’

    지금 우리가 흔히 걷는 도보 여행 코스인 ‘제주 올레길’은 옛날부터 내려온 지명이 아니라, 2007년 (사)제주올레에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도보 여행 코스를 개발하면서 붙인 ‘현대적인 브랜드 이름’입니다.

    “제주의 집 앞 골목을 뜻하는 ‘올레’처럼, 여행자들이 도보 여행을 통해 제주의 깊숙한 속살과 문화를 조용히 만나고 가라”는 의미를 담아 트레킹 코스를 ‘올레길’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이 브랜드가 전 국민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치다 보니, 어느새 전국적으로 ‘길게 걷는 산책로나 등산로’ 전체를 뜻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입니다. 제주올레라는 말에는 ‘제주에 올래?’라는 초대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4) 아쉬움과 새로운 희망

    제주 토박이로서 전통적 의미의 올레가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가는 현실에 아쉬움이 짙게 남습니다. 하지만 순기능이 크게 있기에 아쉬운 한 켠을 메꿀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깁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현재 제주의 올레길 정비, 해안 청소, 올래길과 접한 마을 주민들과의 상생을 위한 아이템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제주 관광의 주요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제주올레가 제주를 넘어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제주 올레를 해외로 확장해 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2. 정낭과 정주석, 바람의 섬이 만들어낸 과학적 구조와 아날로그 신호

    육지의 전통 가옥을 보면 나무로 짠 튼튼하고 빽빽한 대문이 집안을 꽉 막고 있지만, 제주의 시골집 입구에는 사방이 막힌 대문이 없었습니다. 대신 집 입구 양쪽에 구멍이 세 개씩 뚫린 커다란 돌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긴 나무 장대를 가로로 걸쳐두었습니다.

    이때 구멍 뚫린 돌기둥이나 나무기둥을 ‘정주석’ 또는 ‘정주목’이라 부르고, 그 사이의 나무 장대를 ‘정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주목 없이 돌담 자체를 지지대 삼아 정낭을 얹거나 구멍에 끼워 사용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1) 정낭의 역할

    정낭’은 제주 전통가옥의 정식 대문입니다.

    단순히 기다란 장대 하나에 불과하지만, 정낭은 실제적인 대문과 울타리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과거 중산간 지역에서는 소나 말을 방목하여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을길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가축들이 집 마당 안으로 불쑥 들어와 텃밭의 농작물을 망치거나 초가집을 훼손하는 것을 이 정낭이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습니다.

    2) 제주에 대문이 없었던 이유

    제주에는 왜 육지처럼 번듯한 대문이 없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제주의 거센 ‘바람’ 때문입니다. 사방이 꽉 막힌 대문은 사철 몰아치는 제주의 강한 태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짝이 뜯겨 나가거나 돌담까지 무너뜨리기 십상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돌담을 쌓을 때처럼, 대문을 만들 때에도 자연과 싸우기보다 순응하는 법을 택했습니다. 나무 장대 몇 개로 이루어진 정낭은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그 사이로 바람을 유유히 흘려보내기에 태풍에도 끄떡없는 가장 완벽한 대문인 셈입니다.

    3. 숫자와 위치로 소통하는 아날로그 메신저

    정낭이 가진 가장 흥미롭고 아름다운 점은 바로 이 나무 장대의 개수와 위치를 통해 이웃과 소통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의 프로필 상태창이나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알리듯, 옛 제주 사람들은 정낭의 개수로 집주인의 현재 상황을 이웃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했습니다.

    1)정낭이 모두 내려져 있는 경우 (0개)

    집 안에 사람이 있으니 누구든 편하게 들어오라는 환대의 표시입니다.

    2) 정낭이 1개 걸려 있는 경우

    “집주인이 지금 아주 가까운 이웃집에 잠시 마실을 갔거나, 동네 거까이서 볼 일 보러 갔으니 곧 돌아옵니다.”라는 뜻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다정한 안내문인 것이죠.

    3) 정낭이 2개 걸려 있는 경우

    “지금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일을 하러 나갔거나 멀리 나무를 하러 가서, 오후 늦게나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4) 정낭이 3개 걸려 있는 경우

    “지금 먼 곳에 있는 다른 마을에 가거나, 며칠 동안 집을 비웁니다.”라는 뜻입니다.
    장대 3개가 꽉 채워져 걸려 있으면 이웃들은 집안에 아무도 없음을 인지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5) 정낭을 1개 또는 2개만 사용하는 경우

    제주 초가집 입구 돌담 사이에 나무 막대(정낭) 한 개가 사선으로 비스듬히 걸쳐져 있어 집주인이 금방 돌아올 예정임을 알리는 모습

    (ai 이미지 생성)

    실제로는 1개 또는 2개만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정낭을 가로로 걸치면 집에 늦게 돌아온다는 뜻이고, 사선으로 비스듬히 걸치면 금방 돌아온다는 뜻이었습니다.

    6) 종합

    이처럼 정낭은 단순한 나무 장대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소리 없는 언어이자 가장 따뜻한 아날로그 메신저였습니다.

    4. 정낭이 증명하는 제주의 위대한 가치, 신뢰와 삼무(三無) 정신

    1) 역사 기록 속의 삼무

    1704년에 이형상이 제주 목사로 부임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제주도 지방지인 『남환박물』 에 기록한 것을 번역한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제주도의 토질이 척박해서 백성들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땅에는 바위와 돌이 널려 있고 흙이 덮인 곳이 드물어서 삼과 면화를 기르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의복과 음식이 항상 부족했다. 의복과 음식은 소박했으며,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이렇듯 제주도 백성들은 항상 가난에 시달렸지만 물건을 훔치는 자가 없었다. 말이나 소, 농기구, 곡물을 들에 방치하여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보안 기능이 없는 정낭이 대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의 ‘삼무(三無) 정신’ 덕분입니다. 제주의 삼무는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으며, 대문이 없다’는 뜻입니다.

    2) 현대의 기술적 첨단 보안과 제주의 자치적 보안 시스템

    여기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 정보보안 시장의 핵심 철학은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입니다. 직역하면 “아무도 믿지 마라(Zero Trust), 그리고 항상 검증하라(Always Verify)”라는 뜻입니다.

    현대의 제로 트러스트 보안 시스템은 내부에 이미 들어와 있는 최고 경영자나 신뢰받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불신 장벽에서 출발합니다. 방 안의 서류 하나를 열어볼 때마다, 컴퓨터 시스템에 접속할 때마다 끊임없이 생체 인증(지문·안면 인식)을 요구하며 “당신이 정말 권한이 있는 사람이 맞는지”를 매 순간 가혹하게 검증하는 기술입니다.

    불신이 깊어질수록 인간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시스템 구축 비용과 심리적 피로감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물리적인 형태만 보면 제주의 정낭은 이 제로 트러스트 관점에서 ‘보안 점수 0점’의 허술한 바리케이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제주의 정낭은 기술의 복잡성으로 불신을 제어하는 현대 공학의 패러다임을 정면으로 뒤집는 완벽한 ‘상호 신뢰의 공동체 규범’을 보여줍니다.

    결국 정낭은 기계 장치로 인간을 감시하는 삭막한 기술이 아니라, ‘정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힘으로 공간을 완벽하게 방어해 낸 인류 역사상 가장 고차원적인 ‘제로 비용의 인문학적 보안 시스템’이었던 셈입니다.

    3) 소결

    정낭은 힘으로 침입자를 때려눕히거나 시스템적으로 차단하는 ‘강제 보안’이 아닙니다. 정낭은 도둑을 막기 위한 ‘차단막’이 아니라, 이웃 간의 단단한 ‘신뢰와 약속’이었습니다.

    “지금 집을 비우니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주인의 무언의 요청을,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존중해 주었던 것입니다. 도둑이 없다는 상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열려 있는 믿음직한 정낭이라는 대문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높은 철제 대문을 세우고, 삼중 잠금장치를 달고, CCTV를 24시간 가동하면서도 늘 불안해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도 믿지 말고 끊임없이 검증하라는 제로 트러스트의 철저한 불신 속에 스스로를 격리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에 대해 제주의 정낭은 완전히 반대의 결론을 내려주며, ‘진정한 안전과 평화는 철저한 감시가 아니라 서로를 믿는 신뢰에서 온다.’는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5. 올레에서 마주하던 그리운 추억들

    돌담을 따라 굽어지는 올레길을 걸어 들어가면, 고풍스러운 초가집이 보이고, 그 입구 한쪽 끝에 단정하게 성낭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 돌아 왔을 때에,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의 환한 미소가 고스란히 겹쳐옵니다.

    한 올레 안에는 여러 집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대개는 작은 골목이입니다.

    조부모님 집 앞의 올레는 비교적 넓고 꽤 긴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또래의 마을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고, 때로는 연날리기도 했던 장소여서 꽤나 많은 추억이 쌓인 공간입니다.

    가을이면 초가집 지붕에 얹은 묵은 새(‘띠’의제주 방언)를 교체하고 난 뒤에 지붕을 튼튼히 묶을 용도로 길게 집줄(‘새’로 만든 동아줄)을 꼬아 만들었습니다. 이때에 공동 작업으로 어른들과 함께 ‘호랭이’를 돌리던 올레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호랭이’는 끝의 구부러진 갈고리에 새끼줄을 걸어서 ‘ㄴ’자 형태의 손잡이를 돌리며 집줄을 꼬아나갈 때 쓰는 도구입니다. 제주 사투리인데 ‘우리말 샘’ 등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진 설명: 성읍 민속마을에서 초가 지붕 집줄 묶기과 집줄 만들기 시연 중이며, 여성 두 명이 호랭이를 돌리고 있는 모습임)

    6. 맺음말: 내 삶의 울타리를 허물고, 신뢰의 올레길을 걸을 시간

    선조들은 돌담에 구멍을 내어 바람을 통과시키는 유연함의 지혜를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현대의 거센 변화 속에서, 내면의 높은 벽을 허물고 미래를 바라보며 세계와 상생하고 공존하는 지혜를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비록 일상에서 진짜 정낭을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제주 사람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단단한 상생과 신뢰의 정신은 여전히 검은 돌담 사이에 따뜻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제주에 오실 기회가 있다면, 화려한 관광지 대신 제주의 옛 숨결이 담긴 조용한 시골 마을의 올레를 천천히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대문 없이 열려 있는 제주의 정서가 지친 여러분의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줄 것입니다.

    이처럼 대지 위에서 이웃을 향해 빗장을 풀었던 제주인들의 위대한 신뢰와 상생의 법도는, 섬을 둘러싼 거칠고 가혹한 또 다른 영토인 ‘바다’ 위에서 더욱 경이로운 공동체 문명으로 피어납니다.

    다음 5회에서는 돌이 많고 바람이 몰아치는 삼다(三多)의 혹독한 결핍 속에서, 제주인들이 어떻게 절망을 딛고 뚝심 하나로 생존의 뿌리를 내렸는지 풀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집약되어 전 세계가 경탄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 해녀’의 위대한 연대와 상생의 사회학>을 품고 찾아오겠습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참고 자료
    * 제주 부사 이형상이 쓴 제주도 박물지, 남환박물, 한경아
    * (사)제주올레 홈페이지

  • <제3회> 제주 돌담의 물리학: 구멍 숭숭 뚫린 돌담이 태풍을 이겨내는 원리

    돌담 사이 구멍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 나오는 제주 돌담과 그 뒤로 억새풀과 푸른 하늘이 펼쳐진 풍경

    (ai 이미지 생성)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화산섬 제주의 땅속이 어떻게 ‘다공성 화산회토’와 ‘송이(Scoria)’라는 천연 오리털 패딩을 입고 ‘맨도롱한 온기’를 스스로 유지하는지 알아 보는, <제주의 대지가 품은 ‘맨도롱한’ 비밀과 축복>을 함께 풀었습니다.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생명이 살기 좋은 온도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제주의 흙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지혜였습니다.

    오늘은 그 대지의 온기를 품은 채, 사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섬바람과 매년 찾아오는 강력한 태풍으로부터 제주의 삶을 지켜내 온 거대하고 경이로운 구조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제주의 집 주위와 들판을 묵묵히 두르고 있는 ‘제주 돌담’입니다.

    시멘트 한 줌 바르지 않고 거칠게 툭툭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이 돌담에는, 현대의 첨단 건축공학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놀라운 ‘유체역학의 물리학’이 숨어 있습니다. 거센 태풍의 한복판에서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바람의 길을 열어주며 자리를 지켜낸 제주 돌담의 비밀을 지금부터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제주 돌담의 형태와 오늘의 이야기

    제주의 돌담들은 그 쓰임새에 따라 울담, 밭담, 산담, 잣담, 원담, 성담 등 여러 형태가 있지만, 오늘은 울담과 밭담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1) 바람을 막고 경계를 나누는 ‘울담’

    울담은 집의 경계를 나누고 집안에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습니다.

    (2) 토양과 농작물을 지키는 ‘밭담’

    밭담은 농사를 짓는 밭에 타인 소유의 농지와 경계를 나누며, 말이나 소 또는 야생동물들이 농작물을 해치는 것을 막고, 제주의 거친 바람에 흙이 날려버리거나 농작물이 쓰러지는 것을 줄이려 하였고, 때로는 비에 토양이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쌓았습니다.

    (3) 엉성함 속에 감춰진 외담의 미학

    이 돌담들은 두텁게 쌓는 산담, 원담, 성담들과 달리 한 줄로 쌓는 외담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양을 다듬어서 규격화하는 게 아니고 돌이 생긴 모습 그대로 쓰다 보니, 크기와 모양이 제멋대로인지라 불규칙하게 얹혀 있고 그 사이로 반대편 풍경이 훤히 보일 만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마치 성의 없이 대충 쌓아 놓은 것처럼 엉성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2. 제주 돌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

    시골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울담 너머 이웃집에는 제법 큰 앵두나무가 있었습니다. 열매가 빨갛게 익을 무렵에는 그 새콤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이웃집 어른들이 볼까 봐 마음졸이며 울담 구멍 사이로 팔을 쑥 집어넣어서 몰래 앵두를 따먹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고 나서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6월 중순경이면 따먹을 때가 되겠군요.

    앞집 아이와 또는 옆집 아이들하고 울담 구멍사이로 얼굴을 보며 웃으며 떠들고, 유리구슬과 종이딱지를 교환하던 생각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렇듯 외담으로 쌓은 돌담은 온통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건너편과 고스란히 소통되는 공간입니다.

    3.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의 대지를 지키는 검은 울타리

    하늘에서 내려다본 푸른 밭들을 그물망처럼 둘러싸고 있는 검은 현무암 돌담들이 마치 거대한 검은 용처럼 바닷가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는 제주의 흑룡만리 밭담 풍경

    (ai 이미지 생성)

    제주도를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검은색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들이 불규칙한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지며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검은 용이 대지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1만 리(약 4,000km)에 달한다고 하여 선조들은 이를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렀습니다. 실제로는 2만 2,000여k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므로, 이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슷한 길이가 됩니다.

    (1) 흑룡만리 돌담의 역사

    ‘탐라지’ 풍속편에 의하면, 김구가 1234년에 제주판관으로 임명되어 6년을 제주에서 보내면서 풍속을 규찰하고 단속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김구가 판관이 되어 백성의 고통을 물어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드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로써 제주의 돌담 역사는 약 800여년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의문점: 돌담이 태풍을 견디는 비결은?

    앞서 얘기한 대로 이 돌담들은 단순히 땅의 경계를 나누는 선이 아니었습니다. 거센 바닷바람에 집을 보호하고, 밭의 흙과 씨앗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풍벽이자, 애써 키운 농작물을 보호하는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육지의 담장들은 시멘트나 진흙을 꼼꼼히 채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게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데, 제주의 돌담은 손으로 툭 밀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집과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태풍에 무너질 때도, 이 구멍 숭숭 뚫린 돌담들은 끄떡없이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도대체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 걸까요?

    4. 돌담 구멍의 ‘유체역학’: 정면 충돌을 피하는 지혜

    태풍의 정면 충돌을 피하는 유체역학적 구멍들이 숭숭 뚫린 채 들판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제주의 현무암 돌담 풍경

    (ai 이미지 생성)

    손으로 밀면 넘어질 듯 엉성한 돌담이 태풍을 견디는 첫 번째 비밀은, 바람을 ‘막아서는’ 대신 ‘흘려보내는’ 길을 선택한 바로 그 ‘비어 있는 구멍’에 있습니다.

    물리학과 유체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공기)은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유체입니다.

    틈새 없이 꽉 막힌 단단한 시멘트 벽은 강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바람의 압력(풍압)을 온몸으로 정면에서 받아내야 합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벽이 받는 압력은 그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벽 전체가 통째로 넘어지거나 균열이 가게 됩니다. 정면으로 맞서다 부러지는 셈입니다.

    반면, 제주의 돌담은 태풍이 몰아치면 그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습니다. 대신 돌과 돌 사이에 뚫린 수많은 구멍 속으로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공기역학적으로 바람이 돌담의 좁은 구멍들을 통과할 때 마찰과 와류(소용돌이)가 발생하면서, 바람이 가진 거대한 운동 에너지가 순식간에 분산되고 약화됩니다. 즉, 돌담을 통과하기 전에는 초속 30~40m에 달하던 파괴적인 태풍이, 구멍들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야성을 잃고 온순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5. 중력과 마찰력이 빚어낸 ‘허튼층쌓기’의 구조학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 안정성과 마찰력을 제공하는 구멍 숭숭 뚫린 거친 현무암(화산석) 표면의 접사 사진

    제주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또 다른 비밀은 구조적 안정성에 있습니다. 제주의 전통 돌담은 네모반듯하게 깎인 돌을 규칙적으로 쌓는 대신,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불규칙하고 거친 현무암들을 가로세로 줄눈을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대로 흐트려 쌓는 ‘막쌓기(허튼층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네모난 돌들은 지진이나 충격이 오면 한꺼번에 미끄러지며 무너지기 쉽지만, 거친 표면을 가진 현무암들은 서로의 요철(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됩니다. 접착제를 쓰지 않는 대신, ‘돌 자체의 무게(중력)’와 돌과 돌이 맞닿은 면의 ‘마찰력’만으로 지탱되는 구조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돌담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 이 불규칙한 돌들은 오히려 틈새를 찾아 더 단단하게 가라앉으며 서로를 꽉 움켜쥐는 독특한 역학적 성질을 가집니다.

    6. 비움의 물리학: ‘베르누이의 정리’가 적용되는 고정력

    앞서 살펴본 유체역학과 구조학의 원리를 종합하면, 여기에는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베르누이의 정리(Bernoulli’s theorem)’가 경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제주대학교 대학원의 한 연구 논문에서는 이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제주 돌담 틈새를 지나는 바람의 흐름과 베르누이 원리에 의해 돌을 아래위로 누르는 수직 압력이 발생하는 과정을 단순하게 나타낸 논문 그림

    출처: 제주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 내용 참고

    “이러한 베르누이의 원리를 제주 돌담에 적용한다면, [그림 Ⅳ-19]에서와 같이 돌담의 틈새를 지나는 바람의 경우, 주위의 공기에 비하여 큰 속력으로 돌담 틈새를 지나므로 돌담의 틈새는 주위보다 낮은 압력이 되며, 주위와의 압력차로 인한 힘이 돌담의 틈새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압력차로 인한 틈새 방향으로 향하는 힘은 돌을 누르는 힘으로, 이 힘은 돌의 무게에 의하여 돌들 사이의 접촉면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과 함께 수직항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마찰력을 크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 논문 인용)



    논문의 분석처럼, 바람이 좁은 돌 틈을 통과할 때 속도가 빨라지면서 구멍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이때 압력이 높은 바깥쪽 공기가 돌담 중심 방향으로 돌들을 ‘꾸욱 움켜쥐고 누르는 힘’을 발생시킵니다. 이 힘이 돌의 무게(중력)와 결합하여 돌과 돌 사이의 마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제주의 돌담은 바람이 불어도 그 형태가 바람의 저항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구조를 띠고 있어서 담장이 받는 전체적인 저항은 애초에 최소화 됩니다.게다가 울퉁불퉁하고 돌 자체에 미세한 구멍(기공)이 많은 현무암이기에 돌들끼리의 마찰력은 배가되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상태에서 중력과 내력이 동시에 작용하니, 태풍 속에서 돌담은 무너지기는커녕 더욱 단단한 요새로 변신하게 됩니다.

    바람이 돌담을 무너뜨리려고 거세게 몰아칠수록, 역설적이게도 유체역학적 압력차에 의해 돌담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결속시킵니다.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여 스스로 구조적 균형을 찾아가는 일종의 ‘유연한 완충 시스템’인 셈입니다.

    7. 우주에서 활용할 ‘제주 돌담’의 지혜

    매우 흥미로운 신문기사가 있어서 간략히 소개합니다. 원문과 관련 사진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경향신문, 2024.08.11.), (어린이 조선일보, 2025.05.29.)

    앞으로 달 기지에 수시로 왕복을 하려면, 로켓 이착륙 시 로켓 엔진 때문에 폭풍이 발생하면서 달 기지와 장비, 사람을 강타할 공산이 큽니다. 또한 달에서는 1년에 1,000번 이상 모래 폭풍이 불 정도로 자주 발생한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전통적인 ‘제주 돌담’ 축조 방식과 유사하게 이착륙장 주위를 원형으로 ‘담장’을 쌓자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스위스 연구진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연구팀 100여 명이 세계 곳곳에 담장을 찾아 나섰는데, 처음에는 콘크리트 장벽이나, 철근과 나무로 만든 장벽이 후로로 뽑혔으나, 달의 폭풍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큐멘터리에서 제주 돌담을 보고 착안하였으며, 연구팀이 달과 비슷한 환경을 만든 뒤, 그곳에서 제주 돌담을 쌓는 실험에 성공했고 그 돌담은 거센 인공 바람에 끄떡없었다고 합니다.

    거센 바람을 구멍 사이로 유연히 흘려보내는 제주 돌담의 심성이 조만간 우주의 모래 폭풍까지 잠재우게 될 듯합니다.

    8. 생명을 살리는 ‘비움’과 ‘소통’의 로컬 정서

    인간의 삶과 정서 역시 이 돌담의 과학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과거 척박한 화산섬에서 거친 바다와 태풍을 마주하며 살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유연하게 비켜서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돌담의 구멍은 단순히 바람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울담 너머로 이웃집의 안부를 확인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대화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단단하고 묵직한 돌을 가지고 가장 부드럽고 유연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한 제주 돌담은, 거친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해 낸 로컬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9. 글을 마치며: 꽉 막힌 벽 대신, 마음의 돌담을 쌓을 시간

    첫 회 이야기에서 만나본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맨도롱한 온기’, 2회에서는 대지가 품은 다공성의 단열 비밀과 축복‘ 그리고 오늘은 거센 태풍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돌담의 유체역학’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주가 우리에게 건네는 온기와 과학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일상의 온도를 유지하고, 삶에 들이치는 모진 시련의 바람 앞에서는 온몸으로 맞서 상처받기보다 내 마음속에 작은 ‘구멍’ 하나를 내어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차가운 세상의 벽 앞에 힘겨워하고 있다면, 내 마음의 담장을 시멘트벽처럼 꽉 막아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가만히 돌아보면 어떨까요? 거센 바람의 길을 열어주어 스스로를 지켜내는 제주의 돌담처럼, 조금은 비워두고 조금 더 유연해지는 ‘맨도롱한’ 하루를 보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동안 ‘제주 오리진(Jeju Origin)’의 시리즈 연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주의 매우 독특한 문화인 <신뢰로 열리는 문, 제주의 지혜 ‘정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으로 ‘제주 오리진(Jeju Origin)’은 더욱 깊이 있고 매혹적인, 가장 제주다운 가치와 원형의 기록을 담은 새로운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제주 오리진(Jeju Origin)


    ■ 참고 문헌 (References)

    * 홍경모, 「과학교육 학습자료로서의 제주 전통 돌담에 대한 연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경향신문, 미래 달 로켓 이착륙장에 ‘제주 돌담’ 쌓자고?…이유는 ‘이것’, 2024.11.08.

    * 어린이 조선일보, 스위스가 달에 짓는 로켓 공항! 구멍 숭숭 ‘제주 돌담’에서 아이디어 얻었어요!,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