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의 해안선을 따라 올레길이나 바닷가 갯바위를 걷다 보면, 조간대(潮間帶) 얕은 바당 한가운데에 반원형이나 말발굽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검은 돌무더기를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됩니다. 제주 바다를 단순히 에메랄드빛 풍경으로만 소비하는 외지인의 눈에는 그저 파도에 밀려와 쌓인 갯바위 무더기나, 과거 누군가 밭을 일구다 나온 잡석을 바다에 버려둔 흔적쯤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친 바다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해 온 탐라 토박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돌무더기는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굶주림과 척박함 속에서 섬사람들이 자연과 맺었던 가장 거대하고도 정교한 생존의 계약이자, 현대 토목공학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유체역학적 걸작, 바로 ‘원담’입니다.
육지에서는 바다에 발(대나무나 싸리나무로 엮은 발)을 쳐서 고기를 잡던 어살이나, 서남해안 갯벌에 돌을 쌓아 고기를 가두던 석방렴(石防簾)이라는 한자어로 익숙할 것입니다. 석방렴(石防簾)의 뜻은 돌 석(石), 막을 방(Defense, 防), 발 렴(Curtain, 簾) 자를 써서 “돌로 방어벽(담)을 쌓아 만든 그물(발)”이라는 뜻의 원시적 어로 장치를 총칭하는 한자어입니다.
그러나 제주의 원담은 펄이 가득한 갯벌에 세워진 육지의 ‘독살’, ‘돌살’, ‘독새’, ‘돌발’ 등과는 근본부터 태생을 달리합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펄 바닥과 달리, 제주는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형성된 날카로운 빌레(용암 암반)와 거친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한겨울이면 살을 에는 북서풍이 몰아치고, 여름이면 집채만 한 태풍의 너울이 해안가를 강타합니다. 나무 기둥 하나 바닥에 박기 힘든 이 험난한 용암 바당 위에서, 제주의 선조들은 시멘트나 진흙 한 줌 쓰지 않고 오직 깨진 현무암 덩어리만을 맨손으로 맞물려 수백 년을 버티는 돌그물을 짰습니다.
그물 한 뙈기를 짜려면 삼베실이나 무명실이 귀해 엄두를 못 내고, 쇠붙이 바늘 하나조차 육지에서 쌀을 주고 바꿔와야 했던 결핍의 시절이었습니다. 깊은 먼바다로 노를 저어 나갈 튼튼한 어선을 지을 재목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선조들은 한탄하는 대신, 매일 바다를 당겼다 밀어내는 달과 태양의 인력, 그리고 바닷물이 돌 틈을 스쳐 지날 때 발생하는 유체역학적 에너지의 차이를 간파했습니다.
엔진도, 나일론 그물도, 사람의 고된 팔심도 빌리지 않고 오직 지구의 물리적 자전과 행성의 인력만을 이용해 하루 두 번 바다가 차려주는 천연 밥상을 거두어들였던 지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원담의 숨겨진 물리학입니다.
1. 조석 간만을 이용한 ‘에너지 제로’의 어로 메커니즘
원담의 사냥법은 인류가 발명한 모든 어로 기술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가장 완벽한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연 현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자연 스스로 수행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들물)이 차오르면 먼바다의 찬 해류와 연안의 얕은 바닷물이 뒤섞이며 풍부한 부유 플랑크톤이 일어납니다. 이를 먹기 위해 멜(멸치), 숭어, 각재기(전갱이), 자리돔, 농어, 심지어 감성돔에 이르는 수많은 어군이 얕은 조간대 연안으로 물결을 타고 떼 지어 밀려듭니다.
1) 들물의 관성과 먹이사슬의 유인
이때 원담의 돌벽은 이미 만조의 바닷물 밑으로 깊숙이 잠겨 버립니다. 물 위에서는 담의 존재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물속의 고기들에게도 그것은 그저 조류를 막아서지 않는 평범한 여(암초)의 턱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물고기들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물길의 관성을 따라 원담 안쪽 너른 바당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합니다.
2) 썰물의 차려준 자연밥상
만조를 지나 썰물(날물)이 시작되는 순간, 바다의 에너지 흐름은 180도 뒤집힙니다. 연안을 가득 채웠던 수천 톤의 바닷물이 조석 주기에 맞춰 다시 수평선 먼바다 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물고기들은 수위가 낮아지고 수압이 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몸을 돌려 외해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담의 물리적 트랩이 작동합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수면 아래 숨어 있던 검은 현무암 능선이 서서히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은 자연스러운 중력과 유체 성질에 의해 현무암 돌과 돌 사이의 미세한 틈새를 통해 거침없이 바깥으로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일정한 체격을 가진 물고기들은 이 좁은 암석의 틈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외해로 이어지는 유일한 탈출로라고 여겼던 물길이 검은 돌벽에 가로막히는 순간, 물고기들은 혼비백산하여 담 안쪽을 맴돌게 됩니다.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제때를 기다려 바구니와 족대를 들고 마른 바닥을 걸어 내려간 것뿐입니다. 거대한 배를 띄우지도 않았고, 그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정 수십 명이 땀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지구와 달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천체 물리학적 낙차 에너지가 물고기를 제 발로 함정 한가운데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2. 접착제 없는 건식 석축: 파도를 견디는 다공질 현무암의 감압 공학
1) 100% 현무암 축조
육지의 독살이나 석방렴은 돌담 사이에 대나무 발을 꽂거나 갈대를 엮어 보완하기도 하지만, 제주의 원담은 거친 바다 환경을 견디기 위해 오직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만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만듭니다.
원담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현대의 토목 기술자들이 가장 경악하는 지점은 바로 ‘결합재의 완전한 부재’입니다.
시멘트 몰탈은 고사하고 흙 한 줌 채워 넣지 않은 채, 오직 거친 돌을 맞물려 쌓아 올린 ‘외담’ 혹은 ‘접담’ 구조가 수백 년 동안 수천 번의 태풍과 거센 너울을 맞고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2) 콘크리트 옹벽의 치명적 결함과 파압(Wave Pressure)
현대식 항만 공사에서 흔히 쓰이는 매끄러운 콘크리트 직립 방파제는 파도가 부딪힐 때 엄청난 충격 압력(파압)을 벽면 전체로 정면 흡수합니다. 수면을 때리는 파도의 에너지가 분산될 통로가 없기 때문에, 제방 밑바닥이 세굴(Scour)되거나 단 한 번의 강력한 너울성 파도에도 벽체 자체가 통째로 전복되거나 금이 가며 터져 나갑니다.
만약 옛 선조들이 원담을 틈새 하나 없이 빽빽하고 매끄러운 석벽으로 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조 때 밀려드는 조류의 수압과 태풍 때 몰아치는 수십 톤의 파도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 한 해 여름을 넘기지 못해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3) 다공질 현무암과 무수한 공극(pore space)의 유체 분산 효과
선조들은 거친 바다와 정면으로 힘겨루기를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선 「제3회 제주 돌담의 물리학: 구멍 숭숭 뚫린 돌담이 태풍을 이겨내는 원리」에서 살펴본 ‘바람을 흘려보내는 원리’를 바다로 가져와, 파도의 충격을 스스로 분산시키는 다공질 투수성 석축(Permeable Breakwater)을 완성해 냈습니다.
① 감압 밸브로서의 틈새
원담을 쌓은 현무암은 그 자체로 기포가 숭숭 뚫린 다공질 암석일 뿐만 아니라, 돌과 돌이 만나는 지점마다 주먹만 한 공극(빈틈)들이 무수히 얽혀 있습니다. 거센 파도가 원담을 들이치는 순간, 파도의 수괴(물덩어리)는 단단한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 틈 사이로 빨려 들어갑니다.
② 미세 와류 형성을 통한 파괴 에너지 감쇠
틈새로 쏟아져 들어간 바닷물은 암석 내부의 불규칙한 미로 속에서 수만 갈래의 미세한 와류(소용돌이)로 쪼개집니다. 물과 물이 서로 부딪히고, 거친 현무암 표면과 마찰하면서 파도가 가지고 있던 거대한 운동 에너지는 급격히 상쇄되어 열에너지와 거품으로 흩어집니다.
③ 자가 안정 구조(Self-stabilizing Structure)
밑바닥에는 성인 서너 명이 겨우 굴릴 수 있는 거대한 ‘굽돌(기초석)’을 용암 빌레의 홈에 맞춰 깊숙이 박아 넣었습니다. 그 위로 갈수록 점차 작은 돌을 올리되, 돌들의 무게중심이 안쪽으로 쏠리도록 쐐기돌을 물려 쌓았습니다. 파도가 칠 때는 돌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마찰력으로 충격을 흘려보내고, 물이 빠지면 중력에 의해 제자리로 더 꽉 맞물려 내려앉는 경이로운 자가 복원 메커니즘을 완성한 것입니다.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의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는 무저항의 물리학, 그것이 시멘트 한 톨 없는 원담이 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핵심입니다.
3. 원담의 해부학: 파도를 흘리고 어군을 가두는 3대 구조적 설계
언뜻 보면 바닷가에 돌을 대충 둥글게 둘러쳐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원담은 조류의 방향, 바닥 지형의 고저 차, 그리고 어종별 회유 습성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구역별로 각기 다른 기능을 부여한 고도의 구조체입니다.
1) 원담의 축조 방향: 파도를 빗겨 치는 곡률의 미학
원담의 전체적인 외형은 바다 쪽을 향해 완만하게 둥근 활(弓) 모양이나 반대방향의 V형 또는 말발굽 형태의 곡선을 그립니다. 이는 파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혜로운 축조방식이었습니다. 직선으로 쌓은 제방은 조류를 직각으로 받아 저항이 극대화되지만, 유선형의 완만한 곡선 담은 밀려드는 파도를 양옆 해안가로 미끄러지듯 유도하여 흘려보냅니다. 또한 썰물 때 물고기들이 직선 벽을 따라 탈출구를 찾는 대신, 둥근 곡선을 따라 맴돌다 담 중심부로 유인되도록 만드는 유도벽 역할을 수행합니다.
2) 웅덩이 설치: 어류의 피난 본능을 역이용한 최종 집수지
원담 내부 바닥을 살펴보면 수평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다 쪽에 가장 가깝고 수심이 가장 깊숙하게 파인 핵심 웅덩이를 만들어 둡니다.
간조가 가까워져 원담 내부의 바닷물이 대부분 빠져나가고 자갈과 모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물고기들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본능적으로 물이 남아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웅덩이를 찾아 몸을 숨기려 드는데, 그곳이 바로 최종 그물의 적재창이 됩니다.
결국 수백 평에 달하는 원담 내부로 들어왔던 고기들이 썰물이 완전히 끝나는 시점에는 단 몇 평 남짓한 웅덩이 안으로 한데 밀집하게 됩니다. 어부들은 굳이 넓은 바다를 헤맬 필요 없이, 마침내 이 웅덩이에 빽빽하게 모여든 고기를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3) 원담의 돌 틈새: 어군의 패닉을 막는 점진적 감압 배수
원담은 밀물 때 담 전체가 물속에 완전히 잠겨 어군이 담 위를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유도합니다. 이후 썰물이 시작되면 별도의 인공 문을 닫지 않아도, 수위가 낮아지면서 담 위쪽이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나 물고기의 퇴로를 자연스럽게 차단합니다.
이때 원담의 일부 낮게 트인 물목과 현무암을 메운 돌 틈은 물만 서서히 빠져나가게 하는 거대한 천연 필터 역할을 합니다. 물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지 않고 완만하게 빠져나가도록 유속을 분산시킴으로써, 갇힌 어군이 급격한 조류 변화에 놀라 담 밖으로 튀어 넘는 것을 방지하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원안의 깊은 웅덩이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만드는 정교한 생태적 설계였습니다.
4. 원계(圓契)와 멜 바당: 제주 공동체를 지탱한 수눌음의 사회학
원담은 단순한 토목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화산섬에서 피를 나눈 가족을 넘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단단한 생명 공동체로 묶어주었던 사회적 제도이자 규범이었습니다.
1) 사유화를 거부한 수눌음의 노동
바다 밑바닥에서 집채만 한 현무암 굽돌을 파내어 물길을 잡고 담을 쌓는 일은, 개인이나 한두 가구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게를 질 수도 없고 우마차도 들어올 수 없는 갯바위 밭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바위를 굴리고 맞추는 일은 마을 장정 수십 명이 굵은 밧줄을 걸고 호흡을 맞추어야만 가능한 중노동이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 원담 한쪽이 터져 나가면,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짚줄과 괭이를 들고 바당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거대한 공동 노동을 제주에서는 ‘수눌음’이라 불렀고, 이를 위해 조직된 마을 자치 조직이 바로 ‘원계(圓契)’였습니다.
2) “멜 들엇저!” 외침소리와 함께 열린 나눔의 축제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제주 연안으로 은빛 멜(멸치) 떼가 새까맣게 밀려드는 날이면 마을 망루에 섰던 ‘원지기’ 삼촌이 갯바위를 울리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원담에 멜 들엇저! 양동이영 구덕 들엉 ᄆᆞᆫ딱 바당더레 ᄃᆞᆯ리라!”
“(원담에 멸치 들었다! 양동이랑 바구니 들고 모두 바다로 달려라!)”
※ 안내: ‘ᄆᆞᆫ딱’, ‘ᄃᆞᆯ리라’는 아래아(ㆍ)가 쓰인 제주어 표기이며, 실제 현지 구어 발음은 현대 한글로 ‘몬딱’, ‘돌리라’에 가깝습니다.
웅덩이에 물이 무릎 정도까지 빠지면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족대와 구덕(대나무 바구니)을 든 어른들이 웅덩이로 뛰어들어 은빛 멸치를 바가지째 퍼 올렸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거두는 손길에는 엄격한 질서와 도덕이 있었습니다. 원계를 구성하는 지분(원담을 쌓을 때 보탠 노동력의 몫)에 따라 몫을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의 룰’이 철저하게 작동했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지분이 없는 홀어머니 가정, 물질을 못 하는 노인, 장애를 가진 이웃의 몫을 먼저 바구니에 담아 챙겨준 뒤에야 계원들의 분배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원담은 누군가의 부를 독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마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바다가 베푼 생명을 골고루 나누는 자비로운 배분의 식탁이었습니다.
3) 어린 치어를 살려 보낸 생태 어로의 철학
오늘날 나일론 그물망은 바다 밑바닥을 긁어 어린 치어까지 싹쓸이하지만, 조상들의 원담은 결코 바다의 씨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굵기만 한 틈새를 둔 돌벽은, 덩치 큰 어미 물고기만을 인간의 양식으로 남기고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새끼 물고기들은 썰물과 함께 유유히 바다로 빠져나가도록 허용했습니다.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도 다음 해, 다음 세대의 풍요를 남겨두었던 지혜. 원담의 돌 틈새는 인간의 탐욕을 걸러내던 가장 숭고한 도덕적 필터였던 것입니다.
5. 원담의 이름들
제주대학교 정광중 교수에 따르면 (제주일보, ‘원담, 신이 내린 황금그물…공동체문화의 상징’ 인용)
“원담의 이름은 ▲주변의 바다나 가까운 육지 지명을 빌려 사용한 새배원과 산밧알원 ▲원담의 위치와 지형 등에 따라 지어진 앞원, 멀원, 코지원, 빌레원, 뒷개, 코지웃개, 코지알개 ▲잘 잡히는 어종에 의해 붙여진 멜캐, 숭어원, 멍개원 ▲사람 이름을 빌린 이선달개, 홍건이개 ▲생긴 모양을 빌린 도고리원과 곱은원, 크기를 나타내는 큰원과 족은원, 축조 시기를 나타내는 새개, 원담 안의 상태를 나타내는 모살원과 돌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6. 필수 제주어 어휘 및 현장 용어 해설
1) 원담: 해안가 조간대에 둥그렇게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가두어 잡는 제주의 전통 돌그물이며, 마을에 따라 ‘원’ 또는 ‘개’나 ‘갯담’이라고도 부릅니다. 원은 울타리를 뜻하는 원(垣)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개’는 해변 후미진 곳의 이름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다만, 인공적으로 축조하지 않고 천연으로 이루어진 돌담은 ‘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개 바다 밑바닥이 주변 지형보다 약간 낮은 곳을 활용하며, 그 지형에 따라 높이 약 1~1.5m, 폭 1~2.5m 정도로 담을 쌓았으며, 파도의 영향을 덜 받도록 안쪽은 높게, 바깥쪽은 약간 낮게 비스듬히 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조간대(潮間帶): 만조 때의 해안선과 간조 때의 해안선 사이의 영역. 물이 들면 잠기고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가 갯바위 지대입니다.
3) 여: 바닷가 바닥이 얕거나 썰물 때 물 위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바위나 돌 따위, ‘여을’, ‘여의’, ‘여흘’이라고도 부릅니다.
4) 빌레: 넓적하고 평평하게 펼쳐진 암반 지대입니다.
5) 갯도: 원담의 역할을 하면서 한편 배가 포구로 들어올 때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뱃길입니다.
6) 굽돌: 담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전체 하중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초 암석입니다.
7) 멜: 제주 바다에서 대량으로 회유하는 멸치의 제주어 명칭이며, 제주 전통 식문화(멜국, 멜튀김, 멜젓)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 어종입니다.
8) 수눌음: 제주 특유의 상부상조 품앗이 문화. 힘든 농사일이나 바다 일, 돌담 쌓기 등을 마을 공동체가 서로 돌아가며 무상으로 돕던 노동 연대입니다.
9) 원계(圓契): 원담을 축조하고 보수하며, 어획물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관리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결성했던 자치 규약 조직입니다.
7. 고향 마을 바닷가 원담의 추억

(사진: 원담(돈물원)이 있던 곳)
내 고향 마을 신엄리의 바닷가 지명인 ‘남또리(남ᄃᆞ리)’에는 ‘남또리포구’(현 고내리포구)가 있고, 포구 입구 한편 바닷가 방향에는 ‘돈물원(ᄃᆞᆫ물원)’, ‘남또리개’라 불리는 커다란 반원형의 원담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원담의 전체 길이는 100여 m가 넘었는데, 원담 내부 바닥은 모래이나 곳곳에 작은 자갈들과 조금 큰 돌멩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 돌을 뒤집으면 낙지가 꽤 잡히기도 했습니다.
근처에는 ‘볼레낭기정’(보리수나무가 있는 절벽이라는 뜻)이란 높은 절벽 밖의 바다를 ‘석주와당’(석주바당)이라 불렀고, 그 안쪽 양쪽으로 여가 있었으며 그 중 가운데 깊은 곳에 원담을 끼고 뱃길이 열려서 자연스레 포구의 여건을 갖췄는데 이 부분의 원담이 갯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추억을 부르는 그리운 명칭들입니다.

(사진: 남또리물)
이곳 여의 안쪽 바닷가에는 용천수인 ‘남또리물’이 있습니다. 여름에 밀물 때는 이곳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고, 썰물이 되면 차가운 용천수를 손바닥으로 떠서 마시고, 그 물에 짠물에 젖은 몸을 헹구기도 했습니다. 저의 고등학생 시절, 한여름에 며칠간 공동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파도에 의한 포구의 손상을 막기 위해 입구 쪽 바닷가를 메우고, 일부 파손된 원담도 보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도 부친 대신 참여해서 육지에서 큰 돌을 날라서 테우(제주식 뗏목)에 실은 후 포구 앞쪽 바닷가에 떨어뜨리는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여서 무거운 돌을 들고 테우에 싣는 힘든 작업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하루는 바닷물에 젖은 테우가 미끄러워서 그만 큰 돌을 가슴에 안은 채 테우에서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순간 돌이 테우에 걸린 채 저만 바다로 떨어지는 바람에 바위에 턱을 크게 부딪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받았는데, 결국 앞니 세 개가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에는 시내에 가서 치료할 여건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견디느라 몇 년 고생하다가 나중에야 시내 치과에서 치료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혹 원담에 멜이 들면 온 동네 사람들이 서둘러 모여서 흥분된 마음으로 일제히 모여들어 멜을 잡던 기억 역시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동창들과 술자리를 하던 자리에서 그 원담이 포구 개발이란 명목으로 2001년 경에 철거하여 그 원담을 포구 축조에 활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서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앞니를 세 개나 상하면서 관리하던 그 원담을 철거했다니, 더욱이 그 지역이 이웃마을인 고내리에 속하게 되어 어릴 때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관리하던 포구 이름마저 이웃마을 지명으로 바뀌었다니 더욱 속상하였습니다. 과연 철거가 동네 개발에 도움을 주었을까? 오히려 그냥 두었을 때의 그 가치가 훨씬 더 크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고향 친구들에게 피력하며 철거를 주도한 당시 마을 이장의 근시안적 행정에 큰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분노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오랜만에 현장을 찾았더니 원담은 사라지고 포구의 방파제를 넓혀서 그 위로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모습이었고, 남또리물은 시멘트로 넓게 둘러서 안내문을 설치해 둔 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존하겠다고 시멘트로 둘렀는지 황당한 생각이 들었고, 덩치 큰 현무암 자연석 등 원형이 모두 사라진 곳은 시멘트 시설만 눈에 띄어 제 눈에는 이미 그 가치가 영원히 사라진 듯 싶었습니다. 이것은 보존이 아니라 완전 훼손이라는 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복원이 될 수 없기에 영영 사라져 버린 그 원담과 남또리물의 원형이 마냥 그립습니다.
8. 맺음말: 검은 돌담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김동전 외, 『제주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연구』(제주학연구 51,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2018)에 따르면,
“‘원’은 돌 많은 섬에서 돌로 담을 쌓고 물길을 따라 밀려든 고기를 가둬놓고 잡는 ‘돌그물’이라 할 수 있다. 집어등을 밝히고 들망으로 먼바다에서부터 고기를 잡아버리는 어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가 마을의 원들은 원래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기떼가 몰려들지 않아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제주의 해안가에는 약 260여 개의 원담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안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대형 어선들이 디젤 엔진 소리를 우렁차게 내뿜으며 먼바다로 내달리면서 원담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습니다. 시멘트 해안 제방에 가로막혀 물길이 끊기거나, 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포클레인에 밀려 허리가 잘려 나간 원담들도 있습니다. 다행히 원담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복원을 시도하는 곳도 있고 이미 몇 곳은 복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쁩니다. 한편 내 고향 마을의 원담도 하루빨리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물이 빠져나간 한적한 조간대 갯바위에 묵묵히 서서 바닷물을 품었다가 조용히 토해내는 그 검은 돌의 곡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숙연해집니다.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고 구멍을 내어 바람을 흘려보낸 제주의 ‘돌담’처럼, 성난 파도를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고 온몸으로 품어 안았던 탐라인들의 겸손한 물리학.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늘 결핍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호흡에 발을 맞추고 이웃과 더불어 멸치 한 마리를 나누던 따뜻한 나눔의 터전인 원담.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맺은 가장 평화로운 계약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다음 제13회 글에서는 얕은 여밭을 넘나들며 자리돔을 뜨고 미역을 건져 올리던 제주 고유의 떼배, ‘테우’에 깃든 놀라운 부력의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궤적을 짚어보는 시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주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 현봉철, 「원담, 신이 내린 황금그물…공동체문화의 상징」(제주대학교 정광중 교수 인용), 『제주일보』, 2010년 1월 25일,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5630.
* 이혜은·김지수·성효현·정광중·전영준 외, 「화산섬 환경에서 발달한 전통 농업 및 어업 경관: 제주도와 하와이의 비교 고찰」, 『대한지리학회지』 제55권 제3호, 대한지리학회, 2020, 343~362쪽.
* 고광민, 『동아시아 원담조사보고서』, 제주문화예술재단, 2017.
* 김동전 외, 『제주 해안마을 바다밧 이름과 생활사 조사 연구』(제주학연구 51), 제주특별자치도·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2018.
* 김상태, 「자연 지형을 이용해 돌담으로 고기를 잡는 제주의 원담」,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6900.
* 고영철, 「[향토문화] 마을 공동소유..행원리 아친개(갯담)」, 『제주환경일보』, 2017년 10월 25일,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59.
* 조의환, 「[조의환의 제주스케치] 제주, 바다에도 ‘돌담’이 있다… 썰물 때 물고기 잡아 가두는 자연의 그물」, 『조선일보』, 2014년 7월 26일, https://www.chosun.com/.
* 진선희, 「[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 (12)제주 원담」, 『한라일보』, 2007년 5월 4일, https://s1.ihalla.com/article.php?aid=1178204400238444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