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전연유산균

  • <제6-1회> 제주 전통 발효 음식의 바이오 과학: 제주의 천연 효모와 곡물 효소학

    부제: 쉰다리·상외떡·빙떡에 숨겨진 선조들의 미생물 제어 기술

    안녕하세요? 제주의 진짜 숨은 이야기와 로컬의 깊은 가치를 전하는 블로그 ‘제주 오리진(Jeju Origin)’입니다.

    지난 5회 글에서는 척박한 환경을 위대한 생명력으로 개척해 낸 제주의 ‘삼다(三多) 정신’, 그리고 거친 바다를 은빛 숨비소리로 채워내던 해녀들의 생체물리학과 상생의 연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연의 가혹한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의 영토를 넓혀온 제주인들의 뚝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전율을 주었지요.

    돌담의 구멍으로 태풍을 흘려보내고, 거친 바다에 몸을 던져 삶을 지탱하던 제주의 선조들. 그 고단하고 치열한 노동의 하루를 마친 뒤, 섬사람들은 과연 어떤 음식을 먹으며 척박한 영양의 한계를 극복했을까요?

    오늘은 자연이 준 결핍을 가장 영리한 과학으로 뒤집은 제주의 ‘식탁’ 안으로 걸어가 보려 합니다. 고온다습한 여름과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냉장고도 없이 생명을 지켜낸 제주 전통 발효 음식 속의 숨은 바이오 과학과, 그 소박한 밥상이 품은 삶의 지혜를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1. 소금의 결핍이 빚어낸 제주만의 독특한 발효 환경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한민국 전통 발효 음식의 핵심 조미료는 단연 ‘소금’입니다. 육지에서는 배추를 소금에 푹 절여 김치를 담그고, 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간장과 된장을 만들며 음식을 장기 보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화산섬 제주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소금’이 인삼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제주에서는 방언으로 ‘소곰’이라고 하였으며, 소금이 귀한 이유는 세 가지 지리적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제주의 해안가는 온통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지대였기에, 바닷물을 가두어 햇볕에 말리는 육지식 ‘천일염전’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일부 지역에 있는 염전마저 비가 잦은 제주에서는 전통적인 천일염 방식으로 소금을 대량 생산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둘째, 따라서 바닷물을 가마솥에 붓고 밤새도록 장작을 태워 수분을 날리는 고단한 ‘자염(煮鹽)’ 방식으로만 소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연료가 필요하지만, 제주 섬의 특성상 화력 보충을 위한 땔감마저 늘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셋째, 소금은 말·말총·귤·해산물 등의 제주 특산물을 육지부로 보내어 교환하는 방식으로 조달해야 했으나,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거친 바다를 건너 소금을 안전하게 들여오는 물류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하였기에, 제주 선조들에게 소금을 팍팍 쓰는 짠맛의 절임 문화는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화산재 토양인 제주는 물이 고이지 않아 쌀농사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평소에는 꽁보리밥이나 지실밥(감자밥)을 주식으로 삼아야 했고, 희고 고운 쌀밥이란 뜻인 ‘곤밥’이나 메밀로 정성껏 부쳐낸 ‘빙떡’은 제사, 명절이나 경조사 같은 집안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구경할 수 있는 눈물겹도록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귀하디귀한 곤밥이나 상할 때까지 방치되는 일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지요.

    제주는 아열대성 기후와 맞물려 여름철이면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불어와 음식을 상하게 만드는 유해 미생물과 곰팡이가 번식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소금이라는 강력한 천연 보존제는 턱없이 부족하고, 날씨는 음식을 부패시키기 딱 좋은 최악의 환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이 치명적인 생존의 결핍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자연계의 유익한 미생물을 통제하는 독보적인 ‘친환경 바이오 발효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2. 천연 유산균 음료 ‘쉰다리’: 유익균을 활용한 위대한 반전

    1) 쉰다리의 추억

    어렸을 때, 무더운 여름날 조부모님을 따라서 밭일을 거들다 보면, 땀을 흘리며 밭일을 하시다가 잠시 쉬시는 동안 시원한 잣담 그늘 아래 두었던 주전자에서 꺼내어 주시던 시큼하고 달콤한 음료가 있었습니다. 한 사발 들이키는 순간 머리끝까지 청량함이 번지던 그 음료, 바로 제주인들의 미생물 제어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통 발효 음료인 ‘쉰다리’입니다.

    만드는 방법이 너무나 간단했기에, 중⦁고등학생 시절에 부모님이 바쁘실 때에는 조금이나마 시간을 덜어드리려고 제가 만든 쉰다리를 온 가족이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2) 쉰다리의 뜻과 정의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원에 따르면, ‘쉰다리’는 명사이며, 제주 방언 ‘쉬다(상하다)’라는 뜻과 ‘다리다(데우다/삭히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지역에 따라 ‘순다리’라고 부르기도 하며, 미미한 알코올 성분과 단맛이 돌아 ‘단술’이라 부르기도 하였지요.

    쉰다리란, 주로 여름철에 주식이었던 꽁보리밥이 약간 쉬기 시작할 때 버리지 않고, 물과 누룩을 섞어 하루 내지 이틀밤 동안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만든 제주 고유의 저농도 전통 발효 음료입니다. 꼭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밥이 상하려고 하면 쉰다리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과거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제주의 평소 주식은 꽁보리밥이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높은 습도는 보리밥을 한나절 만에 쉬어버리게(상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먹었을 때 자칫 탈이 날지 모르니 당연히 버려져야 할 터이지만, 제주의 선조들은 아까운 식량을 단 한 톨도 버릴 수 없었기에 위대한 바이오의 반전을 이뤄냅니다.

    3) 쉰다리 만드는 방법과 미생물학적 원리

    밥이 상하기 시작하면, 많이 상해서부패균이 본격적으로 번식하기 전에 가볍게 물에 행군 후에 작은 항아리에 집에 상비해 두던 전통 누룩을 잘게 쪼개어 밥과 누룩을 3:1 비율로 섞습니다. 밥 양의 1.5배~2.2배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부어 함께 섞은 후에 따뜻한 곳 구석에서 삭혀두었습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하루 내지 이틀, 겨울철에는 5~6일 정도 발효를 시켰지요.

    발효가 끝나면 체로 걸러 마시거나 그냥 텁텁한 상태로 먹기도 했습니다. 취향에 따라 꿀·설탕·과일 등을 넣어 먹었으며, 너무 발효되지 않은 채 오래 보관하고 싶을 때에는 끓여서 발효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현대 미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과정은 미생물 생태계의 원리를 매우 정교하게 이용하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발효가 시작되면 누룩 속에 잠들었던 유익균인 누룩곰팡이와 천연 효모들이 활성화되어 밥 속에서 폭발적으로 증식합니다. 이들이 부패균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공간과 영양분을 선점하는 우점종이 되는 것입니다.

    누룩의 아밀라아제 효소는 보리밥의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여 당도 10.6~13.3 브릭스(Brix)에 이르는 단맛을 만들어내고, 이후 증식한 유산균이 젖산을 생성해 냅니다. 이로 인해 항아리 내부의 환경은 강한 산성(pH 4 이하)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게 됩니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유해 균주나 병원성 박테리아들은 이러한 산성 환경에서 활동이 완벽하게 저해되거나 사멸합니다. 음식을 상하게 하는 부패의 경로를 차단하고, 몸에 이로운 발효의 상태로 변환시켜 가는 미생물학적 지혜입니다.

    4) 결핍의 승화

    이처럼 발효 과정을 거친 상하던 밥은 안전하면서도 새콤달콤한 풍미를 가진 천연 발효식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고된 노동으로 지친 농부들과 해녀들에게 이 새콤한 단술은 최고의 천연 에너지 드링크였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축적된 풍부한 유기산과 비타민 B군이 체내 피로 물질을 중화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기력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버려질 뻔한 쉰 보리밥을 미생물의 힘으로 살려내어 장 건강을 지켜주던 강장제이자 영양식으로 탈바꿈시킨 것으로써, 결핍을 승화시킨 위대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3. 빙떡: 메밀의 소리 없는 독성을 제어한 무의 효소학

    유년 시절, 마을의 명절이나 친척의 제사, 혹은 이웃의 큰 잔칫날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마당에 모여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놓고 그 위에서 지글지글 메밀전병을 얇게 부쳐내던 풍경이 선명합니다. 글루텐이 없어 뚝뚝 끊어지는 메밀가루를 장인의 손길처럼 얇고 평평하게 펴내고, 그 속에 간을 한 무채를 가득 넣어 돌돌 말아주시던 ‘빙떡’의 추억은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고향의 향수일 것입니다.

    ‘빙떡’은 메밀전병입니다. 메밀가루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부쳐 무채 소를 넣고 둥글게 만 떡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며, 떡을 한자로 나타낼 때 사용하는 餠(병)의 변음인 ‘빙’에 ‘떡’을 더하여 만든 말입니다.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귀한 별미이자 손님을 대접하던 정성스러운 음식이었습니다.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고 소금과 참기름으로만 맛을 낸 그 심심하고 담백한 떡이 어린 제 입에도 참 달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편안했던 기억이 오랜 시간 신기하게 남아있었지요.

    그 신비로운 소화의 비결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구현해 낸 훌륭한 식재료의 조화로운 분해 과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메밀은 지금으로부터 600∼700년 전 고려 말에 탐라가 100년 간 원(元)의 지배를 받을 때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제주는 화산재 토양의 특성상 생육 기간이 짧은 메밀을 널리 재배하여 쌀의 대체재로 썼습니다. 메마른 땅에도 잘 적응하고 병충해에도 잘 견디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제주도와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쉽게 재배되었으며 제주인의 식량 확보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밀은 식이섬유·단백질·루틴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특히 혈관을 건강하게 하는 곡식이고, 칼륨·엽산·마그네슘·섬유질을 비롯해 8종의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어릴 때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납니다. 원래는 옛 중국에서 제주 남자들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독성이 있는 메밀의 씨앗을 전해 줬는데 오히려 제주 사람들이 먹고 더 힘을 내고 건강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우스개소리로 재미있게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구전에 의할 만큼 꽤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원 나라의 관리들이 메밀을 제주도에 줘서 재배하도록 한 것은 “독성이 있는 메밀을 제주 남자들이 먹도록 해 그 ‘씨’를 말리려는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메밀 껍질에 있는 독성이 그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메밀에는 제실(Benzylamine)이라는 미량의 살리실산 계열 독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과하게 섭취하면 장에 가스가 차거나 아랫배가 차가운 사람들은 극심한 소화 불량과 배탈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제주인들은 지혜롭게도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무와 함께 먹어서 독성을 중화시켰기에 오히려 최고의 건강식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무에는 강력한 천연 전분 분해 효소인 디아스타아제(Diastase)를 비롯하여 단백질과 지방의 소화를 돕는 에스테라아제 등의 활성 효소들이 아낌없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빙떡을 한 입 베어 물고 씹는 순간, 메밀의 차가운 성질과 미세한 독성을 무채 속의 활성 효소들이 즉각적으로 결합하여 촉매 작용을 일으키며 분해하고 중화시켜 줍니다. 현대 영양학이 메밀과 무의 상극적 중화 원리를 밝혀내기 수백 년 전부터, 제주의 선조들은 삶의 직관을 통해 가장 완벽한 효소 분해 식단을 완성하여 정갈하게 누려왔던 것입니다.

    4. 상외떡: 막걸리와 쉰다리 효모가 빚어낸 제주 최초의 바이오 발효 빵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 집 부엌이나 마당은 떡을 찌는 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하여 둥글고 커다랗게 쪄내던 ‘상외떡’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었습니다. 찜솥의 뚜껑이 열릴 때 퍼지던 은은한 술향과 폭신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은 쌀이 귀해 쌀떡을 마음껏 먹지 못하던 제주 아이들에게는 요즘의 고급 브랜드 빵에 못지않았지요.

    ‘상외떡’은 밀가루를 막걸리로 발효시켜 만든 빵을 뜻하는 제주 고유의 향토 음식으로, 상에떡, 상애병이라고도 합니다.

    이 상외떡은 역사적으로 육지에서 ‘서리꽃처럼 뽀얗게 부풀어 올랐다’ 하여 ‘상화병(霜花餠)’이라 불렸던 유서 깊은 전통 발효 빵입니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시대에 원나라로부터 귀한 밀가루 발효 기술이 유입되던 시기까지 닿아 있지요. 당시 이 발효 빵을 파는 가게를 뜻하던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 처음 이름을 드러낼 만큼 깊은 역사를 자랑하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 『수운잡방』이나 『음식디미방』 같은 옛날 요리책에 ‘밀가루를 좋은 막걸리로 반죽하여 따뜻한 곳에 두어 부풀기를 기다린 후 쪄낸다’는 상세한 제법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인공적인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 같은 부풀림제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제주의 부엌에서 이 역할을 해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앞서 소개해 드린 천연 유산균 음료 ‘쉰다리’였습니다. 단단하고 건조한 누룩 가루를 밀가루 반죽에 바로 넣으면 효모가 깨어나 활동하기도 전에 반죽이 굳어버리거나 효모의 절대적인 밀도(양)가 부족하여 반죽이 쉽게 부풀지 못합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분이 풍부하고 효모의 가장 좋은 먹이(포도당)가 풍부한 ‘쉰 보리밥’을 미생물 배양기로 활용했습니다. 즉, 쉰다리 원액을 천연 발효종(스타터)으로 삼아 밀가루에 붓고 치대었던 것입니다. 생막걸리와 쉰다리 속에 살아 숨 쉬는 천연 효모균은 반죽 속의 당질을 먹이 삼아 대사 활동을 하며 이산화탄소(CO2) 가스를 배출합니다. 이 가스가 밀가루의 글루텐 그물망 구조 내부를 촘촘한 공기 주머니로 가득 채운 뒤 가마솥의 뜨거운 열을 만나면, 거칠던 밀가루 덩어리가 스펀지처럼 폭신한 발효 빵으로 대전환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쉰다리 단계를 거치며 생성된 유산균과 젖산 성분은 밀가루의 풋내를 잡고 밀가루 반죽을 부드럽게 연화시켜 상외떡 특유의 포슬포슬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완성해 줍니다. 무엇보다 pH 4 이하의 강한 산성 성분이 천연 방부제 역할을 수행하여, 반죽 자체에 방어막이 생기기 때문에 한여름 무더위 속에 며칠씩 두고 먹어도 상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천연 방부 발효 빵’이 되었습니다. 척박한 식재료의 한계를 미생물의 치밀한 2단계 배양 과학으로 극복해 낸 선조들의 위대한 생활 생물학이었습니다.

    이렇듯 제주의 선조들은 살아있는 액체 효모를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누룩’이라는 고체 기판 형태로 건조해 상시 보관하다가, 떡을 빚을 때마다 쉰다리를 통해 그 생명력을 깨워내곤 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미생물의 생리를 완벽하게 다룰 줄 알았던 제주 선조들의 경이로운 바이오 응용 기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6-1회 맺음말

    이처럼 쉰다리와 상외떡이 제주의 보리밥과 누룩, 그리고 천연 효모가 빚어낸 탄수화물 발효의 유산이라면, 겨울철 제주의 부엌을 채우던 또 다른 위대한 과학의 축은 바로 단백질의 보고인 ‘콩’이었습니다.

    어릴 적 저의 기억 속 겨울 부엌은 언제나 가마솥 가득 삶아지던 노란콩(백태)의 구수한 냄새로 따뜻하게 채워지곤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메주를 디디기 직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에서 갓 건져내어 손바닥에 올려주셨던 뜨끈뜨끈한 노란 콩 한 움큼은 밤처럼 달콤하고 고구마보다 고소하여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유년의 가장 풍요로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워낙 풍족하게 먹지 못하던 때라,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고농도의 콩을 갑자기 많이 먹으면 장이 놀라 설사를 하기도 했었기에 할머니께서는 늘 적당히 먹으라며 손사래를 치시곤 했습니다. 영양 결핍 시대가 낳은 웃지 못할 풍경이었지만, 그만큼 콩이 가진 영양의 밀도가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흔히 우리가 전통 장(醬)을 떠올릴 때 이처럼 노란콩을 당연한 원형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주의 검은 화산재 땅과 거친 바닷바람 속에는 이 익숙한 노란콩의 그늘에 가려져 우리가 미처 그 귀함을 다 알아보지 못했던, 숨겨진 진짜 천연 보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슬로푸드 본부가 감탄하고, 대한민국 맛의 방주 제1호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미래 인류의 식단을 치유할 제주의 독보적인 토종 유산, 그 푸른 보물과 고초균이 부리는 경이로운 장수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제6-2회> 제주의 단백질 영양학: 푸른콩장과 몸국 편 글에서 이어집니다.

    (제주 오리진, Jeju Origin)

    참고 자료 (References)

    * 제주어 고증: 『제주방언사전』, 국립국어원 및 제주특별자치도 국어심의회

    * 향토사료 고증: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 쉰다리 및 향토음식 제법)

    * 학술 논문 1: 김소연·박은진, 「당근을 첨가한 쉰다리의 발효 특성」,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2015.

    * 학술 논문 2: 조만재·강은옥·이해원, 「제주에서 시판되는 쉰다리의 품질특성 및 항산화 활성 연구」, 2025.

    * 언론 보도: 뉴시스(오미란 기자 외), 「제주 남자 씨 말리려 건넨 메밀, ‘빙떡’이 건강식 될 줄이야」, 로컬 기획 특집 기사 고증.

    * 농업사료 고증: 이성돈,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2021.

    * 민속학 고증: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상화병(霜花餠)의 기원과 전래 양식)

    * 국제 인증: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대한민국 맛의 방주(Ark of Taste) 100』

    * 미생물학 자문: 홍석일, 「유용 미생물의 대명사가 된 ‘바실러스(Bacillus)’」, 『농기자재신문』 학술 기고문.