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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회> 조석 간만의 물리학: 바다가 차려놓은 천연 그물 ‘원담(석방렴)’의 과학


    제주 섬의 해안선을 따라 올레길이나 바닷가 갯바위를 걷다 보면, 조간대(潮間帶) 얕은 바당 한가운데에 반원형이나 말발굽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검은 돌무더기를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됩니다. 제주 바다를 단순히 에메랄드빛 풍경으로만 소비하는 외지인의 눈에는 그저 파도에 밀려와 쌓인 갯바위 무더기나, 과거 누군가 밭을 일구다 나온 잡석을 바다에 버려둔 흔적쯤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친 바다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해 온 탐라 토박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돌무더기는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굶주림과 척박함 속에서 섬사람들이 자연과 맺었던 가장 거대하고도 정교한 생존의 계약이자, 현대 토목공학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유체역학적 걸작, 바로 ‘원담’입니다.

    육지에서는 바다에 발(대나무나 싸리나무로 엮은 발)을 쳐서 고기를 잡던 어살이나, 서남해안 갯벌에 돌을 쌓아 고기를 가두던 석방렴(石防簾)이라는 한자어로 익숙할 것입니다. 석방렴(石防簾)의 뜻은 돌 석(石), 막을 방(Defense, 防), 발 렴(Curtain, 簾) 자를 써서 “돌로 방어벽(담)을 쌓아 만든 그물(발)”이라는 뜻의 원시적 어로 장치를 총칭하는 한자어입니다.
    그러나 제주의 원담은 펄이 가득한 갯벌에 세워진 육지의 ‘독살’, ‘돌살’, ‘독새’, ‘돌발’ 등과는 근본부터 태생을 달리합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펄 바닥과 달리, 제주는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형성된 날카로운 빌레(용암 암반)와 거친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한겨울이면 살을 에는 북서풍이 몰아치고, 여름이면 집채만 한 태풍의 너울이 해안가를 강타합니다. 나무 기둥 하나 바닥에 박기 힘든 이 험난한 용암 바당 위에서, 제주의 선조들은 시멘트나 진흙 한 줌 쓰지 않고 오직 깨진 현무암 덩어리만을 맨손으로 맞물려 수백 년을 버티는 돌그물을 짰습니다.

    그물 한 뙈기를 짜려면 삼베실이나 무명실이 귀해 엄두를 못 내고, 쇠붙이 바늘 하나조차 육지에서 쌀을 주고 바꿔와야 했던 결핍의 시절이었습니다. 깊은 먼바다로 노를 저어 나갈 튼튼한 어선을 지을 재목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선조들은 한탄하는 대신, 매일 바다를 당겼다 밀어내는 달과 태양의 인력, 그리고 바닷물이 돌 틈을 스쳐 지날 때 발생하는 유체역학적 에너지의 차이를 간파했습니다.

    엔진도, 나일론 그물도, 사람의 고된 팔심도 빌리지 않고 오직 지구의 물리적 자전과 행성의 인력만을 이용해 하루 두 번 바다가 차려주는 천연 밥상을 거두어들였던 지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원담의 숨겨진 물리학입니다.


    1. 조석 간만을 이용한 ‘에너지 제로’의 어로 메커니즘


    원담의 사냥법은 인류가 발명한 모든 어로 기술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가장 완벽한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연 현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자연 스스로 수행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들물)이 차오르면 먼바다의 찬 해류와 연안의 얕은 바닷물이 뒤섞이며 풍부한 부유 플랑크톤이 일어납니다. 이를 먹기 위해 멜(멸치), 숭어, 각재기(전갱이), 자리돔, 농어, 심지어 감성돔에 이르는 수많은 어군이 얕은 조간대 연안으로 물결을 타고 떼 지어 밀려듭니다.


    1) 들물의 관성과 먹이사슬의 유인

    이때 원담의 돌벽은 이미 만조의 바닷물 밑으로 깊숙이 잠겨 버립니다. 물 위에서는 담의 존재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물속의 고기들에게도 그것은 그저 조류를 막아서지 않는 평범한 여(암초)의 턱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물고기들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물길의 관성을 따라 원담 안쪽 너른 바당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합니다.


    2) 썰물의 차려준 자연밥상

    만조를 지나 썰물(날물)이 시작되는 순간, 바다의 에너지 흐름은 180도 뒤집힙니다. 연안을 가득 채웠던 수천 톤의 바닷물이 조석 주기에 맞춰 다시 수평선 먼바다 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물고기들은 수위가 낮아지고 수압이 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몸을 돌려 외해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담의 물리적 트랩이 작동합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수면 아래 숨어 있던 검은 현무암 능선이 서서히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은 자연스러운 중력과 유체 성질에 의해 현무암 돌과 돌 사이의 미세한 틈새를 통해 거침없이 바깥으로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일정한 체격을 가진 물고기들은 이 좁은 암석의 틈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외해로 이어지는 유일한 탈출로라고 여겼던 물길이 검은 돌벽에 가로막히는 순간, 물고기들은 혼비백산하여 담 안쪽을 맴돌게 됩니다.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제때를 기다려 바구니와 족대를 들고 마른 바닥을 걸어 내려간 것뿐입니다. 거대한 배를 띄우지도 않았고, 그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정 수십 명이 땀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지구와 달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천체 물리학적 낙차 에너지가 물고기를 제 발로 함정 한가운데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2. 접착제 없는 건식 석축: 파도를 견디는 다공질 현무암의 감압 공학


    1) 100% 현무암 축조

    육지의 독살이나 석방렴은 돌담 사이에 대나무 발을 꽂거나 갈대를 엮어 보완하기도 하지만, 제주의 원담은 거친 바다 환경을 견디기 위해 오직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만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만듭니다.

    원담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현대의 토목 기술자들이 가장 경악하는 지점은 바로 ‘결합재의 완전한 부재’입니다.

    시멘트 몰탈은 고사하고 흙 한 줌 채워 넣지 않은 채, 오직 거친 돌을 맞물려 쌓아 올린 ‘외담’ 혹은 ‘접담’ 구조가 수백 년 동안 수천 번의 태풍과 거센 너울을 맞고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2) 콘크리트 옹벽의 치명적 결함과 파압(Wave Pressure)

    현대식 항만 공사에서 흔히 쓰이는 매끄러운 콘크리트 직립 방파제는 파도가 부딪힐 때 엄청난 충격 압력(파압)을 벽면 전체로 정면 흡수합니다. 수면을 때리는 파도의 에너지가 분산될 통로가 없기 때문에, 제방 밑바닥이 세굴(Scour)되거나 단 한 번의 강력한 너울성 파도에도 벽체 자체가 통째로 전복되거나 금이 가며 터져 나갑니다.

    만약 옛 선조들이 원담을 틈새 하나 없이 빽빽하고 매끄러운 석벽으로 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조 때 밀려드는 조류의 수압과 태풍 때 몰아치는 수십 톤의 파도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 한 해 여름을 넘기지 못해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3) 다공질 현무암과 무수한 공극(pore space)의 유체 분산 효과

    선조들은 거친 바다와 정면으로 힘겨루기를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선 「제3회 제주 돌담의 물리학: 구멍 숭숭 뚫린 돌담이 태풍을 이겨내는 원리」에서 살펴본 ‘바람을 흘려보내는 원리’를 바다로 가져와, 파도의 충격을 스스로 분산시키는 다공질 투수성 석축(Permeable Breakwater)을 완성해 냈습니다.

    ① 감압 밸브로서의 틈새

    원담을 쌓은 현무암은 그 자체로 기포가 숭숭 뚫린 다공질 암석일 뿐만 아니라, 돌과 돌이 만나는 지점마다 주먹만 한 공극(빈틈)들이 무수히 얽혀 있습니다. 거센 파도가 원담을 들이치는 순간, 파도의 수괴(물덩어리)는 단단한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 틈 사이로 빨려 들어갑니다.

    ② 미세 와류 형성을 통한 파괴 에너지 감쇠

    틈새로 쏟아져 들어간 바닷물은 암석 내부의 불규칙한 미로 속에서 수만 갈래의 미세한 와류(소용돌이)로 쪼개집니다. 물과 물이 서로 부딪히고, 거친 현무암 표면과 마찰하면서 파도가 가지고 있던 거대한 운동 에너지는 급격히 상쇄되어 열에너지와 거품으로 흩어집니다.

    ③ 자가 안정 구조(Self-stabilizing Structure)

    밑바닥에는 성인 서너 명이 겨우 굴릴 수 있는 거대한 ‘굽돌(기초석)’을 용암 빌레의 홈에 맞춰 깊숙이 박아 넣었습니다. 그 위로 갈수록 점차 작은 돌을 올리되, 돌들의 무게중심이 안쪽으로 쏠리도록 쐐기돌을 물려 쌓았습니다. 파도가 칠 때는 돌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마찰력으로 충격을 흘려보내고, 물이 빠지면 중력에 의해 제자리로 더 꽉 맞물려 내려앉는 경이로운 자가 복원 메커니즘을 완성한 것입니다.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의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는 무저항의 물리학, 그것이 시멘트 한 톨 없는 원담이 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핵심입니다.


    3. 원담의 해부학: 파도를 흘리고 어군을 가두는 3대 구조적 설계


    언뜻 보면 바닷가에 돌을 대충 둥글게 둘러쳐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원담은 조류의 방향, 바닥 지형의 고저 차, 그리고 어종별 회유 습성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구역별로 각기 다른 기능을 부여한 고도의 구조체입니다.


    1) 원담의 축조 방향: 파도를 빗겨 치는 곡률의 미학

    원담의 전체적인 외형은 바다 쪽을 향해 완만하게 둥근 활(弓) 모양이나 반대방향의 V형 또는 말발굽 형태의 곡선을 그립니다. 이는 파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혜로운 축조방식이었습니다. 직선으로 쌓은 제방은 조류를 직각으로 받아 저항이 극대화되지만, 유선형의 완만한 곡선 담은 밀려드는 파도를 양옆 해안가로 미끄러지듯 유도하여 흘려보냅니다. 또한 썰물 때 물고기들이 직선 벽을 따라 탈출구를 찾는 대신, 둥근 곡선을 따라 맴돌다 담 중심부로 유인되도록 만드는 유도벽 역할을 수행합니다.


    2) 웅덩이 설치: 어류의 피난 본능을 역이용한 최종 집수지

    원담 내부 바닥을 살펴보면 수평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다 쪽에 가장 가깝고 수심이 가장 깊숙하게 파인 핵심 웅덩이를 만들어 둡니다.

    간조가 가까워져 원담 내부의 바닷물이 대부분 빠져나가고 자갈과 모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물고기들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본능적으로 물이 남아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웅덩이를 찾아 몸을 숨기려 드는데, 그곳이 바로 최종 그물의 적재창이 됩니다.

    결국 수백 평에 달하는 원담 내부로 들어왔던 고기들이 썰물이 완전히 끝나는 시점에는 단 몇 평 남짓한 웅덩이 안으로 한데 밀집하게 됩니다. 어부들은 굳이 넓은 바다를 헤맬 필요 없이, 마침내 이 웅덩이에 빽빽하게 모여든 고기를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3) 원담의 돌 틈새: 어군의 패닉을 막는 점진적 감압 배수

    원담은 밀물 때 담 전체가 물속에 완전히 잠겨 어군이 담 위를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유도합니다. 이후 썰물이 시작되면 별도의 인공 문을 닫지 않아도, 수위가 낮아지면서 담 위쪽이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나 물고기의 퇴로를 자연스럽게 차단합니다.

    이때 원담의 일부 낮게 트인 물목과 현무암을 메운 돌 틈은 물만 서서히 빠져나가게 하는 거대한 천연 필터 역할을 합니다. 물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지 않고 완만하게 빠져나가도록 유속을 분산시킴으로써, 갇힌 어군이 급격한 조류 변화에 놀라 담 밖으로 튀어 넘는 것을 방지하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원안의 깊은 웅덩이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만드는 정교한 생태적 설계였습니다.


    4. 원계(圓契)와 멜 바당: 제주 공동체를 지탱한 수눌음의 사회학


    원담은 단순한 토목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화산섬에서 피를 나눈 가족을 넘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단단한 생명 공동체로 묶어주었던 사회적 제도이자 규범이었습니다.


    1) 사유화를 거부한 수눌음의 노동

    바다 밑바닥에서 집채만 한 현무암 굽돌을 파내어 물길을 잡고 담을 쌓는 일은, 개인이나 한두 가구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게를 질 수도 없고 우마차도 들어올 수 없는 갯바위 밭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바위를 굴리고 맞추는 일은 마을 장정 수십 명이 굵은 밧줄을 걸고 호흡을 맞추어야만 가능한 중노동이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 원담 한쪽이 터져 나가면,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짚줄과 괭이를 들고 바당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거대한 공동 노동을 제주에서는 ‘수눌음’이라 불렀고, 이를 위해 조직된 마을 자치 조직이 바로 ‘원계(圓契)’였습니다.


    2) “멜 들엇저!” 외침소리와 함께 열린 나눔의 축제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제주 연안으로 은빛 멜(멸치) 떼가 새까맣게 밀려드는 날이면 마을 망루에 섰던 ‘원지기’ 삼촌이 갯바위를 울리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원담에 멜 들엇저! 양동이영 구덕 들엉 ᄆᆞᆫ딱 바당더레 ᄃᆞᆯ리라!”

    “(원담에 멸치 들었다! 양동이랑 바구니 들고 모두 바다로 달려라!)”

    ※ 안내: ‘ᄆᆞᆫ딱’, ‘ᄃᆞᆯ리라’는 아래아(ㆍ)가 쓰인 제주어 표기이며, 실제 현지 구어 발음은 현대 한글로 ‘몬딱’, ‘돌리라’에 가깝습니다.
     

    웅덩이에 물이 무릎 정도까지 빠지면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족대와 구덕(대나무 바구니)을 든 어른들이 웅덩이로 뛰어들어 은빛 멸치를 바가지째 퍼 올렸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거두는 손길에는 엄격한 질서와 도덕이 있었습니다. 원계를 구성하는 지분(원담을 쌓을 때 보탠 노동력의 몫)에 따라 몫을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의 룰’이 철저하게 작동했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지분이 없는 홀어머니 가정, 물질을 못 하는 노인, 장애를 가진 이웃의 몫을 먼저 바구니에 담아 챙겨준 뒤에야 계원들의 분배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원담은 누군가의 부를 독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마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바다가 베푼 생명을 골고루 나누는 자비로운 배분의 식탁이었습니다.


    3) 어린 치어를 살려 보낸 생태 어로의 철학

    오늘날 나일론 그물망은 바다 밑바닥을 긁어 어린 치어까지 싹쓸이하지만, 조상들의 원담은 결코 바다의 씨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굵기만 한 틈새를 둔 돌벽은, 덩치 큰 어미 물고기만을 인간의 양식으로 남기고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새끼 물고기들은 썰물과 함께 유유히 바다로 빠져나가도록 허용했습니다.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도 다음 해, 다음 세대의 풍요를 남겨두었던 지혜. 원담의 돌 틈새는 인간의 탐욕을 걸러내던 가장 숭고한 도덕적 필터였던 것입니다.


    5. 원담의 이름들


    제주대학교 정광중 교수에 따르면 (제주일보, ‘원담, 신이 내린 황금그물…공동체문화의 상징’ 인용)


    “원담의 이름은 ▲주변의 바다나 가까운 육지 지명을 빌려 사용한 새배원과 산밧알원 ▲원담의 위치와 지형 등에 따라 지어진 앞원, 멀원, 코지원, 빌레원, 뒷개, 코지웃개, 코지알개 ▲잘 잡히는 어종에 의해 붙여진 멜캐, 숭어원, 멍개원 ▲사람 이름을 빌린 이선달개, 홍건이개 ▲생긴 모양을 빌린 도고리원과 곱은원, 크기를 나타내는 큰원과 족은원, 축조 시기를 나타내는 새개, 원담 안의 상태를 나타내는 모살원과 돌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6. 필수 제주어 어휘 및 현장 용어 해설


    1) 원담: 해안가 조간대에 둥그렇게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가두어 잡는 제주의 전통 돌그물이며, 마을에 따라 ‘원’ 또는 ‘개’나 ‘갯담’이라고도 부릅니다. 원은 울타리를 뜻하는 원(垣)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개’는 해변 후미진 곳의 이름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다만, 인공적으로 축조하지 않고 천연으로 이루어진 돌담은 ‘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개 바다 밑바닥이 주변 지형보다 약간 낮은 곳을 활용하며, 그 지형에 따라 높이 약 1~1.5m, 폭 1~2.5m 정도로 담을 쌓았으며, 파도의 영향을 덜 받도록 안쪽은 높게, 바깥쪽은 약간 낮게 비스듬히 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조간대(潮間帶): 만조 때의 해안선과 간조 때의 해안선 사이의 영역. 물이 들면 잠기고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가 갯바위 지대입니다.

    3) 여: 바닷가 바닥이 얕거나 썰물 때 물 위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바위나 돌 따위, ‘여을’, ‘여의’, ‘여흘’이라고도 부릅니다.

    4) 빌레: 넓적하고 평평하게 펼쳐진 암반 지대입니다.

    5) 갯도: 원담의 역할을 하면서 한편 배가 포구로 들어올 때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뱃길입니다.

    6) 굽돌: 담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전체 하중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초 암석입니다.

    7) 멜: 제주 바다에서 대량으로 회유하는 멸치의 제주어 명칭이며, 제주 전통 식문화(멜국, 멜튀김, 멜젓)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 어종입니다.

    8) 수눌음: 제주 특유의 상부상조 품앗이 문화. 힘든 농사일이나 바다 일, 돌담 쌓기 등을 마을 공동체가 서로 돌아가며 무상으로 돕던 노동 연대입니다.

    9) 원계(圓契): 원담을 축조하고 보수하며, 어획물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관리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결성했던 자치 규약 조직입니다.


    7. 고향 마을 바닷가 원담의 추억


    (사진: 원담(돈물원)이 있던 곳)


    내 고향 마을 신엄리의 바닷가 지명인 ‘남또리(남ᄃᆞ리)’에는 ‘남또리포구’(현 고내리포구)가 있고, 포구 입구 한편 바닷가 방향에는 ‘돈물원(ᄃᆞᆫ물원)’, ‘남또리개’라 불리는 커다란 반원형의 원담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원담의 전체 길이는 100여 m가 넘었는데, 원담 내부 바닥은 모래이나 곳곳에 작은 자갈들과 조금 큰 돌멩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 돌을 뒤집으면 낙지가 꽤 잡히기도 했습니다.
    근처에는 ‘볼레낭기정’(보리수나무가 있는 절벽이라는 뜻)이란 높은 절벽 밖의 바다를 ‘석주와당’(석주바당)이라 불렀고, 그 안쪽 양쪽으로 여가 있었으며 그 중 가운데 깊은 곳에 원담을 끼고 뱃길이 열려서 자연스레 포구의 여건을 갖췄는데 이 부분의 원담이 갯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추억을 부르는 그리운 명칭들입니다.


    (사진: 남또리물)


    이곳 여의 안쪽 바닷가에는 용천수인 ‘남또리물’이 있습니다. 여름에 밀물 때는 이곳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고, 썰물이 되면 차가운 용천수를 손바닥으로 떠서 마시고, 그 물에 짠물에 젖은 몸을 헹구기도 했습니다. 저의 고등학생 시절, 한여름에 며칠간 공동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파도에 의한 포구의 손상을 막기 위해 입구 쪽 바닷가를 메우고, 일부 파손된 원담도 보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도 부친 대신 참여해서 육지에서 큰 돌을 날라서 테우(제주식 뗏목)에 실은 후 포구 앞쪽 바닷가에 떨어뜨리는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여서 무거운 돌을 들고 테우에 싣는 힘든 작업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하루는 바닷물에 젖은 테우가 미끄러워서 그만 큰 돌을 가슴에 안은 채 테우에서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순간 돌이 테우에 걸린 채 저만 바다로 떨어지는 바람에 바위에 턱을 크게 부딪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받았는데, 결국 앞니 세 개가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에는 시내에 가서 치료할 여건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견디느라 몇 년 고생하다가 나중에야 시내 치과에서 치료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혹 원담에 멜이 들면 온 동네 사람들이 서둘러 모여서 흥분된 마음으로 일제히 모여들어 멜을 잡던 기억 역시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동창들과 술자리를 하던 자리에서 그 원담이 포구 개발이란 명목으로 2001년 경에 철거하여 그 원담을 포구 축조에 활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서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앞니를 세 개나 상하면서 관리하던 그 원담을 철거했다니, 더욱이 그 지역이 이웃마을인 고내리에 속하게 되어 어릴 때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관리하던 포구 이름마저 이웃마을 지명으로 바뀌었다니 더욱 속상하였습니다. 과연 철거가 동네 개발에 도움을 주었을까? 오히려 그냥 두었을 때의 그 가치가 훨씬 더 크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고향 친구들에게 피력하며 철거를 주도한 당시 마을 이장의 근시안적 행정에 큰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분노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오랜만에 현장을 찾았더니 원담은 사라지고 포구의 방파제를 넓혀서 그 위로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모습이었고, 남또리물은 시멘트로 넓게 둘러서 안내문을 설치해 둔 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존하겠다고 시멘트로 둘렀는지 황당한 생각이 들었고, 덩치 큰 현무암 자연석 등 원형이 모두 사라진 곳은 시멘트 시설만 눈에 띄어 제 눈에는 이미 그 가치가 영원히 사라진 듯 싶었습니다. 이것은 보존이 아니라 완전 훼손이라는 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복원이 될 수 없기에 영영 사라져 버린 그 원담과 남또리물의 원형이 마냥 그립습니다.


    8. 맺음말: 검은 돌담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김동전 외, 『제주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연구』(제주학연구 51,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2018)에 따르면,


    “‘원’은 돌 많은 섬에서 돌로 담을 쌓고 물길을 따라 밀려든 고기를 가둬놓고 잡는 ‘돌그물’이라 할 수 있다. 집어등을 밝히고 들망으로 먼바다에서부터 고기를 잡아버리는 어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가 마을의 원들은 원래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기떼가 몰려들지 않아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제주의 해안가에는 약 260여 개의 원담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안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대형 어선들이 디젤 엔진 소리를 우렁차게 내뿜으며 먼바다로 내달리면서 원담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습니다. 시멘트 해안 제방에 가로막혀 물길이 끊기거나, 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포클레인에 밀려 허리가 잘려 나간 원담들도 있습니다. 다행히 원담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복원을 시도하는 곳도 있고 이미 몇 곳은 복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쁩니다. 한편 내 고향 마을의 원담도 하루빨리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물이 빠져나간 한적한 조간대 갯바위에 묵묵히 서서 바닷물을 품었다가 조용히 토해내는 그 검은 돌의 곡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숙연해집니다.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고 구멍을 내어 바람을 흘려보낸 제주의 ‘돌담’처럼, 성난 파도를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고 온몸으로 품어 안았던 탐라인들의 겸손한 물리학.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늘 결핍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호흡에 발을 맞추고 이웃과 더불어 멸치 한 마리를 나누던 따뜻한 나눔의 터전인 원담.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맺은 가장 평화로운 계약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다음 제13회 글에서는 얕은 여밭을 넘나들며 자리돔을 뜨고 미역을 건져 올리던 제주 고유의 떼배, ‘테우’에 깃든 놀라운 부력의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궤적을 짚어보는 시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현봉철, 「원담, 신이 내린 황금그물…공동체문화의 상징」(제주대학교 정광중 교수 인용), 『제주일보』, 2010년 1월 25일,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5630.

    * 이혜은·김지수·성효현·정광중·전영준 외, 「화산섬 환경에서 발달한 전통 농업 및 어업 경관: 제주도와 하와이의 비교 고찰」, 『대한지리학회지』 제55권 제3호, 대한지리학회, 2020, 343~362쪽.

    * 고광민, 『동아시아 원담조사보고서』, 제주문화예술재단, 2017.

    * 김동전 외, 『제주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연구』(제주학연구 51), 제주특별자치도·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2018.

    * 김상태, 「자연 지형을 이용해 돌담으로 고기를 잡는 제주의 원담」,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6900.

    * 고영철, 「[향토문화] 마을 공동소유..행원리 아친개(갯담)」, 『제주환경일보』, 2017년 10월 25일,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59.

    * 조의환, 「[조의환의 제주스케치] 제주, 바다에도 ‘돌담’이 있다… 썰물 때 물고기 잡아 가두는 자연의 그물」, 『조선일보』, 2014년 7월 26일, https://www.chosun.com/.

    * 진선희, 「[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 (12)제주 원담」, 『한라일보』, 2007년 5월 4일, https://s1.ihalla.com/article.php?aid=1178204400238444156.


  • <제6-3회> 제주의 지방과 미네랄 영양학: 게우젓, 자리젓, 멜젓

    부제: 어패류의 생화학적 미네랄 흡수율과 필수 지질의 조리 과학


    제주의 화산재 토양은 지표면의 유기물 함량은 높으나, 다우지 특성상 비가 내리면 대사에 필수적인 칼슘과 마그네슘 등의 유효 미네랄 성분들이 하부 층위로 쉽게 용탈(Leaching)되는 독특한 지질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토양 자체에 존재하는 미네랄마저 일반토양과 달리 인산을 강하게 흡착 고정하는 화산회토 특유의 강한 성질 때문에 토양의 유효인산 함량이 매우 떨어져서 비옥도가 낮아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식물들이 미네랄을 제대로 흡수하여 자라나기 힘든 척박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주 땅에서 수확한 곡물이나 채소는 인간의 골격 대사에 필요한 활성 미네랄이 태생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주의 물은 겹겹이 쌓인 현무암과 화산재층을 통과하며 천연 미네랄을 풍부하게 흡수해 낸 세계 최고 수준의 청정 약알칼리성 암반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식수라 할지라도 물속에 녹아있는 이온 형태의 미네랄만으로는 인간이 하루에 필요한 칼슘과 영양소의 절대량을 모두 충족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식수와 채식 위주의 식단에서 결핍되기 쉬운 필수 미네랄과 영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주의 선조들은 척박한 땅 대신 청정한 제주의 바다로 눈을 돌렸고, 바다의 선물인 어패류를 지혜롭게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바다에서 얻은 전복의 내장, 자리돔, 멸치를 소금에 삭혀 만든 ‘발효 젓갈 문화’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염장 보존식을 넘어, 섬 환경의 영양학적 한계를 극복한 지혜였습니다.

    이번 제6-3회 연재에서는 제주의 식탁을 지켜온 핵심 축인 ‘지방(Fat)과 미네랄(Mineral)’에 주목하여, 발효를 통해 미네랄의 체내 흡수율을 극대화하고 필수 지질을 확보했던 선조들의 경이로운 조리 과학을 파고들고자 합니다.


    1. 전복 게우젓: 푸른 바다의 미네랄 결정체와 불포화지방산의 조화

    제주 바다의 깊은 영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전복의 내장으로 담근 ‘게우젓’입니다. ‘게우’는 전복의 내장을 뜻하는 순수한 제주어입니다. 역사적으로 제주의 ‘포작인'(해산물 채취하는 남성)과 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채취한 양질의 전복은 알맹이만 발라내어 잘 말린 건전복(乾全鰒)으로 만들어 왕실에 진상품으로 고스란히 바쳐져야만 했습니다. 정작 전복을 채취한 제주인들의 손에 남은 것은 보관이 까다롭고 쉽게 상하는 내장뿐이었지요. 이 아픈 진상의 역사와 결핍 속에서 태어난 눈물겨운 지혜가 바로 ‘게우젓’입니다.

    어린 시절,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신 동네 해녀 삼춘들이 건네주던 신선한 게우를 기억합니다. 그것을 천일염에 살짝 버무려 장독에 삭혀두다가 밥반찬으로 내어주실 때, 그 진한 녹색의 젓갈이 뿜어내던 바다의 풍미와 감칠맛은 어린 제 입맛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따끈한 보리밥 위에 게우젓 한 점을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지요.

    ‘제주전복’은 생태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맛의 방주’에 99호로 공식 등록되어 있습니다. 제주 청정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를 먹고 자라서 바다의 영양을 고스란히 응축해 낸 전복은 선조들에게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영양의 보고 그 자체였습니다. 전복의 영양 핵심은 살코기보다 오히려 독특한 녹진함을 품은 ‘게우(제주 방언, 전복의 내장)’에 몰려 있습니다.

    전복의 모든 영양소가 농축된 내장으로 담근 게우젓은, 토양과 식수만으로는 채우기 힘들었던 미네랄과 필수 영양소를 가장 활성화된 상태로 섭취할 수 있게 돕는 최고의 발효 과학이었습니다. 바다의 생명력을 인간의 생체 이용률로 전환해 낸 선조들의 경이로운 지혜가 이 작은 젓갈 한 종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이 귀한 제주전복의 영양학적 정수인 내장을 버리지 않고 발효 과학을 접목해 ‘게우젓’으로 재탄생시킨 지혜는, 원재료의 가치를 한층 더 극대화한 식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1) 해조류의 영양 응축과 ‘자기소화(Autolysis)’의 메커니즘

    과학의 관점에서 게우젓은 일반적인 식물성 발효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 핵심은 식재료 자체가 가진 효소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자기소화(Autolysis)’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복은 바다의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갈조류를 주식으로 삼아 성장하는 패류입니다. 이 때문에 전복의 내장(게우) 조직에는 거친 해조류의 섬유질과 성분들을 소화하기 위한 자체적인 소화 분해 효소들이 자연스럽게 밀집해 있는 생태적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소화 기관에 축적된 해조류 유래 무기질 성분 덕분에, 게우는 인체 대사 기능에 관여하는 아연(Zn), 철분(Fe), 구리(Cu) 등의 영양소를 풍부하게 품은 보고가 됩니다. 내장에 소금을 쳐서 삭히기 시작하면, 게우가 본래 품고 있던 자체 효소들이 활성화되면서 고분자 단백질 구조를 장에서 흡수하기 쉬운 저분자 상태로 해체하는 자기소화 공정의 첫 단추를 채우게 됩니다.

    실제 국립목포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논문인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복의 영양성분 비교 분석(2013)>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생화학적 사실이 드러납니다.



    (인용, 일부 발췌 수정)
    Table 3. 전복 육(살)과 내장의 미네랄 함량 비교 (단위: mg/100 g)

    부위전복 육(살코기)전복내장(게우)
    산지제주도제주도
    칼슘 (Ca)31.6846.74
    구리 (Cu)0.521.96
    철분 (Fe)3.8220.92
    칼륨 (K)65.66119.14
    마그네슘 (Mg)62.7284.72
    나트륨 (Na)529.12587.16
    인 (P)114.31159.44
    아연 (Zn)0.722.04

    (인용 끝)


    위 미네랄 분석 데이터(Table 3)는 왜 제주의 선조들이 전복의 살코기보다 내장을 영양의 정수로 취급했는지를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대변해 줍니다.

    인간의 혈액을 생성하고 빈혈을 예방하는 핵심 원소인 철분(Fe)의 경우, 제주산 전복 내장에는 살코기보다 무려 5.4배가 넘는 고농축 결정체(20.92 mg)가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체내 대사와 면역계 항산화 효소의 활성을 돕는 구리(Cu)는 3.7배, 아연(Zn)은 2.8배나 더 내장에 밀집해 있었으며, 화산섬 제주 땅에서 늘 결핍되기 쉬웠던 칼슘(Ca)과 영양 대사를 돕는 마그네슘(Mg), 인(P), 칼륨(K) 등의 무기질 전반이 살코기를 압도하는 강력한 영양의 밀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전복의 생태적 특성 덕분에 내장에 풍부하게 응축된 무기질 성분들은, 섬 지형 특성상 일상적인 식단에서 미네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던 제주인들에게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재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선조들은 이러한 내장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이를 버리지 않고 발효 과학과 결합하여 게우젓이라는 지혜로운 식문화를 완성해 냈던 것입니다.

    위의 같은 논문을 인용합니다.

    “전복 내장의 구성아미노산 함량은 93.16~127.02 mg/g이었으며 이는 전복 육(살코기)의 평균 145 mg/g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반면에 전복 내장의 유리아미노산 함량은 16.81~20.10 mg/g으로 전복 육의 7.90~10.59 mg/g에 비하여 2배 높은 값을 보였다.“


    여기서 ‘구성아미노산’은 단백질 덩어리 속에 단단히 묶여 있어 인간이 섭취했을 때 위장과 소장에서 소화 효소로 다 쪼개야만 비로소 흡수될 수 있는 ‘잠재적 영양소’를 뜻합니다. 반면 ‘유리아미노산’은 단백질로 묶이지 않고 세포액 속에 자유롭게 녹아 있어 혀에 닿자마자 강한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고 소화 과정 없이 몸에 즉시 흡수되는 ‘활성 영양소’입니다.

    즉, 총 단백질 덩어리(구성아미노산) 자체는 전복의 살코기가 내장보다 더 많지만, 몸에 즉시 흡수되고 깊은 맛을 내는 활성 유리아미노산은 내장이 살코기보다 무려 2배나 많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제주의 선조들이 행한 ‘발효(젓갈)’가 더해지면 놀라운 생화학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내장에 소금을 쳐서 삭히면, 게우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강력한 자체 소화 효소들이 삼투압 환경 속에서 활성화되어 내장 속에 묶여 있던 고분자 단백질 사슬을 스스로 다 끊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잠재적 영양소였던 구성아미노산들이 몸에 즉시 흡수되는 저분자 활성 유리아미노산으로 대량 전환되는 것입니다.


    2) 내염성 미생물 발효의 결합과 미네랄 흡수율의 극대화(Chelation 효과)

    자연 상태의 미네랄은 거친 무기질 형태여서 인간의 장벽을 통과해 흡수되는 비율(생체이용률)이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게우가 소금과 만나 삭혀지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자체 효소의 자기소화’와 동시에 ‘내염성 미생물에 의한 발효 작용’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소금 속에서 살아남은 특수한 유산균과 미생물들이 대사 과정에서 유기산을 분해·형성하고, 앞서 목포대 연구팀의 고증에서 드러났듯 살코기보다 2배나 풍부하게 녹아 있는 저분자 유리아미노산들이 무기질 미네랄 성분들과 결합하는 생화학적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처럼 발효 과정을 통해 생성된 천연 유리아미노산 성분들이 미네랄 입자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구조적 변화는, 미네랄이 인간의 장벽에서 보다 수월하게 수용되어 체내 생체 이용률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영양학적 기제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선조들은 게우젓이라는 발효식품을 통해, 신체 대사 기능과 방어 기제에 필요한 미네랄 성분들을 한층 더 효율적인 상태로 섭취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게우젓에 응축된 아연과 구리는 인체 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강력한 항산화 효소의 활성 유도체로 작용하여, 화산섬의 척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세포의 산화적 손상을 방어하는 핵심적인 생체 방어 기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3) 초저지방 식단의 단비, 필수 불포화지방산

    게우는 전복 살코기와 달리 지질(지방) 함량이 높은 편인데, 이 지질의 상당부분은 혈액 속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며 혈관 건강을 돕고 두뇌 기능에 필수적인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의 ‘전복의 영양성분을 비교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전복육의 지방산조성은 불포화지방산이 약 41%로 포화지방산 약 31%에 비하여 높았으며, 전복육보다 전복내장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이처럼 일상 식단에서 지방 섭취가 극도로 제한되었던 제주인들에게, 알싸하게 삭은 게우젓은 세포막을 구성하고 호르몬을 대사하는데 필요한 필수 지방산을 공급하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습니다.


    2. 자리젓: 척박한 화산재 땅의 칼슘 결핍을 메운 골격 영양학

    제주인들의 밥상에서 가장 친숙하면서도 영양학적으로 위대한 젓갈은 바로 ‘자리젓’입니다. 몸집이 작고 뼈가 단단한 자리돔을 통째로 소금에 삭혀 만드는 자리젓에는 섬 지형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하려는 선인들의 눈부신 생존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자리젓 냄새가 하도 고소해서 먹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어린 제가 먹기에는 단단한 가시가 거슬려서 조심스럽게 국물만 떠서 밥에 비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가시가 부드럽게 씹히기에 자리젓의 온전한 맛을 느끼며 먹게 되었습니다.

    자리젓의 원재료인 자리돔은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향토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맛의 방주 59호 ‘자리돔’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인들은 이 자리돔을 통째로 삭히는 발효 과정을 통해 단단한 뼈를 연화시키고 칼슘 성분의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지혜로운 식문화를 완성해 냈습니다.


    1) 화산재 토양의 한계와 칼슘 결핍의 극복

    현무암과 화산재로 덮인 제주의 토양은 물과 함께 미네랄을 쉽게 흘려보내는 물리적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 땅에서 자란 채소나 곡물은 육지의 것에 비해 칼슘 함량이 태생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으며, 식수를 통해서도 미네랄을 충분히 보충하기 어려웠습니다. 선조들은 이 고질적인 칼슘 결핍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려 뼈째 삭혀 먹는 자리젓,멜젓이라는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특히 원재료인 자리돔은 몸집에 비해 뼈가 매우 억세어서 생으로 섭취할 때는 반드시 뼈를 추려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물론 자리돔을 뼈째 먹는 문화가 있었지만, 단단한 생선 뼈의 주성분인 인산칼슘 구조는 무기질 결정을 이루고 있어 단독으로 섭취할 때 인간의 장벽에서 일어나는 소화 흡수율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척박한 화산섬 지형 특성상 일상적인 식수와 채식에서 활성 미네랄을 충분히 얻기 어려웠던 제주인들에게, 생선 뼈 속 칼슘의 생체 이용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영양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의 선조들은 두 가지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첫째는 날것으로 먹는 자리물회에 ‘식초(초산)’를 결합하여 산성 환경을 만들어 뼈를 부드럽게 녹여내고 칼슘의 용해도를 높인 조리 과학이며, 둘째는 오랜 시간 소금에 삭혀 먹는 ‘자리젓’의 발효 과학입니다. 선조들은 고질적인 미네랄 결핍 환경에 굴하지 않고, 뼈째 삭히는 과정에서 인산칼슘 구조가 저분화되어 흡수율이 극대화되는 자리젓을 통해 연중 사시사철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천연 칼슘 보완책을 완성해 냈습니다.


    2) 유기산 발효를 통한 골격 연화와 천연 활성 칼슘 전환

    인간의 소화계가 쉽게 흡수할 수 없던 자리돔과 멜의 단단한 무기질 결정 구조는, 소금에 절여 장기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화학적 반전을 맞이합니다.

    학계의 전통 수산발효 연구 고증에 따르면, 젓갈이나 식해와 같은 전통 어류 발효 식품들은 숙성 과정에서 자생하는 젖산균(유산균)들과 미생물들이 대사산물로 천연 유기산을 지속적으로 뿜어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산성 환경의 조성이 단단한 생선 뼈의 조직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연화(Softening) 작용’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잘 삭은 자리젓이나 멜젓을 입에 넣었을 때 억센 뼈가 이물감 없이 부드럽게 씹히는 비결이 바로 이 수산발효 고유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효 과정을 통해 딱딱한 뼈가 부드러워져 온전히 섭취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체내 흡수가 어려웠던 무기 칼슘 성분들이 장벽에서 한층 수월하게 수용될 수 있는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재로 거듭났던 셈입니다.

    이처럼 발효 과학을 거치며 섭취와 흡수가 용이한 형태로 전환된 천연 칼슘과 인 성분들은, 섬 지형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한 식수나 농작물을 얻기 힘들었던 제주인들에게 일상 속에서 결핍되기 쉬운 무기질을 지속적으로 채워주는 든든한 영양학적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본래 우리 전통 젓갈의 본질은 어패류를 염장한 후, 재료 내부의 자가 소화효소와 미생물의 작용을 동시에 활용해 육질과 뼈를 완전히 분해해 내는 고도의 생체 이용률 극대화 공정입니다.


    멸치 젓갈 등전통 수산발효식품에 관한 공인 연구에 따르면, 염장 숙성 과정을 거치며 단백질이 해체되면서 소화 흡수가 용이한 저분자 유리아미노산이 현저히 증가하게 됩니다. 자생한 유익 젖산균(유산균)들은 장내 환경을 산성화하여 식중독균 등 유해 세균의 증식을 강력하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장 점막의 면역 시스템 기능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서의 탁월한 생리활성 효능을 발휘합니다.

    더욱이 이들 자생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뿜어내는 특수한 대사산물들은 체내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 젓갈은 단순한 염장 저장식을 넘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옛 선조들의 장내 면역 장벽을 지키고 신체 활력을 유지해 주었던 지혜로운 면역 영양식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제주대학교 대학원 신은영의 연구 논문 《동굴숙성 제주 전통젓갈의 미생물 특성연구(2007)》에 따르면, 전통 방식대로 삭혀낸 제주의 자리돔젓 등에서는 전복이나 생선의 자체 소화효소뿐만 아니라, 분리 균주의 무려 67%(300균주 중 200균주)에 달하는 강력한 단백질 분해 활성 미생물들(Bacillus subtilis 등)이 공존하며 숙성과 구조 해체를 주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불어 전통 젓갈 발효 과학의 경이로움은 단순히 영양소의 저분화와 흡수율 극대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국식품과학회지에 발표된 임은서 연구팀의 학술 고증 《멸치 젓갈로부터 분리된 젖산세균의 프로바이오틱 특성 및 안전성 평가(2016)》에 따르면, 젓갈 속 자생 유산균들은 강력한 위산(pH 2.0~3.0)과 거친 쓸개즙의 공격을 견뎌내고 살아서 장까지 도달할 뿐만 아니라, 장벽 상피세포에 단단히 부착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기구(FAO)가 정한 ‘인체에 유익한 프로바이오틱스’ 균주로서의 필수적인 기본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결과입니다. 더불어 이 유산균들이 항균 물질이면서 유전적 돌연변이나 독성 물질 유발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유익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젓갈 속 미생물들은 외부 유해 잡균의 침입을 원천 차단하는 정교한 생물학적 방제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농업생명공학연구원 윤상홍 연구팀의 논문 《한국 전통젓갈에서 분리한 Bacillus subtilis JKK238 균주 유래 세 종류 Lipopeptide의 분리 및 특성(2005)》에 따르면, 젓갈 속 자생 고초균들은 발효 과정에서 폭넓은 항생능을 지닌 ‘이투린(iturin)’, ‘서팩틴(surfactin)’, ‘펜지신(fengycin)’, ‘프리파스타틴(plipastatin)’ 등의 강력한 천연 항균 물질(Lipopeptide)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냅니다. 이 천연 항균 물질들은 외부 유해균의 세포막을 즉각 해체하여 젓갈 내부의 안전성을 완벽히 지켜내며, 나아가 식중독 유해균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저해하여 장내 환경을 방어합니다.

    특히 실험실 내(in vitro) 검정 결과, 면역 저하자에게 치사율이 높아 치명적인 식중독균으로 분류되는 리스테리아(Listeria monocytogenes)에 대해 매우 강력한(+++) 억제 활성을 나타냈으며, 일상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대표적 식중독 원인균인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의 증식 또한 효과적으로 저해(+)했습니다.

    유전적 독성이 없는 안전한 유익균들이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자생 고초균이 천연 방제 물질을 내뿜어 완성한 이 위대한 발효식품은, 척박한 화산섬에서 거친 노동을 견뎌내야 했던 제주 선조들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되살리고 면역 시스템을 뒷받침하던 최고의 생명선이었던 셈입니다.


    3. 멜젓: 제주재래돼지와 멜의 만남, 지질(Fat) 대사와 아미노산의 시너지 과학

    고향 마을은 바닷가 가까이에 접해 있습니다. 어렸을 적 가끔씩 “멜(멸치) 들어 왔수다~” 하고 누군가 소리치면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농사 짓던 일손을 멈추고 양손에 양동이며 소쿠리 등을 들고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바닷가로 달려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희 마을 포구 밖 입구 쪽 바다에 원담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원담은 폭과 높이를 약 1m 정도가 되도록 돌담을 큰 원을 그리며 듬성듬성 쌓아 둔 것을 말합니다. 밀물 때에 몰려 온 물고기들이 썰물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만든 일종의 거대한 돌담 그물이라 하겠습니다.

    멜(멸치)은 크게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 무리가 일단 원담 안에 갇히면 그 양 또한 엄청납니다. 썰물이 빠져나간 원담 바닥 위에서 엄청난 살짝 푸른 빛을 띤 은빛 멸치 무리들이 펄떡이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구니를 대고 쓸어 담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 양이 워낙 많기에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소리치며 모여들어 큰 바구니 등에 마구 쓸어 담아도 미처 다 챙기지 못할 정도일 때도 꽤 있었습니다. 어차피 다 담아 오지 못하면 밀물에 도로 사라지게 되므로 온 동네에 소문을 내며 빨리 주으라고 서로 챙겨주었던 것입니다. 멜은 원래 지방질이 많아서 바로 소비하지 않으면 상하기 쉬웠습니다. 워낙 많이 주워 운 멜을 보관하는 방법은 즉시 젓갈로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멜을 사 먹기보다 원담 안에서 주워 와서 먹은 게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식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없애 버렸기에, 사라진 원담은 이제 그저 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항상 진한 아쉬움 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 식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조리 과학적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멜젓(멸치젓)’입니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대부분의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식당에서 멜젓을 당연하다는 듯이 상차림에 기본으로 나옵니다.

    봄철 제주 바다를 가득 메우던 큰 멸치(멜)를 삭혀 만든 멜젓은, 특히 제주의 상징이며 맛의 방주 25호 등록된 ‘제주재래돼지’와 만나면 강력한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를 통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제주 특유의 돔베고기 문화와 돋보이는 지질 대사 과학을 완성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러한 멜젓의 독보적인 분해 능력은 또 다른 독창적인 향토 자산인 ‘맛의 방주’ 117호 ‘제주 수애’와 만났을 때도 빛을 발합니다. ‘수애’는 제주방언으로 ‘수웨’라고도 불렀으며 전통적 제주식 순대입니다. 수애는 돼지피에 보리가루와 메밀가루를 섞고, 잘게 썬 소량의 부추 등 야채와 함께 약간의 다진마늘과 다진쪽파, 생강, 소금, 후추 등을 넣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 후에 돼지 내장에 넣어서 만듭니다.


    성장하여 육지부에 처음 갔을 때 접한 당면 순대는 유년 시절 늘 먹어왔던 고향의 순대와 그 형태와 맛이 너무나도 달라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돼지 내장 한쪽 끝에 깔때기를 끼워 신선한 돼지피를 집어넣고 실로 묶어 가마솥에서 도새기를 삶은 진한 국물에 몸국을 끓이기 직전에 먼저 끓여내던 생생한 가택 도축의 풍경을 수없이 목격하며 자랐기에, 당연히 모든 순대는 제주의 전통 수애처럼 선지를 중심으로 속을 묵직하게 채웠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찌는 방식의 낯선 육지식 순대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쌀이 귀한 환경에서 선지의 점성을 잡기 위해 메밀가루를 섞고 채소 고명과 함께 속을 채워 빚어낸 묵직한 고단백의 제주 수애는 자칫 장내에서 소화 대사가 더딜 수 있으나, 발효된 멜젓의 풍부한 아미노산과 분해 효소들이 수애의 단백질 구조를 부드럽게 연화시키고 영양 성분의 체내 흡수율을 극대화하는 보완적 대사 과학을 훌륭하게 수행해 냅니다.


    1) 지방 분해 효소와 지질 대사의 활성화

    제주의 선조들이 삶은 돔베고기나 구운 돼지고기를 먹을 때 반드시 멜젓을 곁들이거나 불판 위에 멜젓을 자작하게 끓여 찍어 먹었던 풍습은 인체 소화 과학의 정수입니다. 잘 삭은 멜젓의 국물 안에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뿜어낸 강력한 단백질 분해 효소인 프로테아제와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가 고농축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조리 과학적으로 멜젓 속의 프로테아제는 돼지고기 특유의 단단한 단백질 섬유를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상태로 사전 분해하여 위장관의 소화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와 동시에 강력한 리파아제 성분은 돼지 지방의 트리글리세라이드 구조를 유기산과 모노글리세리드로 빠르게 가수분해합니다. 기름진 돼지 지방이 위장에 들어가기 전 멜젓의 효소들이 일차적으로 지질 구조를 미세하게 쪼개어 소화 불량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전 분해 작용은 포화지방산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장내에서 더부룩함이나 가스를 유발하는 부담을 줄여줍니다. 즉, 멜젓의 천연 리파아제는 지방을 우리 몸이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빠르게 전환시켜, 기름진 고기를 섭취할 때 발생하기 쉬운 소화기계의 부담을 자연스럽게 덜어주는 훌륭한 영양학적 보완 역할을 합니다.


    2) 불포화지방산 필수 아미노산의 영양학적 상보성

    등푸른생선인 멜(멸치)의 핵심 영양소는 풍부한 핵산(Nucleic acid), 그리고 오메가-3 계열인 EPA와 DHA를 다량 함유한 양질의 지질입니다. 이 불포화지방산들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발효된 멜젓은 돼지고기의 포화지방이 혈관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불포화지방산을 공급해 주며, 돼지고기 단백질과 미생물 발효 단백질이 만나 아미노산의 영양학적 상보성(서로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효과)을 완벽하게 완성합니다.


    6-3회 맺음말: 바다의 지혜가 완성한 영양학적 균형

    결국 제주의 게우젓, 자리젓, 멜젓은 단순히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나 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화산 섬이 지닌 미네랄의 결핍을 바다의 유기물로 메우고, 초저지방 식단 속에서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지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미생물의 발효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급받았던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습니다.

    바다의 영양을 옹기 속 미생물 발효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흡수 형태로 변환시킨 선조들의 지혜는, 영양 과잉과 미네랄 불균형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식단에 깊은 과학적 메시지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6-3회 연재를 통해 제주의 바다가 선물한 게우젓, 자리젓, 멜젓 속 ‘발효 미생물과 양질의 지질, 그리고 고칼슘의 영양학’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어지는 다음 제6-4회 연재에서는 이번 단백질과 미네랄 식문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제주의 독창적인 ‘천연 약용 보존 과학: 꿩엿과 뎅이주 약엿’의 세계로 찾아갑니다.

    겨울철 부족한 영양을 당(Sugar)의 힘을 빌려 상하지 않게 묶어두었던 선인들의 지혜와, 기침을 멎게 하던 뎅이주 껍질 속 약리 과학을 저의 생생한 유년 시절의 따뜻한 추억과 흥미로운 의학적 데이터와 함께 풀어내겠습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우리말샘, 제주방언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대한민국 맛의 방주

    * 류순호, 송관철, “제주도의 토양과 농업자원: 제주도 토양의 분류와 특성 및 관리 문제”, 제주도연구(제주학회), 제8집, 1991, pp. 42-58.

    * 이정뢰, 보섭, 강성국,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복의 영양성분 비교 분석”,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제20권 제4호, 2013, pp. 441-450.

    * 신은영, “동굴숙성 제주 전통젓갈의 미생물 특성연구” (2007) 제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 임은서·김영목·이은우, “멸치 젓갈로부터 분리된 젖산세균의 프로바이오틱 특성 및 안전성 평가”, 한국식품과학회지, Vol. 48, No. 4, pp. 306~316 (2016)

    * 윤상홍, 김정봉, 임융호, 홍성렬, 송재경, 김삼선, 권순우, 박인철, 김수진, 여윤수, 구본성, “한국 전통젓갈에서 분리한 Bacillus subtilis JKK238 균주 유래 세 종류 Lipopeptide의 분리 및 특성”,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지, 제33권 제4호, 2005, pp. 291-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